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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 책리뷰 3]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140년 전 소설이 지금을 관통합니다.

by 모티 정문선 Jan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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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y by 이숙 작가Photy by 이숙 작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 창비, 이강은 옮김>


시대를 뛰어넘는


이반 일리치는 판사로서 시류에 민감하고 체면을 중시,  출세에 집착하지만 정도를 지키며 품위를 의식하는 인물이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상류층의 전형으로서 사회에 부응하는 엘리트로 묘사된다. 공적 업무에서 자존감을, 사교계에서는 허영심을, 스트레스는 카드놀이와 포도주로, 과시욕은 상류층과의 교류와 집을 꾸미는 일로 채워다.


  작가는 자신이 잘 살았다고 자부하던 주인공을 죽음에 대해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를 강조한다. 은 둔감한  문턱에서 로 죽음과 맞서며 인간의 존재와 존재 양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죽음 바라보는 지인들의 덤덤한 태도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직장 동료는 자리 이동과 승 기회로, 친한 친구는 장례식에 가야 되는 귀찮은 일로, 주인공 아내는 유족 보상에 관심 등 애도보다는 잿밥에 눈먼 세태를 꼬집는다. 한결같이 주인공의 인간미를 기억하거나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은 없다.  


  마흔다섯, 잘 나가는 판사(주인공) 20년 이상을 명예와 권력의 정점에서 동료에게 승진에서 밀려 한 때 어려운 시기도 겪지만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원하는 연봉, 새로운 대저택, 상류층과의 교류로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누린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원인 모를 질병은 그를 위협하며 죽음으로 인도한다. 갑작스러운 질병을 받아들이지  채 고통받아야 하는지를 거듭 물으며 신과 운명을 저주한다. 육체의 극한 고통은 점점  정신까지 폐해져 모습은 점점 추하게 된다.  죽음의 목전에서야 주인공은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비로소 인정하지만 참회는 짧고 되돌리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소설의 이해와 단상


  소설은 크게 3가지 시선으로 집약된다. 주인공의 눈, 타인에 비친 주인공의 삶, 질병의 고통에 부림치며 성찰하는 자아이다.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와 행동은 마치 연극의 대본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읽는 동안 "죽음 앞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맴돌았다. 고통 앞에서'아프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사는 이유일 것이다. 리현상도 해결할 수 없는 상태, 마약으로 통증을 누그러뜨리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실은 돌봄자의 부담지 가중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점점 메말라가는 주인공안타까우면서도 최소한의 존엄마저 무너뜨리는 죽음의 실체가 두렵기도 했다.


   사투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메타인지'가 떠올랐다. 생각하는 것과 상대가 느끼는 것, 주인공은 교적 괜찮은 삶이라고 자부하지만 주 평가는 관대하지 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다양한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기적이며 생각들을 깨우기도 했다. 


  작가는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 어쩌면 죽음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되는 허무함과 후회를 먼저 고민해 보라는 것이 아닐까. 아등바등 살며 경쟁과 성과의 하수인으로 나다움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지는 않았는가. 내게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격하지 않은가. 상대의 불행을 위안삼지는  않았나. 겉과 속이 다른 연기에 익숙하지 않은가. 꼬리를 무 참회는 결국 내 중심으로 해석하고 향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인공지능과 기술이 인간이 설 자리를 위협하고 오히려 인간이 소모품처럼 전락해 가는 지금 시대에 는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죽음 앞에서 무너지는 연약함을 이해하면서도 과연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마주하기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나도 좋고 상대도 좋은 이야기가 되도록 살아야겠다.


톨스토이가 나지막이 속삭인다.


세속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을, 쾌락을 좇는 삶보다는 진실과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래, 내가 모두를 괴롭히고 있구나."는 깨달음이 죽음 앞에서만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고.


Photo by 이숙 작가Photo by 이숙 작가

#이반일리치#톨수토가#책리뷰#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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