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see, feel!
대학에 처음 들어가서 한 생각이, 항상 깨어있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이 시간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
거짓되고 탐스러운 정보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휩쓸려 살아가면 나를 잃을 것이 분명했다. 존재를 망각하고 비루하게 살겠지.
여태껏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고 온실 속 화초였다. 훗날 현재의 나를 돌아보면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예전에는 더 심했나 보다.
어릴 적부터 외국에 살아본 경험은 내가 다양한 삶을 보고 경험했다는 착각을 심어주었다. 특히, 외국에 살았다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미국이나 중국이 아니라 개도국에서 살았다는 것에 꽤나 자부심을 가졌다. 누구나 하는 경험이 아니었으니까.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 마냥 내부인 행세를 하며 스스로를 속였다. 외교관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이 권력과 힘인 줄 몰랐다.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몰랐다.
세상은 나와 친구들이 본 단편적인 세계가 아닌 훨씬 복잡한 곳이었고, 꿈과 희망만으로 가득 찬 곳이 아니었다. 봉사를 하거나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한 토론은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 무지가 죄이나,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했을 뿐이었다. 상황에 맞춰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게 죄는 아닐 테지만, 그 세상이 전부라는 확신은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것은 꽤 나중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나의 세계에 도전하고 항상 깨어있는 정신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속마음을 감추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는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는 것들에 주목하는, 그냥 스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서로의 사사로운 이야기에 질려버렸고 자극적인 얘기나 뒷담화는 훗날 골치 아플 일을 만들 것이기에 아예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사람의 소중함을 잊었고 애정을 잃었다. 인류애를 잊고 잃으며, 스스로 외로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우리는 사랑을 잃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에 둘러싸였지만, 그들은 모두 이방인이다. 이방인에게 속마음을 감추는 건 당연하지만, 너무 많은 이방인에 둘러싸인 우리는 지쳐버린 듯하다. 설명하는 것에 지쳤고, 마음 여는 것에 지쳤다. 그렇게 우리 곁을 지키는 진짜 존재들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게 되었다. 아니, 진짜 존재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 뜬 봉사가 되었다. 마음을 열고 털어놓는다는 것조차 힘이 드는 일이니까.
그래도 이제는 힘을 내어 사람을 느껴봐야 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고 남은 시간 동안 주체적으로 행복을 느낄 자유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