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우울 주간이었습니다. 3일 동안 병가를 썼습니다. 저는 3일 동안 자다 깨다 울다 하면서 침대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출간 일정이 한 주 미뤄졌습니다. 팀장님이 저 대신 작가님께 사과 메일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 사과 메일을 읽고 좀 울었습니다. 그 사과 메일이 특별히 대단한 내용이거나, 구구절절한 내용이라서가 아니라 이런 사과를 너무 많이 해본 사람 특유의 차분함과 유들유들함, 그리고 피로함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간 일정을 미룬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출간 일정을 미루게 된 이유의 팔 할은 저의 병가 때문입니다. 도대체 어째서일까요? 저는 어째서, 아직도 이 회사에 다닐 수 있는 것일까요?
사장님은 저를 처음 봤을 때를 회상하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천의 공단에서 경리를 하고 있던 애를, 내가 어쩌자고 데려와서 문학을 시키겠다고 했는지. 사장님 말씀은 틀렸습니다. 저는 공단이 아니라 건설업체 경리였습니다. 그리고 정신병이 있었습니다. 입사 1년도 되지 않아 정신병이 도져서 저는 도저히 회사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을 포함한 사원들의 배려가 (알게 모르게) 시작되었습니다.
면담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퇴사할 생각도 참 많이 했습니다. 5일 중 이틀밖에 출근하지 못하는 사원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퇴사하고 시골 요양원 같은 정신병원에나 처박혀 여생을 행려자로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 루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도 저를 힘들어하시니까요. 부모님도 차라리 네가 몸이 아프거나, 사지가 한 짝이 없으면 너를 더 잘 돌봐줄 수 있었을 거라고 울면서 그러셨으니까요.
저는 누군가의 도움이나 백업이 없이는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업무 중에 공황장애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기분을 종잡을 수가 없으며, 때로는 사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자주 깜빡깜빡하고 수전증이 심해 손을 덜덜 떱니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시시때때로 ‘제가 뭐 잘못한 게 있나요? 혹시 저를 미워하시나요?’와 같은 난감하고 무례한 질문도 자주 합니다. (제게는 망상증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아니오, 소윤 씨. 소윤 씨는 잘못한 게 없어요.’라고 대답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저는 불안을 조금씩 덜어갑니다.
어느 날 회식이 끝나고 사장님과 둘이서 택시를 타고 오는데 (집이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제가 사장님께 물었습니다. “왜 저를 자르지 않으셨어요? 저는 정신병이 있는데요. 근태도 매우 좋지 않고요.” 그러자 사장님이 말했습니다. “난 그래도 네가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난, 너를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껴. 너를 쓰면서 너를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 참 좋다.” 저는 그때도 좀 울 뻔했지만 참았습니다. “너를 믿어준 내 머리를 나 스스로 쓰다듬고 싶다.”
저는 아직도 그 믿음에 보답하지 못합니다. 이번 주에도 병가를 3일이나 썼으니까요. 회사 사람들 앞으로 유서를 썼다가 지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가 이 팀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인지 아직까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출간 일정은 미뤄지고, 교정지는 한참 밀려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면 동생이 오은영 박사님을 흉내 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 울었지? 이제 할 일을 해. 다음 주는 꼭 병가를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죽고싶은 마음이 떠오를 때마다 “내가 너를 일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라는 데서 보람을 느껴.”라는 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입니다. 우영우는 남들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캐릭터입니다. 저 역시 우영우와는 궤는 다르지만, 타인의 도움이나 백업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영우나 저 같은 사람도 생활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서 저는 어떤 희망을 느낍니다. 제가 불안을 호소할 때 저를 외면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공황장애를 일으켰을 때 놀라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병가를 쓸 때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대신 사과 메일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나 우영우 같은 사람이 시설에 처박히지 않고, 평생을 행려자로 살지 않고, 사회 구성원 중 하나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는 만근을 위해 꼭 노력하겠습니다. 약도 잘 챙겨 먹고요. 저를 증명하는 것이 약 스무 알이나 제 병명이 아닌, 제가 만든 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