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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Jan 17. 2021

마음의 근육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 보면 내 몸이 얼마나 하찮고 허약한지 알게 된다.

트레이너가 시키는 동작은 고작 열 번 중 한 번 제대로 할까 말까이고,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이성의 끈은 거친 호흡과 함께 멀어져 간다.

그런 내가 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아프지 않으면 (힘들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자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 이 정도면 할만한데?' 


자뻑에 취해 헬스 퀸인 양 호흡을 가다듬고 있으면 

트레이너가 매의 눈을 하고 다가와 자세를 고쳐주었다.

(고작 몇 분일뿐인데, 잠깐만 취하게 내버려 두지... 야박한 사람...)

하지만 그렇게 고침을 당한?! 자세로 한 세트를 반복하고 나면 알 수 있었다.


“아! 이거구나!! 와씨! .. ”


꾸준히 해야만 근육이 붙는다고 했다. 주 3회만 잘 나와도 몸이 달라질 거라고 말했다.

나는 열심히 헬스장에 나갔지만 트레이너의 말 때문은 아니었다.

선불로 낸 돈이 아까웠다.

그 돈을 벌자고 죽도록 일한 게 가여워서.. FEAT. 셀프연민으로 나갔다.

'일을 하느라 몸을 버리고, 몸을 버려 번 돈으로 다시 건강한 몸을 위해 헬스장에 등록한다'

(활자로 보니 조금 더 한심해 보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갖는 디폴트 값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헬스 트레이너의 말은 부정할 것 없는 '레알 참 트루'였다. 

초반에는 안 쓰던 몸을 쓰려니까 밤마다 낯선 근육통에 힘들었지만

마침내 비루한 몸뚱이가 운동량을 머금기 시작했다.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자 땀을 흘리고 숨을 뱉어내는 반복에 낯선 쾌감이 있었다.

더욱이 기쁜 사실은 제법 근육이 붙은 몸이 

무방비로 쳐들어오는 (무의식이 배달음식을 시켰으므로, 결단코 자의식이 행한 것이 아니므로 무방비로 칭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고칼로리 음식을 견뎌낸다는 것이었다.

기초대사량이라는 어마어마한 방패!!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임에 감탄했다.


그러니 궁금해졌다.


몸에 붙은 근육처럼 마음에도 근육을 붙일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마음의 근육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너무 쉽게, 자주 상처 받는 나에게 한 선배는 말했다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게 좋지 않을까"


직장, 친구, 애인.. 

예고 없이 다가오고 멀어지는 타인들 사이에서 최소한의 '나다움' 은 지켜내고 싶었는데..

나는 늘 실패했다.

대체로 매달리고 애원했으며 가끔은 도망쳤다.

그래서 선배의 말처럼 속이 튼실한 사람이 되는 게 힘들었다.

상처 받아서 힘든 건 꾸준한 남 탓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지만...

근육이 없는 내 몸은...  작정하고 들여다봤다가 자기혐오에 빠지기 일쑤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말을 하는 선배에게 (물론 속으로) 


'야! 너 남의 불행에 충고질 하니까 좋늬야? 

네가 내 상황이면 한가하게 근육 타령할 수 있을 거 같아?'


외쳤겠으나 이상하게 그 날은 달랐다.

선배의 말투는 건조했고, 피로에 절은 얼굴은 무뎠는데 그 때문에 더 슬펐다.

무표정에서 켜켜이 쌓인 상처를 읽었다면 비약일까?


마음의 근육을 기르라는 선배의 말은 조언임과 동시에 

자조 섞인 씁쓸한 혼잣말이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다칠 마음이 남아있는 후배가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닳고 닳은 자신의 마음이 새삼 퍽퍽했겠지.


선배도 지금의 나처럼 자그마한 일에도 파르르 했던 때가 있었을까?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금세 두 눈은 붉어지고, 

했던 말을 또 하거나, 했던 말을 취소하는 그런 부끄러운 짓도 했을까?


나는 마음의 근육이 턱없이 부족하다. 

상처 받는 게 두려워서...그 두려움이 근육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누군가 날 평가하는 게 겁나고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 과거가 되는 게 겁나고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별 일이 되는 게 겁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한 후에야 붙는 것.

그게 마음의 근육 아닐까 



상처를 받아야만 얻을 수 있다니,

사는 동안 이 비싼 값을 몇 번이고 치러야 하겠구나.

정신이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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