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연 Feb 27. 2020

평화롭고 심심한 천국, 캐나다 토론토

토론토 대학 학생 한 달 체험기


#토론토 한 달 살기, 그 여정의 시작
비행기로 향하는 길에 발견한 SM 아이돌


2020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1월. 걱정과 후회 그리고 들뜬 마음을 안고 캐나다 토론토행 비행기에 올랐다. ‘네가 어학연수를 뭣 하러 가?’, ‘가서 한 달 잘 쉬다 오겠네’라는 말을 출국 전 날까지 들었던 터라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마음이 무거웠다. 3월이면 벌써 4학년. 주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학연수를 갈 시간에 자격증을 따거나 인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한 선택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불편한 마음을 안고 잠에 들었다.


캐나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더 무거워진 건 정말 하고 싶었던 인턴 공고를 보았을 때. 당장 어학연수를 취소하고 싶을 정도로 아쉬웠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캐나다에서 더 값진 경험을 하리라 다짐하며 겨울 답지 않은, 서울의 미적지근한 새벽 공기를 맞으며 공항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한 달 간의 토론토 대학, University of Toronto 학생으로서의 일상이 시작됐다.




#열정에 몸을 맡긴 사람들
박물관에 가도 다 같이 가는 열정 넘치는 우리 반


Business Communication 수업의 첫째 날. 큰 기대 없이 들어간 반에서 나는 한 마디라도 '더' 하려고 노력하는 열정적인 학생들의 모습에 충격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쩜 하나같이 다 말하고 싶어서 안달 난 멋진 사람들만 모아놨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토론토 대학에서의 첫 수업 그리고 한 달 동안 나의 교실이 될 공간에서 새삼 신이 났다. 드디어 오랜만에, 그것도 영어로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첫 수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기소개 시간. 첫 타자가 얼만큼 재미있고 재치 있게 말하느냐에 따라 반 분위기가 달라지는 순간이 아닐까. 하지만 그만큼 조용히 지나가는 게 상책이다 싶어 보통의 자기소개는 정말 보통의 자기소개로 끝나고야 만다. 하지만 웬걸, 모두가 말하고 싶어 안달 난 멋진 사람들로 모인 반은 달랐다. 한국, 일본, 중국, 프랑스 그리고 브라질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이 영어라는 언어적 장벽을 넘어 하나같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보기 정말 드문 광경이지 않을까.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는, 열정적인 그들의 태도에 신이 난 나머지 주절주절 내 이야기를 늘어놓고야 말았다.


16명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시작된 선생님의 이야기. 결국엔 장난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헤어졌지만 젊고 멋진 선생님인 Mauran.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순간부터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 아직도 아침에 눈을 뜨고 일을 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하지. 내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슬플 날은 이 일을 관두겠다고 말하는 그 순간일 거야."


확신에 찬 그의 말을 들은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내게 좋아하는 일과 돈을 많이 버는 일 사이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언제나 후자를 선택했다. 돈에 연연하는 삶을 살진 않지만 적어도 개인의 행복은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기에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했고, 그에 따라 내 열정을 과감히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신에 찬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열정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회사 가기 싫다는 말로 시작되는 하루가 아닌, 일하러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맞이하는 하루는 얼마나 멋질까?


순간, 그 멋진 아침을 매일 맞이하는 나를 상상했고, 그 멋진 삶을 기대해보기로 했다.




