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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전자 Nov 09. 2023

죽은 새를 보았다

비열함에 대하여

죽은 새를 보았다. 차가 일방통행으로 다니는 골목, 비에 젖은 콘크리트 도로는 진한 회색으로 물들었다. 좁다고도 넓다고도 할 수 있는 도로 위에 죽어 있는 새를 보았다. 주변에는 술집이 늘어서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술집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철로 된 펜스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언젠가는 날갯짓을 하게 했을 근육이 바닥에 눌어붙어있었다. 살점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선홍 빛 속내가 드러났다. 듬성듬성 하얀 뼈가 보였다. 짓눌린 살점 위에는 까맣고 하얀 털이 젖어 있었다. 죽은 이후에도 여러 번 짓눌린 것 같았다. 얇고 기다란 다리는 막대처럼 딱딱하게 그리고 엉성하게 놓여있었다. 어디가 얼굴이고 어디가 꼬리인지 알 수 없었다.

재빨리 죽은 새에게서 멀어졌다. 낮에 먹은 김밥 재료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에서 흩어졌을 것들이 떠올랐다. 새의 사체처럼 바스러졌을 김밥 재료들. 죽은 새에게서 멀어지며 부리나 눈알 같은 건 콘크리트 틈 사이에 끼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읽은 어떤 소설이 떠올랐다. 그 소설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식인으로 애도하는 인물이 등장했다.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살점을 곧잘 뜯어먹는 걸 상상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끔찍한 일이 아니라 솜사탕을 뜯어먹는 것처럼 보송보송하고 따뜻한 느낌이 연상되었다고도 말했다. 나는 그게 꽤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너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나의 일부가 되어줘.

조금 걸어간 뒤 고개를 돌렸다. 새의 형태가 보이는 정도의 거리였다. 죽은 새가 있는 자리에는 살아있는 새가 다가왔다. 총총 두 발로 뛰어서. 살아있는 새의 깃털은 까맣고 하얬다. 빛에 반사되어 살짝 반짝거렸다. 그 새는 죽은 새 앞으로 다가가 부리로 몸통을 찍었다. 똑똑 찍어서 먹었다. 흩어진 살점을 먹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살아있는 새가 죽은 새의 사체를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끔찍했다. 그럼에도 계속 쳐다보았다. 내 안에 어떤 욕구가 느껴졌다. 죽은 새를 쳐다보는 건 마치 나를 벌주는 것 같기도 했지만, 희열감과 쾌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 멈출 수 없었다.

숨은 사라지고 갈기갈기 찢어진 형체를 보며 나는 역겹다는 생각보다 의외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뿐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나의 비열한 모습을. 그것을 들킬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스스로를.

살아있는 새는 부리짓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으로 치면 여섯 살 정도의 지능이 있다는 그 새는 죽은 새의 사체를 계속해서 먹었다. 죽은 새도 살아있을 때 어떤 새의 사체를 먹은 적이 있었을까? 나는 살아있는 새의 행동이 살기 위함이거나 단순한 호기심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 위로 예전에 읽은 소설을 떠올렸다. 내가 너를 먹을게. 너는 나의 일부가 되어줘.

새는 부리짓을 멈춘 후 잠시 서있었다. 죽은 새의 몸통 위로 눈물인지 침인지 모르는 물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성큼성큼. 부리짓을 하던 새는 도망가지 않고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모든 게 짓눌려 무너진 사체 위로 붉은 알맹이가 보였다. 분홍빛 살결 사이에 있는 붉은 심장이었다.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었을 때만큼 작은 심장이. 유리구슬처럼 젤리처럼 체리처럼 모찌처럼 탱글탱글 한 심장이 있었다.

모든 게 엉망이 거리에 완벽한 새의 심장이 거기 있었다. 나를 먹어줘 하는 듯.


그것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의 부리는 그 말캉한 무언가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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