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록 Jul 04. 2019

다시 밟게 된 런던 히드로 공항, 시작된 유럽여행

5년 만에 다시 유럽 여행이다.

2014년 3월, 21살의 나이로 휴학을 감행하고 처음 유럽 땅을 밟았던 그때와는 달리, 

2019년 3월, 26살과 대학을 졸업한 상태로 다시 온 유럽은 무척이나 새롭다.

5년 전보다는 걱정이 조금 늘었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조금은 듬직했던 형의 존재가 사라지고, 내가 더 많이 신경 써야 하는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여행의 목표를 물어본다면, 난 ‘어머니와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다니기’라고 말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5년 전 유럽 여행은 천둥벌거숭이들의 여행이었다. 유럽에 대한 아무런 지식조차 없이 그 누구도 사본 적 없을 뿐 아니라 들어보지도 못했을 3개월짜리 유레일패스를 끊었었다. 누군가 유럽 여행은 기차가 편하다는 말에 혹해 무작정 150만 원씩 2명, 총합 300만 원을 날렸다. 형과 나 모두 장기 여행 경험이 없어서 어떤 가방을 가져가야 하는지, 어떤 옷을 가져가야 하는지, 신발을 몇 켤레 들고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도착했다. 그래서 여행 중간 많은 짐을 버리기도 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랬다. 우리는 적어도 유럽 여행에 대해서만큼은 무식했고, 20대 초반을 지나고 있었으므로 꽤 용감했다. 무식하고 꽤 용감한 결과 여행 전에 준비했던 계획은 모조리 어긋났다. 계획했던 여행 루트는 매일 즉흥적으로 바뀌었고, 그 결과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지출을 하게 되었다.

지금 다시 5년 전 그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젊은 나이에 자유롭게 많은 것을 누릴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것, 젊은 청춘에게 응당히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90일이라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고, 소중하게 사용하지 못했다. 눈앞에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한탄하기 바빴고, 하루빨리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그렇게 90일이 흘렀다. 가끔은 정말 빠르게, 때로는 정말 느리게 시간이 흘렀으며, 다행히 첫 여행은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형과 내가 했던 여행은 젊은 여행자였기에 가능했던 여행이었고, 무엇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던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 채워진 여행이었다. 여행은 불확실했기에 즐거웠지만 동시에 순간순간 무척 불안했다. 자주 당황하기도 했고, 누구에게 이 상황을 물어야 할지 몰라 해결책을 찾아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즐거웠지만 힘들었다. 그리고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다’ 이것이 지난 여행의 결론이자 소감이었다.       


실패하진 않았지만, 성공하지도 않았던 지난 여행과 달리 이번 유럽 여행은 모든 과정이 끝나고 돌이켜볼 때 과정부터 결론까지 완벽하고 싶었다. 적어도 내가 했었던 실수는 반복하지 않고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싶었다. 26년 동안 나를 보살펴주신 어머니에게 조금의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다.

이번 유럽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 ‘소중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돈과 시간 그리고 기회까지 모조리 투자하는 여행이다. 군 전역 후 2년여의 시간 동안 학업과 동시에 각종 대외활동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모조리 스스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전진했다.

두 마리 토끼도 아닌 세 마리, 네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는 나의 계획은 허무맹랑했고, 불가능해 보였다. 힘들었지만 악착같이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고, 100%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아닐지라도 90% 이상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얻었다. 그토록 힘겨운 상황으로 나를 밀어붙인 이유는, 끊임없이 나를 착취하며 힘든 길을 스스로 걸어가려 했던 이유는 지금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어머니와 함께 여행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어머니와 여행을 떠날 수 있겠는가. 아직 포기할 것이 많지 않은 지금이 아닌 미래의 나는 절대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취업하고 나면, 나의 손에 가진 것들이 많아지면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나와 어머니를 위해 쓰는 것을 주저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가진 최고의 것을 모조리 어머니를 위해 사용할 기회는 바로 지금 밖에 없을 것 같았다.


형과 함께 떠난 지난번의 여행을 통해 얻은 지혜와 경험을 토대로 가장 기억이 생생하고 좋았던 곳들로 9개 나라를 채웠다. 어머니의 체력을 고려해서 버스보다는 기차를, 먼 거리는 비행기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다. 비로소 이제 2년 동안 나 혼자 준비했던 모든 과정과 결과물을 어머니께 보여드릴 시간이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한 나의 입장에서는, 26년 동안 어머니 곁에서 보살핌을 받은 아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어머니가 행복하게 이 순간을, 이 여행을 즐기셨으면 좋겠다. 집안일의 스트레스도 어머니의 역할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아닌 온전히 보이는 것에 감격하고, 만나는 모든 것에 행복을 누리며,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찬 여행이 되셨으면 좋겠다.      

나는 그저 그렇게 되면 좋겠다. 그렇게 여행 내내 어머니가 나와 함께 즐거웠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이건 다 젤라또 때문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