#무의미의 축제

토론토 대학에서의 첫 1주일은 마치 1달과 같았다. 그만큼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흐르고 있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하루에 주어진 24시간이 너무도 길게만 느껴졌다.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1시에 끝나는 수업이 하루의 전부인 느낌적인 느낌.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유명 관광지에 가곤 했지만 그래도 오후 6시만 되면 숙소에 돌아오게 되기 일쑤였다. 해가 일찍 진다는 핑계도 있겠지만 왜 괜히 토론토가 '지루한 천국'으로 유명해진지 알게 된 일주일이었다. 정말 너무 할 게 없었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하지 못했던, 죄책감에 차마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멍 때리기, 정말 아무것도 안 하기 등과 같은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한 일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자기 전에는 '내일 뭐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잠들곤 했다. 항상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게 하루를 시작하는 나로서는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너무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생각하는 게 고작 내일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는 거라니. 나 스스로가 너무도 낯설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토론토에서의 1주일이 지나자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사소한 일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점심을 먹자마자 내일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침에 슈퍼는 어디로 갈지 미리 계획하기 시작했다.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을 미리 계획까지 하기 시작하자, 나는 그제야 밀란 쿤데라가 말하고자 하는 무의미의 축제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갈 것만 같았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이어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서도, 참혹한 전투 속에서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밀란 쿤데라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이라 여겼던 모든 일들이 사실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난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게 되었다. 모두가 바쁘게 사는 이곳에서 가만히 멍을 때린다거나 내일 아침에는 어떤 슈퍼를 가서 어떤 물을 살 것이란 생각을 한다거나.. 그런 하찮은 고민 따위 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은 정말 별 게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나는 나를 잠시 내려놓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걸 토론토에서 하게 된 것이고. 그리고 그 시간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지금의 나는 안다. 무의미의 축제로 가득 찼던 토론토에서의 생활이 모두가 정신없이 바쁜 지금, 너무나도 그립다.




토론토 대학 학생이라는 느낌이 물씬 나는 곳


솜사탕 같은 하늘과 친구들




#Just make it happen


"Just make it happen!"


짧지만 길었던 토론토에서의 마지막 날, 정들었던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며 들었던 말이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할 때가 많은데 나를 한 달 밖에 보지 않은 그들이 나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너 자신을 믿고 시도해보라는 Mauran의 말. 눈 감고 딱 한 번이라도 나를 믿는 자신(Mauran)을 믿고 나를 믿어보라는.. 장황한 말을 늘어놓았다. Just make it happen.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엄청난 신뢰를 주는 말은 아닌.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저 그 한마디에 의지하고 싶어짐과 동시에 꽤나 큰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의 나는 한 달 전 비행기를 타고 있던 나와는 사뭇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무의미 속에서의 평화와 휴식을 얻은 나는 여러모로 자신감에 차 있었다. 아마도 열정에 몸을 맡긴 멋진 사람들과의 한 달이 나를 덩달아 멋지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다. 이 모든 경험은 내가 진정 좋아하고 잘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언제쯤 생각해보았어야 할 일을 지금에서야 끝낸 기분?


당장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기분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지만 다가오는 졸업의 무게를 견디기까지 또 다른 걱정과 고민거리가 생기리라 장담한다. 그럴 때면 지루한 천국, 토론토에서의 겪었던 모든 일들을 생각해보려 한다. 후회와 아쉬움을 안고 향했던 토론토에서 그보다 값진 경험과 인연을 얻고 돌아왔다. 언젠가 '내일은 뭐하지?'라는 질문을 다시금 던질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 바라며 지금은 바쁘디 바쁜 서울에서 예전과 같은 계획적인 일상으로 돌아가 보려 한다.





토론토에서 나를 즐겁게 해준 것들
일주일에 3번은 갔던 비건 레스토랑 Fresh. 캐나다 전통 음식이라는 푸틴도 여기서 처음 먹어봤다. 여기는 Protein Bowl이 진짜다.


    

한국에선 흔힌 찾아볼 수 없는 프로즌 요거트 맛집 Pinkberry. (좌)프라페 (우)요거트 아이스크림


Winterlicious week를 이용해서 간 Cactus Club Cafe. Tuna Poke Bowl이 정말 맛있었다.


또 간 Fresh. 이번에는 브로콜리 타코를 먹어봤다.


너무 맛있어서 10박스는 넘게 사서 온 메이플 쿠키. 기념품 샵 말고 METRO 슈퍼에서 사는 게 이득.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도 이겨버린 2월의 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