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전까지의 나의 모습
과거로 한 번 돌아가 보면, 다른 사람보다 키가 좀 커다란 것 외에 뛰어난 것을 찾을 수 없던 학창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남들 다 공부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하고 학교를 가니까 그냥 가는 거고 학원을 가니까 같이 가는 거고...... 뚜렷한 주장도 없었고 그냥 말 그대로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을 알 수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전에 이야기했듯 성적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해 본 듯한 반장 부반장도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다.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특출 나게 잘했던 게임도 없었다. 운동도 공부도 게임도 딱 중간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아, 연애는 0점이라고 보면 된다 한 번도 못했으니까)
나는 고1 때 내가 S대를 갈 줄 알았고 고2 때 KY대 정도는 갈 수 있을 줄 알았고 고3이 되니 사실 서울 안에 있는 학교가 엄청나게 가기 힘들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의고사 때 혼자 1 지망에 E여대 2 지망에 S여대를 써 놓고 실실 웃던 모습도 기억이 나는데 당연히 결과는 안된다고 나왔다(물론 성별 때문에 안된다고 나오는 것이겠지만 성적도 안되었다...ㅠㅠ) 내가 고3 때는 내신보다는 수능이 대학을 가는데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모든 수업 과정이 수능에 집중이 되어 있었고 모의고사 점수 하나하나에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달라지기도 했다. 모의고사 성적이 올라가면 떠오르는 별(라이징 스타)이라고 불렀었고 떨어지는 사람이 있으면 지는 해(이건 영어로 안 불러주시더라)이라고 했었다. 당시 우리는 수능이 우리의 얼굴이자 명함이었다.
고3의 대미를 장식하는 수능이 끝났다.
전년도에 비해 미치도록 어려워진 수능으로 인해서 주변에서도 자살하는 사람들 나오곤 했었는데 나의 경우 이미 아버지께서 수능 본 날 책을 몽땅 가져가서 불태워 버렸던 관계로(엄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차피 공부로 성공하긴 글렀다는 아버지 후문...) 재수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학교를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의 선택’으로 학교를 가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하기도 했는데 성적을 보면 정말 하찮은 수준이라 그리 고민은 많이 못하고 진학을 했다. 당시의 아니 지금의 학생들도 똑같은 고민을 했었겠지만 학교의 간판이 정말 많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서울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도 굉장히 민감했던 시기라 내 재능이고 뭐고 간에 그냥 서울 안에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했었다.
간신히 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였다.
다소 내성적이었던 성격 탓이었을까? 대학교 1학년의 기억은 적응을 제대로 못했던 그런 학생이었던 것 밖에 없었다. 지금 다시 가서 하라고 하면 정말 신나게 잘할 수 있는데 체격적인 스펙으로 인한 음주량이 좋다는 것을 제외하면 항상 새로운 사람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하던 그런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내가 싫어하던 좋아하던 한 반에 매일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은 친해진다는 점이 좋았었는데 보고 싶으면 보고 보고 싶지 않으면 보지 않아도 되는 이런 상황이 어색했고 수업을 계속 다른 곳에 옮겨 다니면서 하는 것도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 굉징히 스트레스였다. 이때 내가 ‘외아들’이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모든 외아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굳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공대로 와서 보니 위에 적었던 내용이 비단 나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듯했었다.
