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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윤 Sep 06. 2022

꽃들은 망설임 없이 피고

나는 작은 화분 하나 들이지 못하는 마음

일을 일찌감치 끝내고 동생과 홍대에 갔다.

소품샵에 들러 동생은 꽃씨와 작은 화분을 샀다.

언니는 안 사? 동생이 물었다. 내가 사면 죽일까 봐.

나는 망설였다. 내가 꽃씨와 화분을 계산하자 직원이

꽃말을 알려주었다. ‘망설임 없는 사랑’이예요.

망설임 없는 사랑, 망설임 없는 사랑, 몇 번이나 되뇌었다.

골목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며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회사에서는 3개월간의 휴식 시간을 주었다.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오라고

회사가 내게 요구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한 가지 조건.

3개월 동안 책을 한 권 만드는 것. 그것뿐이었다.

휴식 첫날, 느지막이 눈을 떴더니 태풍이 가고 하늘이 맑게 개어 있는 아침.

오늘 노을이 정말 예쁠 거야. 내 친구 화성이가 아침에 그렇게 말했었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의 노을이 유난히 예뻐.

오늘 노을 사진 찍어서 하나씩 공유하자. 내가 대답했다. 노을 사진을 함께 공유할

친구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3개월 동안은 정말 예쁘고 좋은 것들만 봐야지.

오로지 책 한 권하고만 호흡해야지. 모든 것을 다 잊고.

난 3개월 동안 정말 예쁘고 좋은 것들만 볼 거야. ‘책방 무사’로 가는 길에도

동생에게 몇 번이고 다짐하듯 그렇게 말했다.

‘무사’ 아무 일도 없다. 나와 동생이 그토록 바라는 것.

‘무사’에 갔더니, 내가 만든 책이 있었다. 조심스레 책방 주인에게 자랑도 해보았다.

내가 만든 책이 여기 있다고, 내 일이 여기 있다고. 아직 나 일을 놓지 않았다고.

지나가는 길에 동생은 이것저것 사진을 찍었다. 골목길의 자판기 사진도 찍고,

꺾어지는 골목 어귀에서 빨갛게 핀 장미꽃 사진을 찍었다. 꽃 한 송이에 속절없이 마음이 흔들린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동생은, ‘망설임 없는 사랑’을 꼭 안고 잠들어 있다.

모든 것이 다 싫어 절로 들어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답장했다. “속세의 꽃을 보내줄게.”

나는 아까 전 동생이 찍은, 골목 어귀에 한 송이 홀로 핀 장미꽃 사진을 보내주었다.

친구는 답장으로 소담하게 핀 절간의 들꽃들을 보내주었다.

나는 생각한다. 어떤 꽃이든, 꽃들은 피어날 때 망설임이 없다고.

뿌리를 내릴 때, 머리를 쳐들어 올릴 때 아무런 망설임 없이 꽃을 피운다고.

나는 작은 화분 하나 죽일까봐 들이지 못하는 작고 초조한 마음.

그러나 나보다 몇 배는 작은 저 들꽃들은 망설임 없이 자라난다.

그리고 내 마음은 역시, 꽃이나 노을, 물결 같은 것들에 망설임 없이 꺾인다.

좋은 것들에 망설임없이 마음을 내주어야지. 사랑하는 이들에게 망설임 없이 마음을 다 주어야지.

그래서 꽃을 피울 시기가 올 때 망설임 없이 고개를 들어야지.

3개월 동안은 식물을 키워 볼 생각이다.

물을 주고, 적당히 다정스런 무관심으로.

그러면 언젠가 저도 모르게 자라 있을 꽃들.

망설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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