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눈이 오는 시대
WHO에서 pandemic을 공식 선언하기도 전, 그러니까 거의 중국과 한국에서만 코로나 증상으로 고생하던 시기. 우리나라에서는 한창 마스크를 쓰고 자체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확진자 수를 낮추기에 급급했던 때였을 것이다. 아이들이 뛰어놀며 소리 지르는 소리와 산책 나온 강아지들이 서로 반갑다며 인사하는 소리로 가득 찼을 2월이 유난히 적막했다. 밖에서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집에서 나가지 못하자 엘리베이터 안에는 층간 소음을 조심해 달라는 공고가 붙었고, 미세먼지가 좋은 날도 사람들은 마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아예 나오지를 않았으려나?
올 겨울은 유난히 미지근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롱 패딩 없이는 견딜 수 없었던 겨울이 무색해질 만큼 이번 겨울은 그다지 춥지도 않았다. 롱 패딩이 한창 필요했던 재작년 겨울에 산 엄마의 비싼 패딩 두 벌은 개시 하지도 못한 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나 입는 옷으로 전락할 정도였다. 눈이 왔어도 진눈깨비로 가끔 흩날리기만 했던 올 겨울이 지나고 2월 어느 날,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보는 일명 쌓이는 눈! 금방 녹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눈은 점점 쌓여만 갔고, 어느새 겨울 왕국이 되어 있었다. 정말 추웠던, 눈이 무릎까지 왔었던, 정말 예전의 겨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눈이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싶은 눈. 겨울을 좋아하는 나는 눈이 어느 정도 쌓이자 마스크를 챙겨 집 앞 슈퍼를 간다는 명목으로 집을 나섰다.
사람들 다 똑같다고, 눈이 왔다고 코로나로 나오지 않던 사람들이 우르르 나온 듯 싶었다. 아이들은 눈이 왔다고 스키복을 입고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고, 엄마 아빠들은 그런 아이들과 함께 눈덩이를 굴려주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눈이 왔다고 다들 나와서 놀고 있는 모습이라니.. 아마 코로나로 집에만 있어야 했던 답답함을 오랜만에 내린 눈이 쓸어내려준 게 아닐까 싶었다. 슈퍼로 향하는 길에서 본 다양한 눈사람들이 왠지 모르게 나를 울적하게 만들었다. 정말 언젠가는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이 익숙한 아이들이 많아질 테고 나는 그 속에서 '나 때는 그랬지~'하는 꼰대가 되어있을 것만 같은 느낌. 어쨌든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코로나도 이겨버린 2월의 눈. 집에서 나오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올 만큼 겨울의 눈은 이제 특별해졌다. 나중에는 정말 눈이 내리는 겨울을 나의 추억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