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 Sep 13. 2023

Clean Meat를 만들어 온 혁신가들의 이야기

폴 샤피로의 <클린미트>를 읽고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는 동물은 누구일까? '만물의 영장'이라고도 불리는 인간일까?


사자 4만 마리

코끼리 50만 마리

펭귄 5000만 마리

가축용 돼지 10억 마리

가축용 소 15억 마리

가축용 닭 500억 마리


정답은 '가축용 닭'이다. 78억 명에 육박하는 세계 인구의 식량이 되기 위해 500억 마리가 넘는 닭들이 매해 새롭게 태어나고 죽는다. 미국에서는 매년 9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도축되는데, 무게로 계산하는 해산물은 포함되지도 않은 수치다. 즉, 미국에서 식용으로 쓰이는 동물의 숫자가 전 세계 인구보다 많다. 


2050년에는 세계 인구가 100억 명에 육박할 것이라 예측된다. 하지만 그에 비례하여 가축 수를 늘리기는 어렵다. 이미 축산업은 지구 자원을 한계치로 활용하고 있고, 기후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공장식 축산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은 증가하는 인류를 먹여 살릴 해답이 아니다. 그래서 'Clean Meat'라는 개념이 나왔다. 가축을 키울 필요 없이 만드는 '진짜 고기'를 말한다. 모든 고기는 근육 조직과 지방 조직의 조합이고, 이 조직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세포를 기본으로 하여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고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고기를 통상 '배양육'이라고 부른다. 


폴 샤피로의 책 <클린 미트>는 배양육의 시작과 초기 발전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값진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인 2004년 배양육 연구를 지원하는 최초의 단체 'New Harvest(뉴하비스트)'의 설립부터, 2013년 세계 최초 배양육 시식회, 오늘날 가장 큰 배양육 기업이 된 업체들의 초창기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샤피로는 배양육 업계의 주요 인물들과 심층 인터뷰를 하며, 언론에서는 찾기 어려운 깊고 흥미로운 스토리들을 끌어내었다. 배양육과 관련한 다양한 담론과 역사를 담고 있는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 길을 개척해 나갔던 선구자들의 스토리였다. 그래서 이번 북 리뷰는 특히 내가 인상 깊게 읽은 몇몇 인물들의 스토리를 요약하는 방식으로 하고자 한다. 




제이슨 매시니(Jason Matheny), 뉴하비스트 설립자

출처: RAND, New Harvest

New Harvest(뉴하비스트)는 동물 없이 진짜 고기를 키우는 연구를 지원하는 세계 최초의 단체로, 2004년 설립되었다. 제이슨 매시니는 존스홉킨스대학원 공중보건학 대학원생이던 2002년 인도 뉴델리 교외 마을에 에이즈 퇴치 프로젝트를 하러 갔다가 현장의 처참한 닭 농장 실태를 보고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매시니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축산업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조사를 시작했다. 먹을 수 있는 근육을 시험관 환경에서 키우는 연구를 접한 그는 관련 과학자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이어오다 마침내 뉴하비스트를 설립했다. 

매시니는 배양육 산업의 기반을 닦은 개척자다. 그는 네덜란드 농림부 장관과 단독 미팅 자리를 어렵게 마련하여 배양육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부가 지구를 지키고 싶다면 식물성 단백질이라는 한 가지 대책에만 모든 지원을 쏟지 말아야 한다며, 이는 마치 화석연료 대체를 위해 모든 연구 역량을 풍력에만 집중하는 것과 같다고 설득했다. 몇 달 후 네덜란드 정부는 200만 유로를 3개의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하며 배양육 연구를 서포트했다. 

또한, 그는 배양육 분야에서 연구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공학자들을 독려해 배양육 대량생산의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에 참여시켰다. 그 결과 2005년 [Tissue Engineering] 저널에 배양육 생산법을 개괄하는 최초의 과학 논문 <In Vitro-Cultured Meat Production>이 실렸다. 




이샤 다타(Isha Datar), 뉴하비스트 Executive Director

Source: https://new-harvest.org/isha-paper-ten-year-anniversary/

캐나다에서 분자세포생물학을 공부하던 이샤 다타는 2010년 <Possibilities for an In-vitro Meat Production System>이라는 논문을 [Innovative Food Science and Emerging Technologies]에 등재했다. 본인의 논문을 매시니에게 보내는 등 적극적이고 열정이 넘쳤던 그녀는 뉴하비스트의 첫 직원이 되었다. 

