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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우는 사람은

슬픔은 울 때마다 몇 번이고 새로 태어난다

by 소윤

사람의 눈물을 보는 일은 당혹스럽다, 고 생각해왔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너는 위로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사람 같다고. 그 말은 제가 타인을 위로하려 할 때마다 종종 앞을 가로막곤 합니다. 위로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해본 사람, 처음은 언제나 서투른 것, 나는 위로에 서툰 사람.


본래 자신도 눈물이 아주 없는 사람입니다. 모친은 늘 그렇게 말합니다. 어렸을 적 너는 아무리 매를 맞아도 눈을 부릅뜨고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고, 그게 미워서 서러워서 그만 때릴 것을 한 대 더 때렸다고. 그 한 대를 더 맞아도 울지 않았다고. 그러면 나는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할머니 손에서 유년을 보냈는데, 그 할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눈물을 짜려 입을 삐죽이고 미간에 힘을 줘봤지만 조금도 눈물이 나올 기색이 없어 난감했습니다. 결국 울지 못하고 할머니를 보냈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눈물을 보는 건 당혹스러운 일입니다. 내 안에 도통 눈물이 없으니까요. 푹 젖는 마음을 모르니까요. 눈물이라는 것이 어떤 기저에서 흐르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슬픔은 항상 낯이 섭니다.




아무리 눈물에 서툰 저라도, 아니, 서툴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눈물이 몇 있습니다.


처음으로는, C가 제 품에 안겨 울었던 일입니다. C가 아주 소중한 언니를 잃었을 때였습니다. 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요. 그때 C는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었습니다. 유리컵 위에 둥그렇게 부풀어 오른 물의 표면장력처럼. 그때 C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삶에 간신히 맺혀 있었습니다. 흘러내리지 않게 최소한의 장력으로 삶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C는 카페에 들어설 때부터 울 것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울음보다 더 슬픈 것은 차라리 울 것 같은 얼굴. 이미 벌어진 사건보다 더욱 두렵고 슬픈 것은 징조이자 예감이듯이. C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울어버렸습니다. 저는 또다시 당황했고,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C가 제 품에 안겨 왔다는 것입니다. C가 제 가슴에 고개를 묻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때 저는 손을 내려놓고 C의 어깨를 도닥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C의 어깨에서 10센티미터 정도 허공 위에 손을 띄운 채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H가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너 위로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해본 사람 같아.


저는 얼어버렸습니다. C의 어깨에 영원히 닿지 못한 그 10센티미터의 간격이 지금 저와 C를 영원히 갈라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C의 빈 어깨를 떠올립니다. 닿지 않았고, 닿지 못했고, 닿을 수 없는 어깨를.




그다음 언젠가, 제가 아주 사랑했던 사람이 제 앞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제가 그녀의 신뢰를 깨버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녀를 속였습니다. 저는 그때 참으로 악했습니다. 악한 주제에 약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불같이 화를 내다가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나중에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녀를 다급하게 안아주었습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되뇌면서요. 그녀는 내가 빌고 애원할수록 더욱 크게 울었습니다. 아주 저 들으란 듯이요. 저는 제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거의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차라리 그때 그녀와 같이 울었어야 했을까요. 그런데 아무리 아무리 애를 써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죽고 싶은 심정인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약했던 그녀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 이번에는 슬픔을 몸으로 받았습니다. 울다가 졸도를 해버린 것입니다. 저는 너무 놀라 그녀의 뺨을 때렸습니다. 일어나 봐. 정신 좀 차려봐. 그녀는 히끅히끅 소리를 내면서 뒤로 넘어갔고 저는 이대로 그녀가 죽는 건 아닌지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 와중에 무섭다고 생각하는 제가 무섭기도 했고요. 정신을 차리자 그녀는 이미 제 앞에서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녀가 기억하는 제 마지막은 아마도 자기의 뺨을 때리는 모습이었겠지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건 제 마음의 어떤 연약하고 소중한 시절의 문이 닫히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글을 써, 뭐라도 좀 써. 일기라도 쓰면 마음이 정리될 거야.


갱년기를 앓고 있던 모친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절, 저는 모친에게 노트와 펜을 건넸습니다. 그걸 받아 든 모친의 표정이 다소 묘했습니다. 모친은 아무 말 없이 노트와 펜을 챙겨 방으로 들어갔고 저 역시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각자의 방문이 닫혔습니다. 왜 매번 나의 문은 닫히는 것일까요. 때로는 열리기도 하는 것이 문인데.


저는 제 어깨가 비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무언가가 제 어깨에 올라앉아 있다면 어깨를 툭툭 터는, 그런 종류의 사람입니다. 문이 닫혀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오히려 문이 닫혀 있다면 더 어두워지기 위해 방의 불을 끄는 사람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였던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모친께 묻고 싶었습니다. 내가 산도 밖으로 나왔을 때 울기는 했느냐고.


며칠 후. 저는 우연히 모친의 휴대폰을 보게 되었습니다. 잠금화면의 패턴은 제가 설정해준 것이라 쉽게 해제할 수 있었지요. 정말 우연히, 우연히 음성녹음 메뉴에 들어가니 모월 모일, 날짜와 함께 음성녹음 1, 음성녹음 2, 음성녹음 3…. 파일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를 조심스레 재생해보았습니다.


오늘의 일기

오늘은 감사한 일이 참 많았다….

