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이합 마을의 전설

고래가 살고 소년의 꿈이 키워졌던 곳

by 이상훈


바닷물이 끊어지기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우리 시골마을을 고래원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내경이니 후경이니 하고 부르는 동네 지명의 경(鯨)이 고래 경에서 나온 글자다.


그 옛날 얼마나 많은 고래가 쉬었다 갔으면 고래원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일설에 의하면 바닷물이 큰 수위로 불어나는 만조 때가 되면 먹이를 따라 고래들이 많이 들어오곤 했는데 썰물 때 따라나가지 못하고 갯고랑에 갇히거니 뻘에 얹혀 죽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고래가 갯고랑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따라 들판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이 지역은 고래와 관련된 일화가 많이 있다. 이 제방의 안쪽 마을을 안 내(內) 자를 써서 내경이라 불렀고, 후경이란 이름은 제방의 뒤쪽 마을이라 하여 뒤 후(後) 자를 써서 후경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단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어른들이 갯벌 수변지역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던 새끼 고래를 구하기 위해 애쓰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마을에 가면 고래원장길이란 이름의 도로명이 있다. 마을 주변을 길게 감싸고 있는 예전에 바다였던 천은 삽교천이라고 부른다. 삽교천 방조제가 생겨나기 전까지 만 해도 그곳은 통통배가 넘나들던 그리고 포구마다 어선들이 매여 있던 바다였다. 간혹 장마철 비가 많이 내릴 때면 제방 둑이 무너져 바닷물이 농경지를 휩쓰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어느 해인가 삽교천 방조제가 완성되고 그 날 그 행사에 다녀간 대통령이 죽음을 맞았고 바다도 죽어 버렸다.

죽기 전의 바다는 고래가 자유롭게 오갔으며 바다는 마을 사람들의 밥상을 이합조개 등 풍성한 해물로 가득채워줬다. 제방 둑에서 수평선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노라면 물에 잠기지 않은 갯벌 땅을 가득 메운 붉은색의 바다 풀과 노을이 큰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바다는 들판을 길게 감싸고 돌며 물길이 지나는 마을마다에 포구를 하나씩 만들어 냈다. 현재의 서해대교 밑으로 해서 보면 맷돌포, 공포리, 대포리, 소포리 등 많은 포구 이름의 마을이 있다. 이들 마을은 과거엔 농사와 간단한 어업활동을 병행했다. 후경리 건너편은 아산시 선장면이다. 선장이란 이름 역시 선장포라는 포구 이름에서 빌려왔다.

어릴 적 포구에는 통통배가 자주 들락 거렸다. 주로 인천이나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물자를 실어 나르는 듯 기억된다. 많은 이들이 버스 편 보다는 배편을 이용하여 도회지로 나갔다. 누이와 형님들은 이 배를 타고 인천 등지로 유학이나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간혹은 인근의 서태안 지역에서 배로 올라온 소금이 팔려나갔고 이곳에서 잡힌 어패류가 배에 실려 당진 등지로 나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통통이라는 이름이 주는 뉘앙스가 의태어 같기도 하고 의성어가 같기도 하다. 연통에서 뿜어져 나는 연기 모양이거나 디젤엔진이 내는 '통통'이라는 음에서 따온 듯 하기도 하지만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나는 모습도 통통과 잘 어울린다.
별난 재밌거리가 없는 시골마을에선 밀물 때에 통통배가 들어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구경거리여서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가 본 적이 있다.


썰물에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의 수많은 구멍들 속엔 짱둥어와 조개 그리고 민챙이라고 불리는 집(껍질)이 없는 전복 비슷한 것들이 살았다. 그중 이합 조개는 굳이 개흙을 긁어서 잡지 않아도 될 만큼 갯벌 바닥에 하얗게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누구나 잡을 의지만 있다면 잡는 양의 한계 없이 무한정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정말 먹을 만큼만 잡았었던 것 같다. 어디에 가져다 팔 것도 아니었고 오래 보관할 장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나 흔한 조개여서 그랬는지 동네 사람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해 욕심을 내지도 않았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풍부하다는 것이 그런 느낌이다.

이합이라고 부르니 백합과 조개가 연상될 것도 같지만 크기는 보통의 바지락보다 조금 작고 껍질도 두껍지 않다. 벼가 한 창 자라는 7-8월이 이합 조개를 먹기엔 최적의 계절이다. 이 시기에 이합 조개를 끓이면 우윳빛 색깔에 약간의 푸른빛이 도는 명품 육수가 탄생한다. 아미노산도 풍부해서 더위에 입맛을 잃은 동네 사람들에게 최고의 입맛을 선사했다.

동네 농수로 주변 둑은 이 계절이 되면 온통 이합 조개껍질로 가득했다. 이합 조개를 동네 사람들은 주로 칼국수나 수제비 혹은 국수의 베이스 국물을 만드는 데 사용했고 먹고 버린 껍질은 농로나 둑을 따라 길게 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