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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Jan 02. 2022

남편 없이 시댁행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지만,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

2022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던 그 첫날, 나는 두 아이들과 함께 시댁으로 향했다. 차 타고 10분 거리, 걸어서도 갈 수 있을만한 거리에 있는 시댁은 가깝지만, 거리와는 비례하지 않게 자주 가지 않게 된다. 막상 가면 좋은데, 가기 전에는 왜 이렇게 마음에 부담이 오는지 모르겠다. 가기 싫은 그 마음이 죄송스러울 만큼 시부모님은 우리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신다. 물론 며느리인 나보다 손주들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시겠지만 말이다.


1층 아파트 현관 앞에서 인터폰을 누르고, 8층으로 올라갔다. 언제나처럼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우리 보물들 왔구나."


어머님은 두 아이가 거실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현관까지 뛰어나오셨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두 아이를 꼭 안아주셨다.


"우리 아기들 못 본 새 엄청 컸네."


못 본 사이 엄청 컸다고 느끼실 만큼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닌 것 같은데, 오래된 것 같으신가 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 달만에 만난 것이었다.


'벌써 2개월이나 지났구나.'


통화는 그래도 자주 하는 편이기에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걸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두 아이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졌다. 보물 같은 두 손주가 얼마나 보고 싶고 궁금하셨는지가 느껴졌다. 두 아이는 소파에 앉아 정신이 각자의 핸드폰으로 가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계속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질문에 나름 열심히 답을 하고 있었다.


시댁에 거실 한가운데에 사진이 있다. 티브이 바로 옆에 예쁘게 놓인 그 사진은 몇 년 전 아버님 칠순 기념으로 시댁 식구들이 모두 모여 찍은 가족사진이다. 소파에 앉으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놓인 사진이지만, 나는 굳이 그 사진으로까지 시선이 닿지 않도록 애를 쓴다. 내 옆에, 아이들 곁에 그리고 우리 가족 사이에 당연하게 서서 따뜻한 미소를 띠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시선이 닿으면 덜컥 그의 부재가 실감 나고 말기 때문이다.


워낙 바빴던 남편이기에, 남편 없이 나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시댁을 찾는 것이 익숙했지만, 잠시 동안만이 아닌 영원한 부재가 실감나 버리고 나면, 익숙하지 않은 낯선 감정이 몰아쳤다. 머리가 핑 돌만큼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나름 2년 동안 잘 이겨내고, 잘 지내온 것 같아. 아빠나 나, 너 그리고 아이들 각자가 말이야."


어머님이 옆에 앉은 내 어깨를 감싸며 말씀하셨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각자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잘 지내온 것 같았다.


"우리 XX 이는 정말 선물 같은 아들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바로 내 둘째 아들 xx이었다."


어머님이 남편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한 번 시작하면, 한동안은 이어지는 남편의 이야기이다. 한동안은 괴로울 만큼 힘들었다. 자꾸만 남편 이야기를 하는 것이 괴로웠다. 이제는 괴로워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괴롭지 않은 것 같았다.


지난 2년간 세월이 흐른 만큼, 노력한 만큼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익숙해져, 이제는 그것이 이따금씩 찾아올 때면 잘 토닥여 잠재울 수 있다. 두 아이 역시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변함없이 지내고 있다. 가끔 그리움의 감정이 느껴질 때면 서로에게 털어놓고 마음을 나누는 그 정도로 우리는 이렇게 잘 이겨내고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 있어야 할 존재의 부재를 문득 실감하게 될 때면, 여전히 실감 나지 않지만 현실이 되어버린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번 쉽지 았았다. 머리가 핑 돌고 현기증이 날만큼 말이다. 계속 들어야 하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 어쩔 수 없이 마주 봐야 하는 사진 속 그의 미소는 시댁에 가기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손주를 보며 살아갈 힘을 얻고 있다는 시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래서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죄송스럽다.

세월이 흘러, 남편의 부재가 익숙해지고, 문득 실감이 나도 당황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인정이 되는 날이 오면, 지금보다는 더 자주 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2022년에는 조금은 더 단단해져, 시댁에 더 자주 갈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https://brunch.co.kr/@hcrys647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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