수업은 대부분 혼자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 많았고 공대라고 해서 실험이 엄청 많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실험보다는 이론 내용을 암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수학도 점점 어려워졌고 역학들은 정말 미친 듯 어려웠다. 도대체 과학자들은 이런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교수님들은 이런 것을 어떻게 배워서 알고 있을까 하는 신기함이 있었고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막상 물어보면 무슨 소리인지 이해 자체를 못해서 물어보나 마나 한 시간이었다.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방황했던 시기이기도 했고 자연스레 수업을 제치거나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당시 몇 안 되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즐거웠던 시기였다. 더군다나 당시 평생 처음으로 시작했던 연애는 주변을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하는 놀라운 효과가 있었고 헤어지고 울고 다시 사귀고 이런 것을 반복했던 시기였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한 번쯤 가는(안 가는 경우도 좀 있는 거 같긴 한데...) 군대를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가게 되었다.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그때까지도 방황을 거듭한 나머지 학과에 대한 관심이 정말 1도 없었고 모든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어 기초가 굉장히 부실해졌다는 것이었다. 많은 남학생들이 그렇듯 군대에 가서 그 무한한 시간 속에서 자아의 성찰과..........(에휴).... 어찌 됐건 시간이 많다 보니 정말 희한하게 공부도 하고 독서도 하고 밥도 적게 먹는 아주 ‘건전한’ 상태가 되어 돌아오게 되었다. 물론 좋은 습관은 금방 없어지긴 하지만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좋은 습관이라고 한다면 일찍 일어나는 것과 독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습관으로 지금까지 먹고살고 있는 것을 본다면 군대를 다녀온 것이 마이너스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까? 차후에 아들램들이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들도 가게 된다면 뭔가 변화를 느끼고 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제대 이후 드디어 ‘나의 인생’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말 그대로 부모님이 깔아준 길, 다른 사람이 했던 길을 그대로 따라왔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다음 길을 닦아야 될 시기가 왔다는 의미이다. 공부를 하더라도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고 전략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해졌고 이제는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아야 하는 시기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 내가 있던 과는 신소재공학과였는데 과목 중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철강재료’ 였기 때문에 처음에 준비했던 회사는 포스코나 현대제철, 동부제철 등과 같은 제철회사를 준비했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이 떠올랐는데 내가 처음 대학교를 들어갈 때 했었던 고민..... 서울에서 멀리 떠나가고 싶지 않다는 그런 생각? 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없다... 없어... 서울 근교에 찾아봐도 제철소는 없다. 제강도 마찬가지고...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뭔가 서울을 멀리 벗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큰 모험이라고 생각을 했다. 친구도 가족도 모두 서울에 있는데 경기도도 아니고 저기 더 먼 곳으로 가야 하다니, 그냥 그 자체가 싫었다. 생각해 보면 이때 참 철이 없었다. 이런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나의 커리어가 어떻게 될까를 조금 더 고민했어야 했다(사실 사람은 무엇이든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잘못되거나 후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역시 이때 그랬고 지금은 많이 후회를 한다) 후회는 일단 나중 이야기이고 당시에는 지상과제가 위치였기 때문에 철강은 그냥 포기,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기로 했다. 서울 시내에서 보니 은행이나 증권사 다니는 분들이 상당히 멋진 양복을 입고 앉아서 고객과 상담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 내 미래는 바로 이거야!”
라고 생각했던 것이 대학교 3학년 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현실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행동을 많이 한다. 세상에 내가 결정해서 안 되는 것이 어딨어라고 자신 있게 시작을 했는데 애초에 어디서부터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 일이 정확히 어떤 일인지 어떤 고충이 있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더라도 오직 ‘취업 성공기’ 나 ‘면접 성공기’ 정도만 나와 있고 일단 합격만 하면 그 이후에는 꽃길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지금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그 안에 들어가서 뭔 일을 하고 그것이 나에게 맞는지 여부를 알아볼 방법이 없다.
