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자들의 본색을 말합니다. 당신은요?
지난해 11월 회사를 그만두면서 결심한 건 딱 하나였다. 이제 더 이상 '실무자'로 살지 않겠다는 것. '실무자'라 함은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갈 까봐 안달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는 사람들을 말한다. 조직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한 줌 정도 밖에 안 되는 소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과로 덕에 대부분의 조직 멤버들은 워라밸을 지킬 수 있다. 그냥 숟가락 얹고 간다는 이야기.
보통은 직장에 막 입사해 야근 메뉴 주문부터 문서수발, 회식 장소 물색까지 맡아야 하는 비운의 막내를 떠올리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실무자'의 낙인은 다분히 타고난 성격에 따라 당사자의 이마에 새겨진다. 내 경험으로는 조직의 허리 역할을 하며 위아래로 치이는 경력 5년차 이상 과장, 차장, 부장급이 많았지만 이게 사실 타고난 성격이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CEO급부터(알바생을 모시며 청소를 도맡아 하는 사장님) 입차 1년차 새내기까지(부장놈이 지 할일을 다 시켜요!) 포진해 있을 수 있다.
이 '실무자' 성격은 무엇인가 하면 한마디로 헛똑똑이, 호구, 워커홀릭, 왼손이 몰라주는 오른손, 남의 손과 발, 등으로 불릴 수 있다. 취업할 당시부터 일머리가 괜찮아서 칭찬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고, 여기 홀릭되어 인정욕구도 덩달아 높아졌다. 또래보다 열심히 일을 하다보니 대리, 과장, 차장까지는 무난히 올라가며 경우에 따라서는 부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아랫것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저 윗선에서 의사결정권자와 어울릴려면 꼭 필요한 것, 바로 정치성이 미흡하다는 결정적이고도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정치성을 발휘하려면 보스를 향한 아부와 조직 분위기 읽기, 소셜 스모킹 & 드링킹, 은밀하고 치밀한 뒷담화 등을 위해 투자할 시간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실무자' 성격자들은 모든 에너지를 그노무 일에 쏟는 것이 문제다.
일을 잘하는거, 좋은 일이다. 직장이라는 데가 일하자고 모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문제. 실무자형 인간들이 어떻게든 일을 되게 만들라고 새벽별 보고 출근해서 점심, 저녁 사무실에서 시켜먹고 철야하는 동안 'Show up'에 능한 동료는 윗분과 조용히 밥, 커피, 술을 즐기다 들어오는 것이다. 연봉도 훨씬 많이 받는 그 분께 피부과 시술권도 선물하고, 뮤지컬 VIP석 관람권도 주고, 생일에는 명품 브랜드 손수건도 사다 바치는 거다.
남이 100을 하면 본인도 50은 하면 좋으련만 '실무자'들은 늘 일에 대해서는 칭찬을 받아 오다 보니 쓸데없이 자존감이 높아져서 윗사람한테 바른 말도 곧잘 하고, 같이 고생하는 동료들과 의리도 깊어서 공개적으로 요구사항 밝히며 총대 메는 일도 벌인다. 한마디로 출세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성격. 누구나 다 웃는 얼굴에 약하고, 속 빤한 아부에 기분이 좋아진다. 윗사람이야 일은 자기가 다 한다고 생각하니 아랫것들 하는 일이야 누가 하든 다 거기가 거기. 볼 때마다 인상을 쓰며 "메일 보냈는데 확인했냐?" "오늘까지 피드백 안 주면 너무 늦어진다"고 채근하는 실무형 성격자보다는 귀에 착착 감기는 이쁜 말에 손가락 한번 까닥하면 득달같이 대령하는 아부쟁이들이 백번 이쁘다. '실무자'들의 직언은 평소 일 잘한다고 흐뭇할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 기분을 잡치게 한다. "자식, 일은 자기만 해?" 이렇게 조금씩 앙금이 쌓이다 보면 어느덧 '저 자식은 팍팍해'에서 인성이 안 좋아, 조직 분위기를 해쳐, 주위 사람들한테까지 영향을 줘 식으로 번지게 된다.
그리하여..
'실무자'형 인간들을 둘러싼 세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