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글('망했으면 망했다고 인정해야 한다')을 읽다가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면 "아, 얘 그거구나" 하셨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는 "병원에 가봐야 할텐데 왜 안 가지?" 하셨을 수도 있다. 그렇다. 난 불안장애든 그 갈래 중 하나인 공황장애든 다양한 마음의 병 중 일부의 초기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는 지난 해 겨울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른 척했다. 관련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실제로 효과가 있기도 했다. 몇몇 책에 나온 대로 지금 숨이 가쁘고 어지럽고 화장실에 가고 싶은 건 내 마음, 엄밀하게는 부교감신경계가 과민하게 활성화되어 나오는 신체 반응일 뿐이라는 걸 스스로 확신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니 결코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되뇌어 보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몸이 떨릴 때마다 숫자도 세어보고 멘톨 사탕도 먹어보고 핸드폰도 들여다보고 음악도 들어봤다. 가끔은 효과가 있었지만 위기를 넘길 때마다 힘들었고, 필요 이상의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충치가 있으면 치과에 가고,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가는 게 당연하며 이를 미루면 미련하다고 욕을 먹지만 이 마음의 병 영역에서는 유달리 '네가 마음 먹기 나름'이라며 자력갱생을 권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어떻게든 혼자 견뎌낼 수 있게끔 음식, 마인드 컨트롤, 운동 등 다양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다 그게 두려워서 그렇다. F코드. 정신과 질환 및 행동장애를 뜻하는 질병 분류 코드. 이게 건강보험 전산망에 뜨는 순간 실비보험 가입이 안되고 보장성 보험도 어려우며 취직, 이직에도 지장을 준다는 전설의 코드. 여기에 마음의 병을 그저 '팔자가 좋아서' '고민에 겨워서' '심약해서' 생긴다는 기존의 편견까지 더해지면 연예인에 현직 국회의원과 검사까지 수많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지금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조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공부 스트레스로 증상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위해 엄마들은 대개 지인들 통해 알음알음 약을 구하고, 강남 어디 한의원은 이른바 '홧병'을 소문 안내고 치료할 수 있는 우회로를 찾는 중년 여성들로 문전성시라는 말도 들었다. 어렵사리 건강의학과를 가더라도 보험 대신 비급여, 현금으로 진료비를 계산하는 사람도 많다.
하는 일과 연관이 있어 그간 심리쪽 책을 꾸준히 읽어왔고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심리상담가나 정신과 의사도 만난 경험이 있는 나도 솔직히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보려고 했다. 뇌에 길을 새로 만든다거나 나를 또하나의 내가 바라본다던가 '지금 이 순간'에만 오롯이 집중한다거나, 여튼 각종 책에 나온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방법들을 몇번씩 다시 읽어가며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해봤다. 그런데 나아지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버스만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전철에서도 가슴이 내려앉았고, 그 다음에는 집 밖에만 나가도 불안해졌다. 두 시간씩 걸어다녀도 끄덕없었던 산책로를 집과 멀어지는 게 불안해서 부들부들 떨면서 30분 정도 걷다가 도망치듯 돌아왔다. 나중에는 분리수거를 하려고 나갈 때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져야 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걸려서 도착해 세 시간 수업을 받아야 하는 강좌 날은 거의 비상사태였다. 멀쩡히 잘 앉아 있다가도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전화 통화 소리에 꽂혀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즐겨갔던 지하 상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마주 오는 것을 보자마자 불안이 올라왔다. 그래도 때마침(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택하며 외출을 삼가는 분위기라서 내 증상은 대충 은폐될 수 있었지만 스스로는 점점 심해진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고민이 깊어갔다.
이 와중에 전환점이 된 건 나의 못말리는 실용주의, 본전 정신이다. 어떻게든 버텨나가는 와중에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큰 마음 먹고 거금 들여 입장한 공연을 1부만 보고 뛰쳐 나온 것. 이미 익숙한 작품이었는데 초반부터 이상하게 분위기가 어둡다, 이렇게 음침했나 생각하다가 불쑥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바닥에 작은 불만 켜둔 어둑어둑한 통로를 흘끗거리며 지금 내가 뛰어나가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나도 집중하지 못하고 숫자를 세며 겨우 중간 휴식시간을 맞았는데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오고서도 재입장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시 앉긴 했지만 곧 입장이 제한된다, 빨리 들어와라, 공연이 시작된다... 스태프들이 소리를 칠 때마다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결국 문이 닫히기 직전에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어안이벙벙한 스태프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황망하게 극장을 나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절반만 보고 날린 공연 비용도 아까웠지만 점점 더 내 세계가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더 비참했다. 다리 위 버스에서 시작해서 무서운 상황은 점점 더 많아지고, 그걸 피하다 보니 난 아예 겁이 날 수도 있는 또다른 상황들까지 예상해서 지레 돌아서 가고 있었다. 바로 예기불안이고 회피행동이다. 언제라도 나갈 수 있게 통로 쪽 객석을 예매하다가 아예 극장을 안 가게 되고, 화장실이 편안치 않은 장소는 피하게 된다. 사정을 아는 사람들 외에는 만나고 싶지 않고, 모르는 사람을 만날 생각을 하면 긴장부터 된다. 장시간 버스 여행이나 비행기는 생각만 해도 진땀이 났다. 경유에 환승을 거듭해도 장거리 해외 여행에 신명을 냈던 예전 생각을 하면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러다간, 폐인 되겠다. 때마침 슬슬 코로나-19 사태가 좀 풀리기 시작해 세상이 천천히 제 궤도로 돌아오던 시점이었다. 사실, 그게 불안해서 더 증세가 올라왔을 수도 있었다. 전국민이 다같이 칩거했을 때는 티가 안났지만 이제부터는 달랐다. 마침 새로운 일도 하나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라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래, 가자. 반백년 살았는데 이제 와 정신과 좀 간다고 무슨 흠일까. 다시는 비싸게 산 티켓을 반만 쓰고 버리는 일은 없게 할 것이다. 나름대로는 굳은 결심을 하고 집 근처 리뷰가 괜찮은 정신건강의학과를 서치하기 시작했다.(2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