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삶은 자기가 살아낸 것 이상의 보답은 없다.

by 이상훈

도로가 포장되기 전 아득한 옛날


우리 시골엔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산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바람소리와 함께 전해지고 있다.


도로포장이 안되어 있어도 우리 집 건너편에 사는 나와 같은 성을 가진 이 씨 아저씨는 하루 종일 출타하여 해 질 녘 어스름 한 때나 되어야 들어오는 한량이다.


매일 무슨 일이 바쁜지 조반만 들고 나면 그 시대에 우리 마을에 한대밖에 없던 유명 짜한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 또래의 그 집 아이도 그런 일이 당연한 듯 아버지가 가끔 쥐어 주는 용돈으로 '아버지'가 있기는 있나 보다 하며 지내는 듯했다.



그 아이에겐 아버지가 다른 집 마냥 모내기 한 논의 ‘물고’를 아침저녁으로 보러 다니며 항상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아버지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는지 모른다.


아이들끼리 싸움이라도 할양이면 아이는 아버지의 존재를 굳이 용돈의 양이나 아버지를 입증할 만한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야 했다.

아이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 아버지는 비 오는 오늘도 레이싱 부츠 같이 생긴 긴 장화를 신고 오토바이를 옆구리에 메듯이 시골을 벗어난다.


포장되기 전 들판 길에 비가 내리면 사람의 왕래가 뚝 끊길 정도가 된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밤 사이 돌아오셨을까?


아이의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하루 종일 어디에서 무엇을 하셨을까?


“우리 동네는 말이야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니 께”


땅이 마른 어느 날 아침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 아이 엄마가 해주는 아침밥에 황태해장국을 들이키며 어젯밤 술로 뒤집힌 위를 가라앉히고 담배 한 대를 길게 빨아 낸다.


몇 번 열리지도 않은 아이의 학교 운동회 날에나 얼굴을 들이 밀고 아버지가 있음을 알리는 옆집 아저씨. 학교 방문에 대단한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최종의 목표는 술 한 잔이었을 것 같다.



장화와 오토바이만 있으면 마누라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그 아이 아버지가 어느 날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단다.


다 자란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를 자기 집에 모시겠다고 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그들에게 아버지는 낯선 존재인 것 같다.



삶은 자기가 살아낸 것 이상의 보답은 없다. 공기와 같이 흔하다고 쉬이 말할 필요도 없다.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며, 막 대해도 괜찮은 사람은 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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