그녀는 2014년 효모 발효를 통해 우유를 생산하는 Muufri(현 Perfect Day Foods)와 난백을 제조하는 Clara Foods(현 The EVERY Company)를 공동창업하기도 했다. 훗날 그녀는 창업 지분을 뉴하비스트에 넘기고 세포농업 연구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데 사용했다. 여담으로, 세포농업(cellular agriculture)이라는 단어를 그녀가 만들었다고 한다. 뉴하비스트의 리더로서 그녀는 미국 Tufts 대학교와 공동으로 '뉴하비스트 배양조직 장학금'을 만들고, 이 학교의 조직공학연구센터 소속 대학원생 지원을 시작했다.




우마 발레티(Uma Valeti), 업사이드푸드 (구 멤피스미트) Founder & CEO 

Source: https://umavaleti.medium.com/whats-in-a-name-b9450f1491a3

인도 남동부의 안드라프라데시 주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우마 발레티는 인간이 고기를 먹는 행위에 대해 고민했다. 트리거가 됐던 사건은 12살 때 방문한 이웃의 생일잔치였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뛰노는 앞마당 반대편에서 도축을 기다리는 동물들이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염소 한 마리가 말뚝에 묶인 채 떨고 있었고, 또 다른 염소는 도축 직전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닭장 속 닭들은 몸이 굳은 채로 대형 도마에 올라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절망이 드리워진 짐승들의 울음소리 너머로 "생일 축하합니다" 노랫소리가 앞마당에서 들려왔다고 그는 회상했다.

이후 의대에 진학한 발레티는 자신의 고기 섭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후 채식을 시작했다. 의대를 졸업한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심장 전공의로 수련을 시작했다. 환자의 심장에 줄기세포를 주입하면 심장근육이 재생되는 모습에 매료된 그는 다른 근육으로도 같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나아가 이 기술을 응용하여 기존 고기보다 더 건강한 고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컨대, 건강에 좋지 않은 포화지방 대신 오메가 3 등 건강에 좋은 단일불포화지방산으로 근내 마블링을 구성하는 것이다. 

2015년 발레티는 배양육 연구에 특화된 연구실을 대학 내에 개설했다. 하지만 대학병원 시스템은 인체의 장기를 재생하는 연구에 맞춰져 있어 발레티의 목표와는 괴리가 있었다. 심장 전문의로서 생명을 구하는 일과 육류 산업의 부작용을 종식시킬 혁신의 일 사이에서 고민하던 발레티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하여 2015년 말 세계 최초로 배양육 상용화에 특화된 Crevi Foods를 설립했다(훗날 이 회사의 이름은 Memphis Meat에서 Upside Foods로 바뀐다). 2015년 1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식회를 연 그의 사업은 Wall Street Journal, Fortune, Newsweek 등 주요 언론사의 이목을 끌었다. 이를 바탕으로 Bill Gates, Richard Branson, John Mackey (Whole Foods 창업자), 영국 금융의 대부 Jeremy Coller, 세계 최대 보험사 Asurion의 공동 창업자이자 부회장인 Chuck Laue  등 거물급 인사와 Softbank Group Corp, Temasek, Abu Dhabi Growth Fund 등 글로벌 거대자본, Cargill, Tyson Foods 등 식품 대기업의 투자를 받았다.




마크 포스트(Mark Post), 모사미트 Co-founder & Chief Scientific Officer

출처: culturefbeef.org

마크 포스트 교수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대학교에서 시험관 내 조직 배양을 연구하던 내과 의사로서, 동물 근육을 배양하여 세계의 식량 위기를 해결하고 싶었다. 2009년 포스트는 시험관 환경에서 쥐의 근육을 키우는 것에 성공했는데, 완성된 쥐 근육은 길이 22mm, 너비 8mm, 두께 0.5mm였다. 

이 실험 결과에 흥미를 느낀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브린 재단' 대표를 통해 포스트와 접촉한 뒤 투자를 결정했다. 브린은 75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내놓으면서 배양 버거 두 개를 만들라 요청했다. 버거 패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작점이 되는 세포들(티스푼 분량의 근육 조직)로부터 약 2만 개의 근섬유를 키워내야 했다. 3개월이면 가능한 일이었고, 이는 소가 도축 체중에 이르는 2년보다 훨씬 짧다. 또한 사람들이 원치 않는 다른 부위 없이 고기만 키우기 때문에 생산성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다. 포스트의 배양 기법에 따르면 소 한 마리에서 얻은 샘플 하나당 고기 20톤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소 40만 마리 혹은 쿼터파운드 버거 1억 7500만 개와 비슷한 양이다. 

2013년 포스트는 배양육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세계 최초 시식회를 열었다. 영국 런던에서 식품업계 권위자들을 초대했고, BBC를 통해 방송되었다. 패널들은 "육즙은 조금 약하지만 질감은 완벽"하다며 식감이 기존 햄버거 패티와 꽤 비슷하다 평가했다.




