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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라고 하지 마세요

메뉴 선택! 커플 싸움을 끝내러 왔다.

 현대인의 고질적인 질병 선택 장애. 특히 사회생활 점심 메뉴를 고를 때면 더욱 심해진다. 심각한 것은 이 질병의 폐해로 커플 사이에서도 메뉴 정하기 때문에 티격태격하다 결국 마음이 상해 싸움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무시무시한 단어 '아무거나'. 이 '아무거나'라는 말 한마디로 인해 커플들은 왜 밥을 먹을 때도 싸움을 겪게 되는 것일까? 9년연애 싸움없는 커플은 이 문제에 접근해보기 위해 아무거나의 폐해를 낱낱이 파 해쳐 보기로 했다.


메뉴 고르다 결국 멘탈은 붕괴 - 커플도 붕괴 (브금 2NE1 멘붕)


뭐지 얘 메뉴판에만 있는 건가요? 

아무거나주세요


 메뉴판에는 아무리 찾아도 없는 그 메뉴를 시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가게 사장님들도 그 메뉴를 메뉴판에 넣는 경우가 있다. 바로 '아무거나'다.

왼쪽 아래 정말 아무거나가 있다.

 커플 사이에서 한쪽이 아무거나를 외치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앗싸! 내가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먹어야지.' , '고를 때 싸우지 않아도 되고 너무 좋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러한 관계가 오래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의구심이 들게 된다. '이 사람이 정말 아무거나 먹어도 좋은 건가?', '같이 밥 먹는 건데, 나만 고르고 관심이 없나?' 그리고 이러한 '아무거나'는 음식 메뉴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여행에서, 옷이나 취향에서도 나타나게 되고, 결국에는 '혹시 우리 관계에 대해서도 그냥 아무렇게나 진행되길 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최종 진화 아무거나몬 - 그리고 더 심각한 위기가 찾아오는데 그것은 바로 '아무거나'라고 말한 사람이, 실제 밥을 같이 먹을 때 깨작거리면서 '아 맛없다.', '뭐 이런 걸 먹어.' 하며 투덜거릴 경우다. 자신의 의견도 없고, 고르지도 않으면서 불만만 표한 하는 경우. 어렵게 메뉴를 고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이는 결국 말다툼과 커플 싸움으로 이어지게 된다. 제발 아무거나몬까지 진화하진 말자..



 9년 연애 싸움없는 커플은 사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 이유는 밥을 먹는 행위는 매일 몇 번씩 일상에서 항상 일어나기 때문에, 밥 먹는 행위 자체가 싸움의 원인이 된다면 그만큼 싸움에 노출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처럼 같이 지내며 항상 밥을 먹는 커플이나 부부의 경우도 이 같은 위험이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사실 이 문제는 가장 근본이 되는 마인드셋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시간은 내 시간만큼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강압적인 메뉴 선택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깊은 대화를 통해 이러한 생각의 기본을 잡아놓아야 한다.


 본격적으로 실질적인 예를 들기 위해 우리의 싸움없는 메뉴선택 알고리즘을 공개하려 한다. 우선 메뉴를 정할 때 무조건 메뉴를 하나씩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둘 중에 더 먹고 싶어 하는 메뉴로 한 단계 선택이 이뤄진다. 만약 이 단계에서 서로 먹고 싶어 하는 것이 확고해 첨예한 대립이 이뤄진다면, 처음 먹을 메뉴를 고르고 바로 다음 끼니에 두 번째 메뉴를 먹는 것으로 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다음 끼니로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점심이었다면 저녁. 저녁이었다면 야식(!?) 하루가 지나게 되면 음식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지고 이로 인한 불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정말 둘 다 어떤 것을 먹을지 고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중 첫 번째는 '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을 때.' 이럴 때는 먼저 먹고 싶은 메뉴 전부를 모은다. 여기서 한 명이 먹고 싶은 메뉴를 2-3개로 줄여 선택하고 다른 한 명이 그중에 제일 먹고 싶은 마지막 선택을 한다. 이 방법은 핑핑이(여자 친구의 애칭)가 자신의 친구들과 쓰던 방식인데 커플 사이에서도 매우 유용하게 작용했다. 


 두 번째는 '둘 다 먹고 싶은 메뉴가 없어서 아무거나라고 말하고 싶을 때.'다. 이때가 가장 싸움이 발생하기 쉬우니 매우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는 우리는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메뉴나, 특이하고 도전적인 음식을 제시한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아랍 음식, 베트남 음식, 러시아 음식, 남미 음식, 평소 안 먹던 더운 날에 뜨거운 국수, 매운걸 잘 못 먹어서 시도 못해본 불족발과 닭발 등 이럴 때 우리는 싸움보다는 음식의 스펙트럼을 늘려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음식이 너무 실험적이고 도전적일 때, 먹고 싶은 음식이 안 떠오를 때, 배는 고픈데 메뉴 선정이 어려울 때, 언제 먹어도 만족하는 집 근처 혹은 배달 맛집을 찾아두는 것이다. 집 앞 5천원 국수&국밥집, 언제 시켜먹어도 만족하는 찜닭집 우리 커플에게는 이러한 안심 맛집들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알고리즘의 결괏값은 싸움 없이 서로 만족하는 식사였다. 


아무거나라고 할 거면 너 혼자 아무거나 먹고 오세요


 밥을 같이 먹는다는 행위는 하루 중 유일하게 자유로운 아주 소중한 '시간'과 밥을 먹는 '행복감' 그리고 함께 하는 이와의 '친밀감' 같이 느끼는 것이다. 그만큼 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합의점에 도달해야 한다. 커플 사이가 정말 아무렇게나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아무거나'라는 말은 이제 놓아주도록 하자.




9년연애 싸움없는 커플의 비밀이 궁금하시다면?




*아무거나-번외 편(사회생활)

난 짜장을 고를 테니 넌 먹기나 하거라 - 석봉이어머니형


 대부분 둘 사이의 관계에서는 메뉴의 주도권은 한쪽이 들고 있다. 상사와 직원 사이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힘의 관계에서는 상위 포식자의 선택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오늘은 부대찌개 먹는다.' 주도권을 쥔 자의 선택이 이뤄지고, 따르는 자의 불만이 일어난다. '난 시원한 냉면 먹고 싶은데...' 결국 소중한 점심시간 한쪽만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문제는 한두 번이야 괜찮겠지만, 앞으로 몇 년을 같이할 사회생활에서 반복적이고 불균형적인 힘의 관계는 결국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따르던 자가 선택된 메뉴를 거부하면, '아니 예민하게 뭐 이런 걸로 싫다고 하냐'라는 식의 반응이 나온다. 어떻게든 다른 메뉴로 밀어붙일 경우에는 결국 선택권자는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화를 내 거나 싸움이 발생한다. 아니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아랫사람은 그저 뭉개져버린다. 결국 이 관계에서 따르는 자는 깨닫게 된다. '그래 나한테는 결정권이 없구나.'


 사실 이 번외 편을 적은 이유는 사회생활에서 더 빈번하게 함께하는 식사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도 없고, 함께하는 행복이 없는 점심이 계속된다면, 조용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한마디 해보자 '혼자 드세요 전 따로 먹겠습니다.' 9년연애 싸움없는 커플은 말하고 싶다. 그 누구도 당신의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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