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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uze Nov 07. 2020

F코드의 세계에 입문하다 3

몸만 아플 때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의 '마음의 병' 입문 세 번째 이야기

이번 주에도 병원 예약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진찰을 받고 약을 타 온 지 한 달만에 '많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두 달만에 이주일에 한 번씩 와도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뭔가 시험이라도 잘 본 것 같은 기분으로 들떴지만 정신과를 드나든 지 6개월째 접어드는 지금은 다시 조금씩 조바심이 난다. 괜찮은 척하려 애썼지만 누가 봐도 울 듯한 표정으로 버스를 못 타겠다고 털어놓던 때가 언젠데 이제는 다시 '멀쩡해지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걸까? 2주 전 언제쯤 약을 안 먹을 수 있는지 묻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비상약을 안 먹게 될 때"라는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듣자 아, 그렇구나 납득이 됐다. 그간 비상약을 먹은 횟수가 10번도 안 되지만 초진 이후 비상약이 든 비닐 백을 두고 외출한 날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 구명줄을 완전히 놓을 수 있을까?


이제 나는 버스를 다시 타게 되었고, 집을 나와 1시간 이상 걷게 되었고, 일도 나가고, 공부해서 자격증 시험도 보았다. 그러나 딱 그 정도까지다. 꼭 필요한 것은 하는 수준. 일은 하겠지만 노는 데까지 쓸 에너지까지는 아직 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먼저 전화해서 만나자, 밥 먹자 하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불러야 나간다. 엥겔계수 중 문화비 지출이 남부럽지 않게 높았지만 극장, 공연장 간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KTX는 모르겠지만 고속버스를 오래 타는 국내여행? 자신 없다. 국제선 비행기라... 코로나 상황이 끝나는 언젠가가 되면 그때 고민해봐야겠지.


커피 대신 카페인이 없는 허브티를 마시고, 약속은 하루에 2개 이상 잡지 않고, 일이 과중해지지 않도록(어차피 그다지 많지도 않지만) 미리미리 나눠서 한다. 4대 보험이 되는 정규직과는 이미 인연이 멀어졌지만 더 이상 달달 볶으면서 구인 광고란을 뒤지지도 않는다. 그냥, 버스를 오래 탔는데 생각보다 괜찮으면 뿌듯하고,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일했는데 많이 피곤하지 않으면 기뻐진다.


그렇게 지내다가 또 이래도 괜찮을까, 걱정하게 된다. 아프다는 핑계로 날 너무 살살 다루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스러워진다. 이미 난 수십 년 동안 늘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그래서 객관적으로 가능한 것 이상을 바란 뒤, 약간의 고통을 거쳐 최선은 아니지만 적정선이라 타협한 보상을 받아들이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주변 사람들을 반의 반이라도 쫓아가는 삶, 앞서지는 못해도 너무 뒤처지지는 않는 삶. 그런데 뒤처지는 건 고사하고 완전 멈춰버렸으니 멘탈이 나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버스를 다시 타게 되니 특유의 조바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완전히 나아지지 않는 건지, 2주에 한 번이라도 비상약을 먹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진찰 시간에 이야기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몸의 반응이 그런 건데 자꾸 스스로를 야단치면 어떻게 하냐"고 말했다. 그러나 초반인 몇 달 전, 멀리 가거나 피곤한 일은 자꾸 피하게 된다는 말을 했을 때는 이렇게도 이야기했다. "너무 본인을 봐주는 것 아니냐?" 그러면서 일은 절대로 그만두지 말고, 비상약을 먹고라도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고, 복잡한 지하도에 가야 한다고 조언해주었다.


