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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윤 Jan 10. 2022

매영 선배

죽은 자의 말을 받아 적는 사람

매영 선배

매영이라는 이름의 뜻은 ‘영매’를 거꾸로 한 것이라고, 선배는 하이볼을 한잔 들이키며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만난 것이었으니, 거의 6년 만의 만남이었다. 선배는 내게 스시 오마카세를 사 주었다. 대학 다닐 때 말 한 번 섞어본 적도 없고, 눈인사만 겨우 나누던 선배와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초밥을 먹었다. 처음 선배를 만나기 전에는 굉장히 어색한 자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대화는 부드럽게 흘러갔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결국 안 쓰게 되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렇죠,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집에 가면 또 안 쓰고.


선배는 시를, 나는 소설을 썼다. 선배의 시에서는 언제나 죽음의 냄새가 났다. 선배는 오랫동안 투병을 해왔다. 그야말로 ‘죽을 병’에 걸려서, ‘죽다 살아난’ 사람이 선배였다. 유쾌한 백혈병 환자의 투병일기로 네이트 판에서 한동안 대 인기를 끌었던 선배의 글. 오히려 아플 때 가장 유쾌했다는 선배.


-할 수 있는 게 시 쓰는 것 밖에 없으니까, 그냥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죽음 냄새가 가득 배었던 선배의 시를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링거액이 똑똑 떨어질 때 혈관이 욱신욱신 쑤시고 아프듯, 타인의 감각을 받아들이는 일은 늘 그렇게 이질적이고 아프듯, 선배의 시는 내게 늘 그런 느낌을 주었다. 선배는 시를 ‘받을’ 때 후각으로, 향으로 받는다고 했다. 시는 쓰는 게 아니라 받는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이번에는 내가 하이볼을 한잔 들이키면서.


-그러고보니 선배는 몸 좀 괜찮으세요?

-네, 건강하죠. 요새 기분은 좀 어때요?

-저도 요새 좀 괜찮아요.


병과 글이라는 두 화두로 묶인 선배와 나, 선배는 매영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쓴다. ‘영매’를 거꾸로 한 말, 선배는 병상에서 수많은 친구들의 죽음을 봐 왔다. 제가 스무 살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더 이상 나와 가까운 사람이 죽지 않아서 기쁘다. 라고요. 그러니까, 고작 스무 살 때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쩔 수 없이 유쾌한 백혈병 환자가 되어야 했던 건.


선배는 지금도 죽음과 가까운 일을 한다. 코로나 방역 업체에서 일 하는 선배. 죽음이 지나갔을 지도 모르는 자리를 소독하는 일. 선배가 만일 시를 쓰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을 수도 있고, 11년 사귄 오래된 여자친구와 결혼했을 수도 있겠지. 선배는 그 모든 것을 시와 맞바꾸었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마치 오래된 주박에 걸린 사람처럼.


-시를 쓰는 사람들이, 요새는 싫어졌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 안에 있는 내가 싫어졌달까. 그래요.


나는 소설을 사랑했다. 소설 쓰기도 사랑했다. 나 역시 언젠가는 선배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설 쓰기밖에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소설 쓰기는 내게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내 스스로를 갉아 먹고, 끊임없이 내 안의 모든 것을 이끌어 올려야 했다. 나는 소설을 쓸 때 한 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 늘 120%를 다 해 썼다. 소설 한 편을 탈고하는 데, 한 학기. 6개월이 걸렸고 졸업할 즈음의 나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로 인해 글쓰기가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나는 선배에게 묵은 말들을 고백하듯이 말했다.


-저는 소설 쓰기를 정말 사랑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소설 말고도, 책도 만들 수 있고 에세이도 쓸 줄 아니까, 그것이 자꾸 도피처가 되는 것 같아요.


-차라리 책 만드는 편집 일이나, 에세이를 본업으로 하고 소설을 취미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죠.


-취미로 사랑을 하나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취미로 사랑 못 해요.


선배는 여전히 써야죠, 써야죠,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계속 중얼거리고,


선배가 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선배와 같이 걸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 속에 돌이 하나 있는데, 우리가 그 돌을 만지거나 감각하거나 관찰하거나 탐구하기도 전에,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그 돌을 집어던져버리고 마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마음 속에 돌이 하나 더 내려앉았다. 그리고, 나는 그 돌을 지금도 집어던지고 있다.


언젠가 내가 다시 소설을 쓰게 될 날이 올까? 그 날이 온다면, 선배에게 꼭 밥을 사주고 싶다. 아주 비싸고 맛있는 밥을, 선배. 우리 자주 만나야겠어요. 선배를 보면 무언가를 계속 쓰고 싶어지니까. 다들 그러더라고요. 나 만나면 무언가 계속 쓰고 싶다고. 아마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선배가 글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라 그런 걸거예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아 오늘이 JH의 기일이었구나, 하고 떠올렸다. 선배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제 친구의 기일이예요.

-술을 안 마실 수 없었겠군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저보다 훨씬 더 많은 기일을 챙겨야 하는 선배의 마음은 어떨까 하고.


끝내 살아남은 사람, 살아 남아, 죽은 자의 말을 시로 받아 적는 사람, 나는 밤길을 홀로 걸으며 매영, 매영 하고 그의 이름을 다시금 되뇌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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