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반도체 엔지니어를 알아? (3)

입사 전까지 나의 모습 - 마지막


결과 발표날이 되었다.

솔직히 기대 안 했는데, 안 했는데..... 사람 마음은 정말 간사한가 보다. 결국 또 클릭을 100번쯤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다른 그림이지만 당시에 주먹 꽉 쥐고 있던 아저씨(?) 그림을 보고 굉장히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때 가장 알리고 싶었던 사람은 부모님, 여자 친구였었고 부모님 중에는 어머니가 그리고 지금은 와이프가 된 여자 친구가 굉장히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좀 후회되는 것이 당시에 이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다른 회사도 좀 정성껏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 이 회사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뻐서 그냥 펄쩍펄쩍 뛰어다녔었고, 이후 쭉 놀다가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된 부분이다. 여담이지만 그 이후 결혼 전 날까지 여러 회사 면접을 돌아다녔다는 것은 비밀....


위에 잠시 적었는데 ‘어머니’만 정말 기뻐하셨고 정작 아버지는 굉장히 시큰둥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께서는 한 회사를 30년 이상 다니셨던 분으로서 당연히 회사원이 된다는 것이 좋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당시에는 별말씀을 안 하시다가 같이 목욕탕에 갔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우리 부자는 주로 목욕탕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나는 네가 회사원 말고 다른 것을 했으면 좋겠다.”

“어떤 거???”

“장사도 좋고 창업도 좋고, 아빠가 회사생활해 봤는데 나중에는 좀 답답할 거야...”

“뭐가 답답하지??”

“그건 해 보면 알겠지.”

그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를 그냥 참고나 하라는 정도로 넘어갔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당시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버지 역시 처음에는 저러시다가 나중에는 친구 분들에게 많이 자랑을 하시더라. 우리 아버지도 사실은 다른 아버지들과 똑같다는 것을 그때 새삼 느꼈다.


그런데 합격을 하기 전까지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을뿐더러 당시 어떤 직군으로 지원했는지 조차 잊어먹고 있었다. 이제 합격을 했으니 본격적으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F직군’이라고 되어 있었다. 일단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그냥 무조건 ‘걸러야’ 하는 직군이라고 나와 있었다. 어떤 글을 보더라도 그냥 힘들다고만 되어 있고 대체 뭐가 힘든 것인지 아니면 왜 힘든 것인지는 나와있지 않았다. 단순한 투정이라는 느낌이 들어 자세하게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당시에 쓰여 있던 글들이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것을 본다면 희한하게 변화가 굉장히 느린 직군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부서에서의 생활에 대한 내용은 앞으로 하나씩 하게 될 테니 우선은 회사 입사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갔고(결과 발표 이후 무려 2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기에) 합격 직후에는 반도체 공부를 더할까 아니면 놀까를 계속 갈등했었는데 그냥 노는 방향으로 정하고 정말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마치 중학교 3학년 때 기말고사 직후의 마음이거나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수능 직후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미래가 고민을 되지만 내가 바꿀 힘은 없고 그냥 즐기면 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주변 친구들 중 가장 빠른 취업인지라 사방팔방 사람들에게 술대접을 하였고 한동안 엄청나게 빠르게 말라가는 통장 잔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회사가 가고 싶었고 첫 월급이 엄청나게 기대가 되었던 철없는 시절이었다.


때는 7월 7일. 회사 연수원으로 짐을 싸서 들어갔다.

아직도 그 어색함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당시 연수원에 가는 버스에서도 옆 사람과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내렸다. 내려서 보니 이미 몇몇 사람들은 옆 사람과 친해져서 같이 식사도 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제 연수원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이러한 성격을 좀 고쳐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서 하는 것이 편하긴 하지만 말 그대로 연수원의 경우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간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처음 방이 정해지고 4명이 한 방을 쓰기 된 것을 확인했을 때 그냥 막무가내로 인사하고 악수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오자마자 샤워하면서 서로의 태초 모습(?)도 보게 되었고 방에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질 수 있었다. 그전부터 있던 그 어색함에 적응하지 못하는 점은 연수원에서 많이 해결될 수 있었다. 사실 이렇게 다가가는게 처음이 어려운 거지 한 번 쉽게 접근하면 그 다음부터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잘 되더라(나름의 교훈?)




연수원 생활은 사실 너무 재미있었다.

이미 S생명 인턴쉽에서 3주간의 합숙 생활을 했었기에 대충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있었고 그걸 다시 해 보면서 왠지 모를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후후후 동기들아 난 이미 해봐서 많이 알지롱? 이런 느낌) 이 회사는 정말 이런 교육 부분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회사였고 모래알 같던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5주면 되었었다. 산행도 같이 하고 짚라인도 타보았으며 물건도 팔아보았고 각종 게임과 군무 연습 등을 통해서 회사에 대한 사랑을 쫙쫙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또 연수 중간에 월급도 들어왔었는데 아직 연수원에서 동기들과 생활한 것밖에 없는데 월급이 나온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기했었다. 어찌 됐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사드린 것은 아니지만 첫 월급으로 당시 백화점 상품권을 사드렸던 기억이 난다. 뭔가 선물 고르는 데는 젬병이라 그냥 상품권으로 드리는 게 속 편했었다.


특히 지금은 여러 기사를 통해 과거 시대의 유물이라고 표현되는 회사에서의 군무(사실 현재 대학교에서도 다 하고 있고 야구장 등을 가면 너도나도 많이 하긴 한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흥이 있고 가무에 능한데 그냥 안된다고만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평소 같았으면 나 같은 몸치, 박치는 쉽게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 눈에 그냥 잘 안 보이게 꺼니 생각했었는데 실제 계속 춤을 추는 것을 영상으로 보여주니 내가 너무 못하는 것이 확 티가 났었다. 그래도 다른 일정 때문에 귀찮고 포기하고 싶었다. 아니 다들 그렇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저녁 식사가 끝나고 쉬는 그 시간조차도 많은 동기들이 나와서 춤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그냥 왜 저러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나 역시 혼자서라도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주변에서 혼자 연습을 하더라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으며 심지어 같은 조면 바로 뛰어나와 같이 연습을 했었다. 회사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심어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경쟁자이지만 같이 하지 않으면 경쟁 자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심어주려는 마음 말이다.


정신없었던 6주가 지나고 이제 동기들과는 헤어질 시기가 되었다.

왜 군대도 훈련소 때 만났던 동기들이랑 마지막에 눈물의 포옹 같은 것을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연수원이 아니라면 각 지방에서 올라왔던 동기들과는 보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고 왠지 모르게 끌어안고 눈물이 났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다 추억거리 정도의 이야기지만 그때 같이 춤을 추었던 기억을 아직도 가끔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회사의 전략은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본다. 타 회사에서도 이렇게 할까? 다른 회사를 가서 보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다른 계열사의 사람을 이렇게 주니어 시절부터 만나게 해 준 방법은 굉장히 파격적이고 재미있는 방법이라고 생각이 된다. 최근에는 이러한 기수문화로 인해서 서열을 조장한다고 하여 점점 각 사 별로 진행을 하고 있고 코로나로 인해서 이런 연수 자체를 온라인으로 하고 오는 경우도 종종 생기는데 그룹사 입장에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나 자존감을 높이는 기회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다. 지금 오는 후배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라떼는 말이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즐거웠던 시간은 가고 이제 본격적으로 회사에 적응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일 해야지? ㅋㅋㅋ

keyword
이전 02화니들이 반도체 엔지니어를 알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