소윤이가….


순간 깨달았습니다. 어렵고 가난한 유년을 보낸 모친이 사실은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요. 글이라는 것이, 모친에게 얼마나 커다란… 아주아주 상냥하고 다정한 폭력이었는지를요. 아니, 어쩌면 글로도 차마 쓸 수 없는 마음이란 게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위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닿지 못했습니다.




저는 대학을 안산에서 나왔습니다. C도 안산에서 만난 친구였지요. ‘그날’, 저는 강의실 앞 테라스에서 C, M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다른 재난은 기억나지 않는데, 유난히 ‘그날’에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찌르듯이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그날’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요. 배가 가라앉았대. 정말? 응. 근데 전원 구조됐대. 아, 진짜 다행이다.


안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M이 내내 울다가 주저앉았습니다. 동생의 친구가 그 배에 타고 있었다고요. C는 M과 함께 엉엉 울었습니다. 저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데 눈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씨발, 진짜. M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모두 울었습니다. 다 울었습니다. 저만 빼고요. 어떤 눈물은 응당한 순간에 응당 흘려야 하는 눈물이기도 합니다. 눈물의 총량이 있다면 반은 자신을 위한 눈물, 반은 그 ‘응당한 순간’을 위해 흘려야 하는 눈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응당한 순간’에 우는 울음은 강력한 눈물의 고리를 만든다고요.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아주 강한 고리입니다. 저도 그 고리를 맺고 싶었습니다.


실은 잘 우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그날’에도, ‘그날’ 이후에도 저는 울지 않았지만, 학교에 가기 위해 안산에 갈 때마다 늘 몸이 아팠습니다. 졸업할 때까지도요.


저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한 번도 안산에 간 적이 없습니다.




이직을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야근을 한 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강물 위에 걸쳐진 대교. 빛은 밤의 뼈. 저는 가느다란 뼈 같은 앙상한 야경에 간신히 기대어 있었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울 삽화가 그날따라 무척 심했고, 좋지 않은 마음으로 출근해서 미친 듯이 부서지고 깨진 날이었습니다. 울고 싶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울음보다 슬픈 것은 울고 싶은 마음. ‘하고 싶다’라는 말은 ‘할 수 없는 상태’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잔뜩 울고 싶은 마음으로 도시의 경계를 넘었습니다.


그때 이어폰 안쪽에서는 김여명의 <방백>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노래를 퍽 좋아합니다. 한없이 반복 재생할 정도로 좋아하는 노래지요. 그날따라 가사가 유난히 찌르듯이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마지막 우리 장면이 나를 철없이 울게 할 거야.


저는 C와 그녀와 모친, 그리고 ‘그날’에 함께 운 사람들의 우글거리는 방백을 영원히 영원히 복기하고 있습니다. 연극에서 등장인물이 말을 하지만, 다른 등장인물은 들을 수 없고 오직 관객만 듣도록 약속된 말, 방백. 저는 유일한 관객이고 그들은 저만 들을 수 있게 영원히 말을 걸어옵니다. 그렇게 남겨진 마지막 우리 장면이 나를 철없이 울게 할 거야.


그래서 모친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습니다. 생생한 진짜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때만큼 간절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모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모친이 전화를 받자마자 저는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말도 못 할 정도로 울음이 한꺼번에 새어 나왔습니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너무 어렸고.


나도 울고 싶었어. 정말.


모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택시 기사님도 아무 말 않은 채 밤의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았어. ‘않았다’는 말은 너무 슬픈 말입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상정하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벌어진 일들, 돌이킬 수 없는 관계 속에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나는 울었습니다. 울면서, 이상하게도 그 울음을 반으로 갈라보는 상상을 했습니다. 울음은 정직하게 반으로 딱 쪼개져, 울음의 단면은 물기 어린 햇과일처럼 싱싱하고 투명할 것 같았습니다. 맑은 물이 줄줄 흐를 것만 같았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사람의 울음만큼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새롭구나.


택시가 집 앞에 서자 울음은 그쳤지만 아주 탈진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울음이 이렇게 지치는 것이었구나, 눈물이 소모하는 에너지는 엄청나구나. 그 박력에 압도당했습니다. 저는 그때 이후 이 글을 쓸 때까지, 그사이에 한 번도 운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어딘가에 나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곡비, 남의 장례에서 대신 울어주는 사람. 그 애는 슬픔의 천재. 너무 뛰어난 곡비라서요. 내 눈물을 대신 다 흘려줘서 제가 흘릴 눈물이 말라버린 걸지도요. 그런데 너무 혼자 울지만은 않았으면, 나한테도 눈물을 조금 나눠주면 좋았을 텐데. 누가 내 울음의 몫을 나 대신 울어준다는 것은 위로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외로움일까요.


저는 어떤 순간에 응당 흘려야 했을, 그러나 차마 흘리지 못한 눈물을 언제쯤 쏟아낼 수 있을까요. 그때 택시 안에서 한번 실컷 울고 난 다음 깨달았지요. 아무리 눈물이 많은 사람도, 자신의 눈물 앞에서는 처음 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슬픔은 언제나 새로 솟아나는 슬픔, 새로 태어나는 슬픔. 해묵은 슬픔이 어디 있나요. 완전히 끝나는 슬픔이 어디 있나요. 울면 울수록 슬픔은 더욱 새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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