조쉬 테트릭(Josh Tetrick), 굿미트 Founder & CEO 

출처: GOOD Meat

동물애호가인 조쉬 테트릭은 원래 법조인이었다. 변호사 일을 하던 2009년 공장식 사육의 잔인함을 비판하는 표현이 들어간 논평을 냈다가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그 표현을 좋아하지 않은 대형 육류 업체가 고객사였기 때문이다. 소신 발언으로 법조인 경력에 문제가 생긴 덕분에(?) 테트릭은 2011년 식물성 달걀을 개발하는 햄턴크릭(현 Eat JUST) 공동 창업할 수 있었다. 회사는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설립 6년 만에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테트릭은 2016년 배양 닭고기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 선언하고 자회사 GOOD Meat를 설립했다. 그의 배양육 사업은 '제이크 프로젝트'라는 작은 프로젝트에서 시작했는데, '제이크'라는 이름은 지금은 하늘나라로 간 페트릭의 반려견 이름이다. 당시 Eat Just는 이미 수백 가지 식물성 단백질의 기능과 분자구조의 특성을 담은 전용 데이터베이스와 고속 분석 기법을 보유하고 있었다. 즉 세포 성장에 필요한 단백질을 찾게 해 줄 물리적 정보와 디지털 정보를 총동원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존 인프라와 역량 덕분에 GOOD Meat는 빠르게 배양육 개발에 성공해 2020년 12월 세계 최초로 싱가포르에서 배양육 식품 허가를 받고 판매를 시작할 수 있었다. 




동물 대신 고기를 키워 인류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한다


동물감염병에 기인한 팬데믹 리스크가 2018년 발간된 이 책에 이미 쓰여 있다. 아시아에서는 특히 조류독감이 자주 발생해 매년 수백만 마리의 조류가 죽는다. 1918년에는 인류의 1/3이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고, 5천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밀집 사육된 동물들 사이에서 퍼지는 감염병은 인류에게 상시 존재하는 위험 요소인데, 배양육 산업에서는 밀집 사육의 필요성이 완전히 사라진다.


또한 도축장에서는 분변 오염이 일어날 위험이 매우 높다. 동물에 묻은 분변이나 장내에 있던 분변이 도살과 해체 과정에서 고기를 오염시킬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고기는 가장 위험한 식중독 병원체인 장내 대장균과 살모넬라균에 오염된다. 2014년 <Consumer Reports>는 미국 식료품점에서 구입한 닭가슴살 300개를 조사했다. 그중 97%에서 살모넬라균, 캠필로박터균, 대균 등 위험한 세균들이 검출되었고, 샘플 중 절반 이상에서 분변 오염물이 발견되었다. 


반면 배양된 고기는 완전한 무균 환경에서 생산되므로 분변 오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장호르몬, 농약, 대장균과 살모넬라균 같은 장 내 병원성 미생물 등에 오염되지 않은 더 깨끗한 고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업사이드푸드는 실온에 도축육과 배양육을 방치한 후 세균 수를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도축육에서는 세균이 상당히 성장했지만, 배양육에는 세균이 없다시피 했다. 기존 고기보다 부패가 느리고 유통기한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항생제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인간은 항생제 내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많은 의학 및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축산업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미국 전체 항생제의 80% 가량이 농장 동물들에게 투여되는데, 체중 증가와 밀집 사육 시에 일어날 수 있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배양육은 항생제 없이 만들어질 수 있다.


환경과 자원 측면에서도 축산업의 대안이 절실하다. UN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지구의 얼지 않은 땅 중 1/4 이상이 가축 방목에 사용되고, 경작지 중 1/3 이상이 농장동물을 먹이는 용도로 활용된다. 닭 한 마리를 키우는 데 쓰이는 물은 약 3780L로, 한 사람이 6개월 동안 샤워에 쓰는 양과 맞먹는다. 달걀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물은 욕조 하나를 채울 수 있고, 우유는 그 18배에 달한다. 


혹자는 말한다. 고기가 먹고 싶지 않으면 콩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화석연료를 대체할 재생에너지가 태양광, 풍력, 지열발전 등 여럿 존재하듯이, 공장식 축산도 콩고기 외에 다양한 대체재가 존재해야 한다. 배양육은 그중 가장 강력한 솔루션 후보다. 그렇기 때문에 빌 게이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샘 알트만, 리처드 브랜슨 등 거물들이 배양육에 투자를 한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생명공학이라는 기적은 낙원과 지옥, 어느 쪽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양육 시장, 미국에서 열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