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털같이 부드러운 하얀 구름이 간혹은 큰 붓으로 옅게 터치한 것 같은 반투명의 구름이 파란 하늘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물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 한 기세의 아침이면 학교 운동장은 시끄러운 앰프 파열음과 귀에 익숙한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나 주페의 경기병 서곡, 헨델의 보아라 용사 등 다수의 행진곡으로 넘쳐난다.
운동장 남단 가운데엔 개선문이 세워져 있고 지붕이 뾰족하게 세워진 교사동 중앙 출입구를 중심으로 만국기가 운동장의 동남쪽부터 2~3미터 간격으로 남서쪽까지 빼꼭히 메워져 있다.
개선문과 마주 보는 사열대 옆으로 예닐곱 개의 천막들이 쳐져 있고 귀빈들은 가능하면 셔츠와 정장 팬츠 등으로 무장하고 운동회라 그런지 운동화를 착용한 분들도 꽤 많이 앉아 있다. 요즘 같으면 스니커즈화를 신었을까! 어쨌든 운동회날 아침 학교 풍경은 늘 이랬던 것 같다.
그러면 주황색 반팔 상의와 검은색 반바지 하의로 된 학교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머리에는 학교명이 새겨진 비닐 재질의 모표가 박힌 그린색 모자를 쓰고 행진곡이 주는 왠지 모를 자신감으로 평소보다 힘차게 교문을 향하곤 했다. 이때 내가 요한 슈트라우스나 주페를 물론 물론 알지 못하였다. 학년별로 반별로 4열 횡대로 개선문을 통과하여 본부석을 중심으로 좌우 끝부터 순서대로 이동해 도열하면 이제 본격적인 운동회 개회식의 시작이다.
교장 선생님의 개회식 훈화나 혹은 훈시가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말씀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들판으로 뻗어 나가는 느낌은 특이했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가끔 듣게 되는 그 소리 말이다. 나는~ 나는~
교장선생님의 개회사가 끝나면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달리기나 공 굴리기 등의 학년별 대항전을 벌어진다. 아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갖는 부문은 백군 청군 별 달리기이다. 참여만 해도 공책이 선물로 온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고 꼴찌를 면해야 하는 안타까움을 참아내야 한다. 특히 대중 앞에 서기를 극히 꺼려하는 나로서는 달리기도 못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본부석 앞의 70~80미터 구간이 죽을 만큼 싫었다. 사실 안 뛰어도 되는데 안 뛰고 싶다는 말을 할 용기도 없었다.
온 학년이 참여하는 이어달리기의 열기는 내 마음과 달리 참 뜨거웠다. 달리기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기도 하고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이 배정되어 있듯이 말이다. 학교에서도 내노라하는 준족들이 모두 참가하는 관계로 백군과 청군의 깃발이 가장 많이 그리고 빠르게 휘둘러지지 않았을까 싶다.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점심시간을 알리는 박 터뜨리기가 재미있었을 성싶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오재미를 던져 박을 터뜨려 이기 팀에게 점수를 주지만 그것보다 단체에서 벗어나 가족을 만날 수 있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하니 말이다. 가을 운동회는 지역의 잔치이기도 해 학부모님들은 너나없이 음식을 준비하고 양손 가득한 손으로 학교를 방문해 함께 응원하곤 했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더 즐거워하고 음주가무를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운동장 곳곳에는 주변 상인들도 각종 장난감이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먹거리를 가지고와 팔기도 한다. 한편에선 술판도 벌어지고 술에 취한 어른들의 달리기는 개그가 따로 없다.
줄다리기나 이어달리기 등의 학년별 학급별 대항전과 상급학년 전체가 참여하는 곤봉 공연, 가마 태워 모자 뺏기 게임, 메스게임, 부채춤 등 다양한 단체 공연은 가을 운동회의 백미이다.
아름다움 뒤엔 꼭 아픔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일까?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날을 매스게임이나 곤봉 연습에 매달려 왔는지 모른다. 협동심을 길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운동회날이 가까워 올 수록 연습 강도는 더욱 심해져 해 질 녘까지 쉼 없이 연습이 이어질 때도 많았다. 그러면 어느 날부터인가는 달이 떠오르는 시간 즈음 하교를 하게 되기도 했다.
나의 불순한 마음이 이때부터 시작된 된 것인가? 무엇을 위해 어린아이가 이 시간까지 이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난 참 어릴 때도 어린이가 아닌 듯하다. 몸은 미성숙인데 왜 생각은 어른들이나 가질 법한 반골기질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또 어느 날인가는 연습이 끝나고 저녁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함께 한 늦가을의 날이니 그 서늘함은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슬픔이었고 고통이었다. 얇은 반바지와 반팔 웃옷이 비에 젖은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운동화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빗물 조차 슬픔이 배가 되는 듯했다.
그 질퍽거림을 조금이라도 피해 보려고 추수가 끝난 논의 그루터기를 밟고 오지만 이미 버릴 것은 다 버린 후이다. 버리게 될 것임을 알면서 조금이라도 덜 버리려고 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포기로 인해 맞이하게 될 부모님으로부터의 혼남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더 더러워질 것에 대한 걱정인가!
곤봉 끝에 긴 줄을 붙여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했던 그 날 운동회가 비가 오는 아침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