그게 마음의 병이 가진 독특함인 것 같다. 나를 지나치게 불쌍하게 여기지도, 그렇다고 다그치지도 않는 딱 중간의 선을 유지하는 것. 사실 이쪽 계열 증세가 나타나면 자기연민에 빠지기 쉽다. 남은 물론 가족에게 털어놓기도 쉽지 않고, 사람들은 흔히 잘 자고 잘 먹으면 낫는다, 다 의지 문제다, 심지어 할 일 없이 복에 겨워 생기는 병이라고 말하니까. 그렇다고 스스로 끌어안으며 침잠해서는 또 답이 없다. 가기 무서운 곳이 늘어나고 임소공포에 강박증, 공황에 우울증까지 온갖 서브 장르들이 손에 손을 잡고 나타난다. 컨디션이 좋지 않더라도 매일 집 밖으로 외출해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버스를 타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비좁은 식당에서 혼밥을 해야 한다. 매일 1만 보 이상 걷는 이들도 많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저 증상을 치료하는데 집중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생각한 것이라기보다는 누군가와의 대화 중에 갑자기 떠올랐다. 그는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런데, 공황은 어쩌다가 생긴 거야?" 단도직입적인 그 질문에 적당한 대답을 떠올리다가 우선은 "그냥, 내가 심약해서겠지."라고 얼버무린 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글쎄. 글쎄 무엇 때문에 생겼을까? 회사를 나와서? 아니면 다시 들어갈 회사가 없어서? 갱년기라? 아니면 어린 시절에 나도 기억 못 하는 무의식적인 충격을 받아서? 원인을 꼽아보라면 몇 개 추려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당장 버스를 못 타는데...  그때부터 그냥 이런저런 생각은 집어치우고 매일 아침 약을 꼬박꼬박 먹고, 커피 끊고, 운동도 조금은 하면서 살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어떤 원인을 찾아내는데 집착하지 않고 증상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나 자신이 얼마나 행운인지 깨달았던 게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관련 카페만 가봐도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괴로워하는 분들을 많이 만난다. 가족, 빈곤, 신체적 질병, 예기치 않게 겪게 된 어떤 사건, 대인관계의 상처 등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음을 터놓을 사람, 치료에 전념할 시간과 경제적 여유 등 기본 인프라가 없다면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걷게 된다. 자기연민에 빠져 매사 무기력한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아니면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일도 못하고, 살도 쪘다고 스스로를 무섭게 비난하거나. 그 중간에 서서 자신을 추슬러야 하는데 도저히 에너지가 나질 않는 것이다. 마음의 병은 분명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낫고 싶다는 스스로의 의지가 없다면 또한 문제가 어려워진다. 다른 몸의 병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 두 가지 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문제를 생각하다가 <어쩌다 정신과 의사>라는 책에서 힌트를 얻었다. 동료들과 함께 유튜브에서 <뇌부자들>이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김지용은 사람들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사로잡혀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종의 '자동조정상태'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지금, 바로 여기(Here and Now)에 집중하라는 것. 그간 공황 관련 책들에서도 늘 하던 이야기였다.


특히 자기비난과 자기합리화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말한다. "적당한 자기비난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삶이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지나친 자기합리화는 스스로를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만들 여지가 있지만, 그것이 적당하면 마음이 정박할 언덕이 되어준다. 자기비난과 자기합리화, 이 둘 사이에 적당한 균형과 긴장이 있어야 삶이 좀 더 단단해지고 건강해진다."


사실 지금도 언제가 되어야 약을 그만 먹게 될까, 병원에 그만 가게 될까 고민스럽기도 하지만 또 정신과 가기 전엔 또 얼마나 기운이 넘쳤었나 생각해보면 조바심이 조금 가라앉는다. 예전에도 분명히 불안했고, 강박적이었으며 온 몸에 열도 났었다. 다만 이제 F코드에 등재된 이름표 하나가 붙여 라벨링 되었을 뿐.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내가 할 일은 어쩌다가 잘못 나버린 뇌의 샛길을 메우는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위험으로 다가가는 무허가 비포장도로. 자꾸 가지 않다 보면 언젠가는 풀이 무성히 자라나 메워지겠지. 그러나 그 흔적 또한 남아 나의 여생 동안 언제라도 다시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제 아주 불안하지는 않다. 역설적이지만 난 이번 '기회'를 통해 위기가 닥칠 때 내가 어떤 양상의 멘탈 붕괴를 겪을지 미리 맛을 본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 어둡고 축축한 길의 일부분을 이미 조금은 봐 두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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