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이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고 암기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고, 배운 지식을 성찰해 보고, 개인적인 이해를 통해 배운 지식을 내재화하기 위한 과정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도해 보는 것
마사 누스바움 (Marbha Nusbaum)은 자신의 저서 『인간성 수업(Culivating Humanity)』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교육의 핵심은 교수들과 학생들이 교류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고, 학생들로 하여금 주제에 대한 많은 글 쓰기를 통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평가 받고 토론하도록 하는 교육과정이라고 말이다.
사회에 나가기 전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학교나 가정에서 익혀야 하는 중요한 소양을 서사적 상상력 (hamative Inigimuton)'으로, 정의하여 설명했다. 굉장히 이질적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스토리여사를 공감하고 이해하며 그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서사적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경험은 외국에 나가서 여행만 하는 게 아니라 친구를 사귀고 그들의 가정을 경험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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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을 끊임없는 과정의 연속으로 보고 있어. 교육도 직업도 마찬가지이지. 요즘에는 직업을 하나만 가져야 한다는 법도 없고, 한군데에서만 일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없어졌어.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변화의 속도도 정말 더 빨라졌 거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배울 수 있는 능력과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the ablity to re-leam and change yourself)이야. 이를 위해선 자신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constandly cvolving)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중요해. 왜냐하면 진정한 변화는 항상 내면에서 나오기 마련이거든.
실리콘밸리야 말로 창조적 파괴(Creative Dstruction)'의 아이디 어와 사건들이 가장 집중되어 생기는 곳이지. 창조적 파괴의 문화로 말미암아 세계가 어떻게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다른 비전이 나올 수 있고, 이에 따라 여러 창의적인 사업과 상품 그리고 프로 젝트가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런 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내가 학습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어떻게 이 경험을 통해 더 발전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를 나눠야 해"
실패한 스타트업 회사였던 바틱을 통해 만났던 사라와 리처드를 비롯한 학생들은 미국 엘리트 대학생들의 사고방식을 전형을 보여 주었다. 바틱의 젊고 패기 있는 대학생 창업가들과 함께 일하면서 미국 청년들이 말하는 혁신과 도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다름 아닌 나와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내 안에서 먼저 창조적 파괴의 현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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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기는 확장기이다. 청소년기에 사고의 외연이 가족과 지역사회를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다. 학령기에 형성된 직관적 개념적 사고가 청소년기에 걸쳐 추상적 사고로 발전하고, 이를 통해 청소년들은 '개인적 경험과 삶에 대한 직접적 지식 그리고 다양한 환경 속 사람들의 관계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이전보다 훨씬 충만한 방법으로 개인적 감정, 공포, 포부를 처리 하고,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탐색'하기 때문에, 하워드 가드너는
'교육과정 속에 윤리 문제, 최근 사건, 지역 사회나 범세계적인 고민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민족사관고등학교는 나에게 사춘기 시절에 겪어야 하는 확장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마음으로만 품었던 세계로 뻗어 나가고 싶다는 나의 사춘기 시절 꿈을 현실로 바꾸어 준 소중한 학교였다. 그리고 그렇게 영국으로 확장된 나의 세상은 옥스퍼드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소통을 통해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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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은 개방적이고,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고, 중국인은 시끄럽다 따위의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과거의 편견들이 서서 히 균열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화적이나 언어적인 장벽 때문에 선입견이나 편견이 있다가도 만나서 대화를 이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 우리 참 비슷하구나!' 느끼는 순간이 오게 된다.
이렇게 다름 속에 비슷한 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나에게 자유 로움을 선사해 주었다.
