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청명한 하늘을 이고 걷자

네팔 히말라야 아라비카

by 만델링

포카라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이 시작되는 네팔의 도시다.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2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고산지대라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더없이 투명한 기운이 뻗친다. 안나푸르나는 풍요와 곡식을 관장하는 힌두 여신의 이름이다. 론리플래닛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켈 끝이 얼음을 파고드는 소리가 들린다. 쩡~ 하며 분명하고 단호하게 들린다. 만년설이 덮인 봉우리들이 햇빛과 만나 뒤집히는 사진이다. 은빛에 눈이 멀까 저절로 눈이 감긴다. 가슴속이 시린 듯 상쾌해진다. 눈보라에 불려 가서 사라지는 사람의 형상이 스치는 사진이다. 강가푸르나 7455m, 랑중히말 6983m, 하운출리 6441m가 보인다. 뒤로는 엄청나게 거대한 다울라기리 8167m, 마나슬루 8163m가 떡하니 버티고 섰다. 바로 이 거대한 산맥들의 발밑을 무릎걸음으로 쫓아 걷는 길이 안나푸르나 트레킹이다.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사지 멀쩡하고 두 다리가 무엇보다 실해야 한다. 세상사 근심 걱정 모두 내려놓고 소박한 배낭 하나 둘러메고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고 싶다는 마음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다. 그 다음은 경비다. 여타 트레킹보다 돈이 더 필요하다. 기본적인 장비가 준비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한 여윳돈이 꼭 있어야 한다. 이런 준비가 됐다면 배낭을 꾸리자. 가져갈까 말까 망설여지는 물건은 과감히 던지고, 꼭 필요하다 생각되는 물건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배낭에 넣어야 한다. 걷다 보면 바늘 한 개의 무게도 코끼리의 뒷다리 무게만큼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란다. 아~ 사람의 얄팍한 마음이 황막하고 쓸쓸한 만년설에 널브러지는 불안함이 엄습한다. 고산병 증세로 몸을 지탱 못 하고 쓰러질 수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한다. 고산병에 대비한 예방약을 미리 먹고 출발해야 함을 명심하자. 햇빛이 수직으로 내리꽂히고 거대한 눈바람이 일 수도 있는 자연현상에 겁먹어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자. 황량하고 쓸쓸한 그곳을 걷고 돌아오면 자신이 있던 곳이 얼마나 따뜻하고 안정적인 곳인지 저절로 안다고 하니 한번 가보자. 고독하고 의연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남은 생을 유연하고 즐겁게 보낼 힘을 얻을 것이다.


오늘의 커피는 세계의 거대한 봉우리를 모두 감싸 안았다. 품이 너른 커피다. 노란 듯 흙빛을 닮은 콩이 아담히 예쁘다. 야트막한 담장에 누런 문풍지 방문의 뚫린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보인다. 엄마의 젊은 시절, 가난해도 정겨웠던 저녁 풍경이 도란도란 속삭이는 커피다. 고소하고 덤덤한 내음이 좋다. 부드러운 그늘에 싸인 아트막한 집에 부지런히 일하는 가족들이 보이는 커피다. 그지없이 평화롭다. 히말라야의 성스러운 기운을 받은 커피 한 잔, 척박한 마음에 빗물이 된다.

내가 만약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나선다면 여동생과 갈 것이다. 그녀는 등산을 좋아한다. 매일 집 근처 산에 간다. 큰 병을 앓고 난 후 회복을 위한 운동으로 등산을 택했다. 세찬 비가 내리는 날이 아니면 거르지 않는다. 성실한 생활인이다. 훌쩍 키가 크고 미간이 넓고 눈매가 선명한 내 동생이 보고 싶다. 수술 후 항암, 방사선, 표적치료까지 했다. 몸이 약할 대로 약한 상황에서 남자아이 둘을 먹이고 입히고 재웠다. 자신을 위한 간병인이나 집안일 도우미 없이 그 긴 시간을 지켰다. 의지가 굳은 사람이다. 수술 후 동생은 삶의 이치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겸손하게 강인하게 우아하게 마음을 다듬었나 싶기도 하다. 혼자서 존재할 수 없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실천하고 있는 듯하다. 만년설의 하얀 눈꽃을 보며 네팔 히말라야 한 잔, 같이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