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신혼여행 - 우리는 아이를 갖지 않고 둘이서 잘 살기로 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는 신촌의 비뇨기과에 가서 정관수술을 받았다. 어영부영하다가 결심이 흔들릴 게 두려웠다. 비뇨기과 의사가 "자녀는 몇 분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 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했다. 15쪽.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HJ가 가난한 집 딸의 자세를 아직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즐거움을 맛볼 때도 늘 본전을 생각하는 습관이 그녀의 몸속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토요일에 소파에 편히 앉아서 컴퓨터로 <라디오 스타>를 보는 데에는 전기료밖에 들지 않는다. 샌드위치는 내가 전날 밤에 마트에 갔다가 사 온 떨이 상품이다. 202쪽.
이 두 대목에서 가장 크게 웃었다. 시종일관 웃긴다. 너무 웃겨 눈물이 난다. 애써 웃음을 참으려 해도 광대가 올라간다. 심통 맞고 경직된 엄숙주의자도 작가의 넉살에는 웃을 수밖에 없다. 그의 언어는 전혀 딱딱하지 않다. 나란히 앉아 나불나불하는 느낌이다. 거창하게 현실을 풍자하는 글투는 아니다. 하지만 신랄하게 모순을 꺼낸다. 결혼, 연애, 취업, 가족 관계 등 사회 통념이라는 것에 조목조목 반박한다. 전직 기자였음을 자랑하지 않지만 그의 글은 기자였음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평소 가졌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잘 드러낸다. 가볍게 까발려지는 기분이다. 불량하고 다정하게 발칙하다. 사생활을 이리도 거침없이 드러내다니. 부인이 읽었을 텐데 아무 일 없었는지 궁금하다. 작가가 되려면 이 정도는 쿨하게 밝혀야 되는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정작 작가는 개의치 않는 투다. 누가 읽거나 말거나, 아님 누군가가 읽는다는 생각도 안 하는 건가 싶기도. 나는 자꾸 부인의 입장이 된다. 나라면 무슨 이런 무례한 인간이 다 있나, 2단 옆차기로 반쯤 기절시켰을 것이다. 독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내가 작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해졌다. 나는 이런 글은 쓸 수 없다. 이렇게까지 솔직해져야 한다면 나는 기권이다. 보여줄 것도 없지만 숨길 게 많은 까닭이다. 반대로 훗날 1인 출판사를 차려 자비 출판을 한다면 그것은 장강명 작가 덕분일 것이다. 그의 글을 읽고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고 여긴다는 뜻이 될 테니. 이러거나 저러거나 젊은 부부의 신혼여행 분투기는 아슬아슬 재미있다.
HJ랑 친구 관계라면 하와이 코나 엑스트라 팬시를 사주고 싶다. 시원하고 발랄한 꽃향기가 있다. 얼그레이 홍차 같은 빛깔이다. 앙증맞은 병에 든 공항 면세점 향수처럼 뚜렷한 윤곽과 주장이 있는 커피다. 예민한 HJ라면 파인애플의 산미를 느낄 수도 있다. 물처럼 맑고 부드럽지만 뚜렷하고 선명하다. 늘 본전 생각하는 HJ라도 잔잔하고 긴 여운에 안심하는 커피가 될 것이다. 삽상한 밤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 들 것이다. 어스름한 배경에 풀벌레 연주곡도 들릴 것이다. 유쾌하고 건조한 공기 속에 왁자한 웃음소리가 박자를 맞추고 긍정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할 것이다. 인생 앞에 굴복하지 않는 작가는 오늘도 웃기고 있다.
오늘의 커피 하와이 코나 엑스트라 팬시는 3대 프리미엄 커피라 알려졌다. 입방정 한량들이 만들었을 테지만 그래도 솔깃한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예멘 모카 마타리, 하와이 코나 엑스트라 팬시가 3강에 든다지만 맛있고 근사한 커피는 많고 많다. 하와이 코나가 유명해진 데는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영향도 있다. 톰 소여의 모험을 쓴 그 작가 맞다. 커피를 즐기는 그가 코나는 그 어떤 커피보다 풍부한 향미를 지녔다고 극찬했단다. 아뿔싸, 일단 사람이 유명하고 볼 일이다. 내가 말했다면 콩알이 유난히 크네, 매끈하기만 하네, 과일향이 풍부해도 산미는 부족하네, 퉁을 했을 것이다.
코나는 숨겨진 출생의 비밀이 있다. 커피벨트라 명명하는 지역이 아닌 곳에서 태어났다. 미국 태생이다. 미국의 50번째 주 그 하와이다. 신혼여행 가 본 사람이 아는 하와이다. 유일하게 미국 영토에서 생산되는 커피다. 그래서 '하와이' 하와이 코나 엑스트라 팬시다. 설명은 이만하고 입맛이 까다롭고 세계 3대 커피 마셨다 자랑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조금 비싸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멋진 커피임에 확실하다. 특유의 맛과 향을 음미하는 기호품으로 생각하며 사치를 부리듯 마셔보길 권한다.설령 코나를 만나지 못했더라도 우리 삶이 휴식 시간을 보내고 아이스크림 하나 먹는 기분으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사소한 싸움, 갈등은 그만 잊고 조용히 자기 일에 충실히 지내기만 하면 행복에 닿는다고 생각하자. 이런 마음이라도 꾹 눌러 담아 호호호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