바로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 속에 한 명인 나는 똑같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나는 나일 수 있는' 그런 자유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자유롭게 대화하고 교류 하면서 나는 학교 수업보다 인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알 랭 드 보통이 '인생 수업'에서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한 감성 지능 (Emotional Inceligence)을 가르쳐 준 가장 좋은 선생님들은 바로 내가 옥스퍼드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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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모꼬는 이렇게 자기의 의견을 명확하게 제시하면서도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 주고 받아들이는 것도 관대했다. 보통의 일본 사람들이 역사적 문제에 대해 무감각한 것은 근현대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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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객관식 시험이 아예 없다. 심지어 수학과 과학 과목도 모두 주관식으로 시험을 본다. 시험은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답을 도출해 내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방점이 있다고 하겠다. 문과 과목은 그것 을 글로 설명하는 것이고 이과 과목은 그것을 수식까지 동원해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관식 교육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이루어진다. 왜 영국에서는 차 문화가 발달했을까? 그건 바로 영국 사람들을 티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Would you like to have some tea?"라는 표현은 단순히 차를 마 시자는 제안이 아니다. 차를 마시면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미이다. 당신에 대해 알고 싶고, 당신의 생각과 세계관 에 관심이 있다는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차를 마시는 것을 넘어 서서 이런 대화는 때로 온종일 함께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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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화적 바탕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국은 과학자들 중에 또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분야에서 홀륭 한 연구와 업적을 이루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다른 학자들은 물론 대중에게 전달하고 설명하는 데에도 탁월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교육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 이들은 정치권 과 언론계에 진출하여 상호 간에 비방과 공방보다는 존경과 선의를 바탕으로 한 촌철살인이 오가는 토론 문화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영국에서 읽곤 했던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에 기고된 칼럼들을 보면 명료하면서 세련되고 품위를 갖춘 논평이 있는 기사의 수준에 놀라곤 했다. 재정 문제에 대한 주제를 다루 는 기사에도 피상적으로 현재의 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깊이 있게 현상을 분석하는 것을 볼 때면 한 편의 잘 쓴 논문을 읽는 듯했다. 이와 같은 문화적 저 력은 어렸을 적부터 보고 듣고 훈련된 문해 능력(literacy)과 교양 교육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행해진 인공지능 프로젝트인 '로봇은 도쿄 대학에 들 어갈 수 있는가?'를 통해 인공지능과 지식 세계의 미래에 대해 분석한 아라이 노리코 교수는 문해 능력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잡을 수 없는 핵심 역량이라고 역설했다." 인공지능 로봇이 통 계적이고 확률적인 연산 기능의 측면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어떤 문장을 읽고 그 안에 숨겨진 뜻을 이해하거나 인간처럼 행간의 의미를 찾아낼 능력은 갖출 수는 없 다! 이런 의미에서 문해 능력이야 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고차원 적인 역량 중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를 사는 우리는 물 론이고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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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발달심리학자 비고츠키와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 모두 학령기 아이들의 인지 발달 에 있어서 강조하는 바가 바로 문해 능력(litericy)과 '숙달 훈련 (discipline)'이다. 내가 영국 교육에서 발견한 두 가지 중요한 키워 드와 정확히 일치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Literacy 그리고 Discipline! 문해 능력은 쉽게 이해될 수 있지만 학교 교육에서 훈련이란 단어는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겐 많이 생소하다. 교육학에서 훈련(discipline)의 의미는 그 과목 혹은 기술에 숙달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에 대한 논의가 한 축이며, 이러한 방법론에 익숙해지고 수월해지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학습이 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 을 찾고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숙달하는 것이 바로 훈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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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지루하고 힘들었을 수도 있을 이 과정을 버티게 해준 것은 무엇보다도 가족, 선생님과의 끊임없는 대화였다. 그리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이야말로 용광로같은 훈련의 과정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이라는 사실도 이때 같이 깨달았다.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의 혹독한 훈련 덕분이었을까? 오히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유학을 와서는 문화적인 차이라든지 새롭게 하게 된 공부가 도전이기는 했지만 포기할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결국 끈기를 갖고 그 과목에 맞는 방법론을 익히면 나중에는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는 교훈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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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자가 된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을 교육학적으로 분석해 보 면, 나는 그 시절 내 생각을 스스로 모니터링하면서 자아성찰을 하는 '메타 인지 사고(metacognition)'를 하고 있었다(물론 그 시절 나는 meracognition이라는 영어 단어조차 몰랐지만 말이다!). 메타 인지능력 은 자신의 인지 활동에 대해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으로 자신의 사고 과정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어떠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생각하고, 그 계획을 실행하 고 평가하기 위해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일련의 과정에 대 한 자아 성찰(selfreflection)이다. 메타 인지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결국 반복되는 훈련(discipline)은 학생으로 하여금 주어진 과제 혹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뿐 아니라 자신과 진심을 다해 소통하는 것임을 이제는 교육학자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