그래도 운이 따랐는지 S생명사에서 인턴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 금융권 3대 분야 중 가장 영업이 어렵다는 곳이었는데 당시 교육을 담당하시던 분의 이야기를 듣자면 은행은 10명이 오면 1명은 꼭 무엇인가 가입을 하고 증권사는 100명이 오면 1명은 무조건 신규가입을 하는데 보험사는 10,000명을 만나도 1명이 가입을 할까 말까 망설인다고 표현을 하셨다. 실제로 교육을 받을 때는 세상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실제 필드에 나가서 영업을 해 본 결과는 이전에도 언급했듯 소심했던 나에게는 거의 쥐약과 같은 결과를 나타내게 되었다. 생각보다 영업이라는 것을 알고 만나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이 굉장히 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다른 것에 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내가 못해서 그런 것이 맞다고 생각된다. 난 아직도 나의 커리어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위와 같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왕 칼을 뽑았으니 끝까지 가보 자라는 생각으로 금융권에 닥치는 대로 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 서류 탈락의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시도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후회는 없었다(후회고 뭐고 누구한테 말을 해봤어야 후회를 하지 ㅠ) 솔직히 금융권에서 전공을 보지 않아서 지원이 가능하게 된 것이었지만 전공을 안 보는 것이었지 학교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우수한 학벌을 가진 친구들이 많이 합격을 하게 되었다. 일례로 일전에 S대에서 K그룹 리쿠르팅이 있어 타학교지만 불편을 무릅쓰고 참석을 했었는데 인사 담당자들이 학교 학생들에게 그렇게 친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처음 보았다. 또 이런 질문도 있었는데,
“저 학점 커트라인이 3.0인데, 저는 군대 가기 전에 놀아서 지금은 학점이 2.0이 안됩니다. 그러면 지원조차 안 되나요?”
“S대는 무조건 서류 합격입니다. 그런 거 신경 안 쓰시고 작성만 하시면 됩니다.”
아, S대는 다르구나, 나랑은 시작점이 다르구나 생각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다!!!!!! 떨어졌다.
그래서 다시 전략을 수정하여 서울 혹은 경기도 권 내에 나의 학벌이나 혹은 학과를 통해서 갈 수 있는 곳을 찾았고 당시 그나마 사람을 가장 많이 뽑는 S전자의 반도체 쪽으로 지원서를 쓰기로 했다. 그런데 위에 금융권보다 정보가 더 없는 것을 확인하였고 대체 그 안에서 뭘 해야 하는 것인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나와있질 않고 그냥 ‘어렵다’라고만 적혀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서술어만 있고 주어가 없는 상태에서 대체 어떤 면접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일단 인문계와는 다르게 공학계열은 자신의 과가 아니면 아예 지원 자체가 막혀있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그나마 사람을 제일 많이 뽑는다고 했던 설비 엔지니어 직군으로 지원을 했다. 지원을 하고 회사에 입사해서 부서 배치받기 직전까지도 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으니 어찌 보면 정말 폐쇄적인 직업군이 아닐까도 생각을 했었다.
서류는 당연히(학점만 넘으면 되는 것이었으니) 통과했고 필기시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통과를 했다(나름 이렇게 우수했다고 생각하자 우훗) 이제 면접만 잘 보면 통과를 하게 되는데 이 면접이 문제였다. 정보도 없고 관심도(?) 없었으니 애초에 반도체 관련 내용을 알 리가 없었고 일단 우격다짐으로 가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갔다. 참고하자면 이 면접이 처음은 아니었고 몇몇 합격했던 회사가 있었으나 거리가 멀거나 연봉이 진짜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낮아서(2008년 당시 1800만 원) 포기를 했던 회사들이 꽤 있었다. 면접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해봤으니 이 정도면 소극적이었던 성격이 많이 좀 괜찮아지지 않았나 생각도 했었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인턴쉽에서 보험 영업을 하려고 전화 한 통화도 못했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다.
면접은 세 가지의 종류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이랑은 다소 다른 부분이 있긴 하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진행이 되는데 인성, 기술, 토론 면접 이렇게 총 3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성이야 뭐 대답을 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었지만 기술 면접과 토론 면접은 다소 문제가 있었다. 애초에 반도체의 정의만 아는 수준에서 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모두 알고 있던 Mosfet이나 N형 반도체 등등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었다. 실제로 기술 면접 당시에 나왔던 질문 내용은 ‘태양광 발전과 태양열 발전의 차이점을 설명하시오’ 였는데 둘이 뭔지도 정확히 몰라서 면접관에게
라고 외쳤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합격을 하면 사람이 부족했던가 이런 미친놈 기질이 신기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 법했다. 이미 면접은 망한 기분이었고 다른 회사를 준비해야 하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