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우리 아이가 소풍을 갔다. 요즘에는 소풍이라는 단어도 잘 사용하지 않고, 예전처럼 학교 전체가 움직이지도 않는다.
아이의 김밥을 싸면서 내 어릴 적 소풍을 떠올려봤다.
시골학교에서의 소풍날은 특별하지 않다. 요즘 같이 김밥을 싸주는 것도 아니고 보통의 도시락 통에 밥을 담고 계란 반찬이 추가로 담긴 것 이상은 없었던 것 같다. 김밥이든 그냥 밥이든 어른이 되어서 보면 별것도 아닌 것들이었는데, 당시엔 다들 싸오는 김밥이라 나만 맨쌀밥인 경우가 많아 속상했었다.
소풍은 1년에 두 차례 정도 간 것 같다. 시기적으로는 대부분 농번기이다. 모를 심거나 벼를 베는 철이었다.
부모님들이 새벽밥을 드시고 들일을 나가셨기에 더더욱 요즘 같은 풍성한 도시락은 기대하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별 것은 아니었음에도 소풍날 비가 올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을 설친 적도 많았다. 아무래도 학교를 떠날 수 있고 지긋지긋한 공부도 안 할 수 있고 색다른 경험도 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했던 것은 적으나마 용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장난감도 사고 칠성 사이다도 사 먹고, 가끔 부모님에게 드리려고 과자나 과일 통조림을 산 기억도 떠오른다.
당시 소풍이라는 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중 하나는 삶은 계란이다. 요즘에야 마트에 가면 쉽게 구하는 것이 계란이지만 시골에선 닭을 키워야 얻을 수 있다. 아버지가 잡수시고 남은 것들 말이다.
소풍가방은 종류가 많지 않았는지 색상만 다르고 천편일률적인 끈 달린 소형 가방이 많이 쓰였다. 물통은 도시락통과 공동운명체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물통은 도시락 가방과 같이 어깨에 메도록 긴 줄이 달려 있다. 물통 속의 물은 숭늉을 담는다. 오후가 되면 쉬어버리기도 하고 무겁기 때문에 소풍장소로 출발하고 얼마 후면 이미 절반 이상 비워진다.
소풍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많은 장사꾼들이 학교 주변에 북적이고 일부는 소풍 행렬 끼어 소풍장소까지 따라온다. 그 시절엔 설탕과 색소만 가득했던 아이스 바가 최고 인기 품목이었다. 다른 아이들이야 어땠는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어쩌다 소풍 가서 찍은 사진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남자아이들은 하나 같이 부동자세이고 앉아 있는 여자아이들은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사진 속의 아이는 벌써 세상을 등지기도 하고, 외국에 나가 있기도 하다.
지금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을 줄 그때는 알았을까!
시골학교의 소풍 행선지는 어디일까요?
직선거리로 5킬로미터 안쪽에 있는 우강면 창리 민둥산, 합덕리 합덕성당, 우강면 솔뫼성지이다. 이들 소풍장소는 쉴만한 솔나무 그늘이 있고 잔디밭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풍은 학교 수업이 시작되는 9시 정도에 출발한다. 대략 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6백여 명이 되는 전체 학생이 열을 지어 행군을 하는데 행열 사이 중간중간 학년별 담임선생님과 학부형들이 끼어 간다.
소풍 가는 길가엔 둑을 다듬기 위해 가끔 진흙이 퍼올려져 있기도 하고, 또 가끔은 개구리 소리를 듣기도 한다. 들일 나가신 부모님과 이른 아침식사를 했던 관계로 배는 금방 고파오고 어깨에 내려앉은 짐의 무게도 줄 일 겸 물 먹는 것부터 시작해 삶은 계란, 과자류를 먹어 없앤다.
가는 길 내내 나무 그늘 하나 없기에 함께 걷는 선생님들도 죽을 맛인 듯했다. 또 가끔은 동네 유지쯤 되는 집의 손주 소풍을 위해 아이 엄마인 며느리가 선생님의 도시락을 싸들고 동행을 하기도 했다.
5월 어느 날의 봄 소풍길 풍경에는 이따금씩 불어오는 미풍 으로 약간은 찰 것 같은 파란 하늘 아래 솜사탕 같은 흰구름 덩어리 몇 개가 뭉쳐 다녔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뽀얗게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신작로를 걷노라면 새로 산 신발 위가 탑새기로 뽀얗다.
오후가 되면 할게 없었다.
점심을 친구들과 둘러앉아 먹고 나면 장기 자랑시간이 돌아온다. 어디서 들었는지 남진, 이은하, 홍세민, 전영, 금과 은, 김정호 등 당대 유명짜한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고 화려한 춤을 선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보물찾기 행사도 열리곤 했는데 선물은 학년 구분 없이 대부분 동아연필 한 다스와 공책이다. 한 번도 받아본 적은 없는 보물 찾기다.
창리라는 지역의 민둥산이라는 이름의 소풍 지역은 전쟁 등으로 민둥산이 되었었는지는 몰라도 이름과 다르게 70년대 소풍 가던 시절엔 소나무 숲과 꽤나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그곳에 가면 새들의 알과 도마뱀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도마뱀이란 놈은 잡히면 꼭 꼬리를 절단시키고 줄행랑을 친다. 그렇게 안 해도 놓아줄 일이었는데 말이다.
소풍길에 흔히 접하는 민들레
우리 아이도 친구가 별로 없는데 나도 당시에 그렇게 친구가 많지 않았다. 누구랑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보통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승률이 안 좋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도 그다지 ‘잡기’에 능하지는 않다. 대신 그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솝이야기나 안데르센 동화집 등을 주로 읽었다.
소풍날 옷차림을 보면 여자아이들은 흰색 폴라티에 어깨끈 달린 멜빵 치마와 흰색 스타킹 그리고 패션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구두를 신었다. 걸어서 소풍 갈 때는 운동화가 제일 좋은데 운동화가 마땅치 않다. 70년대 초반엔 고무신이 대세였고 후반부에나 가야 동네에서 운동화를 파는 가게가 하나 생겼다.
당시의 5월이 요즘 같이 덥지 않은 탓에 남자아이들은 긴 바지와 셔츠 혹은 티를 입었다. 간혹 반바지에 스타킹을 신고 구두를 신는 아이도 있었지만 남자아이들 대게는 허리에 고무밴드를 넣은 긴 바지와 티셔츠가 패션의 전부였다. 3개나 4개의 흰 줄무늬가 들어간 트레이닝복도 당시엔 간편성 때문에 자주 입었던 듯하다.
소풍에서 돌아오는 길 이젠 먹을 것도 먹을 물도 없다. 햇볕은 소풍이 끝나가는 3시가 되면 더욱 강렬해진다. 밤사이 식었던 대지가 오전 내내 달구어지기 시작해 절정을 이루어 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땀범벅이 되고 선생님들은 어디로 가셨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다. 이왕 소풍 나온 걸음인데 다들 읍내 나가셔서 맥주 한잔들 하고 계셨는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