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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Jan 29. 2021

이를 악물다

의식할 새도 없이 자꾸만 이를 악문다. 한참이 지나서야 힘을 풀지만, 그 찰나가 내게는 새드 엔딩으로 향하는 길목 같다. 다시 입술 사이로 숨이 들어차기 시작하면 어딘가 고장 난 사람처럼 눈물이 고인다. 이 심적인 긴장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일을 할 적엔 생방 직전까지 원고의 오타를 체크하면서 그랬고, 연애를 할 적엔 돌아올 그의 대답을 기다릴 때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별 것 아닌 일에도 이를 악무는 나를 발견했다. 헬스장에서 뛸 때, 물건을 고를 때, 멍하니 앉아있을 때, 운전을 할 때, 길을 건널 때, 하다못해 목욕을 하면서까지도... 나는 습관적으로 이를 악 물었다. 그렇게 항시 긴장상태인 내 몸은 매일 밤 침대 위에서 호소를 해왔다. 제발... 이제 그만 좀 편하게 해달라고 내 몸이, 내 정신에게 애타게 부탁을 했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내 몸을 끌어안고 말하고 싶었다. 정말 그러고 싶다고... 하지만 정신이 허락하질 않았다.



10년 넘게 라디오 작가로 일하는 동안, 매일 진행되는 생방송 때문에 마음 편히 휴가를 간 적이 없었다. 좋은 피디 만나 운 좋게 휴가를 얻어도, 여행지에서까지 생방 시간에 맞춰 일어나 뭐 잘못된 건 없는지, 방송은 재밌게 마무리됐는지, 그걸 신경 쓰면서 후배에게 카톡을 해댔다. 이 정도면 병이다 싶었다. 뭐 대단한 걸 쓴다고 그렇게나 신경을 써댔는지. 웃기지도 않다. 그런 매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나 보다. 과거의 나야, 잘 봐라, 나름 애썼지만 남은 건 강박으로 감싼 결핍뿐.



끊임없는 긴장은 결핍과 연결되어 있다.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은 마음. 일이나 인간관계, 하다못해 옷을 고르고 운동을 하고 몸을 구석구석 씻는 일까지 그냥 다 잘하고 싶었나 보다.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르지만  만족이 안 되는 걸 보니 잘한 건 아닌가 보다 생각하면서. 그렇게 내게 가장 힘든 일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 이 되어버렸다. 실패와 자기 비하 그리고 긴장 속에서 나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렸다.



최근에 친한 동생이 말했다. 언니는 남한테는 관대하면서 자신한테는 너무 야박하다고. 그러고 보니 쉬는 동안은 마음 편히 보내자 해놓고서 당근 따윈 주지 않았다. 너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있어서 되겠냐고, 자꾸만 무얼 찾아보고, 찾아 읽고, 찾아 듣고 그랬다. 그러다 가끔 쓸 마음이 생겨 쓰기도 했다. 채찍질은 계속되었지만, 어느 하나 완성한 건 없었다. 마음 노동이란 24시간 연중무휴 나를 갉아먹고 미래의 밑그림을 처참하게 그리며 눈을 뜨고 똑똑히 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 난 또, 조금이라도 살아내기 위해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다 보니 또 자기 비하로 빠진다. 너무 구리다. 이 글을 쓰는 동안은 이를 악물지 않기 위해 습관적으로 입술을 띄웠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양은 볼 수 없지만, 느끼려고 노력했다. 이 순간까지 노력이라니. 허.



꼭 열심히 살아야 하냐고 물었던 이십 대 중반의 어떤 친구가 떠오른다. 그땐 좀 당황했는데, 이젠 그 친구의 두 손을 붙잡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할 만큼 하되 악물지 말라고, 그건 무언가에 물리는 것과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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