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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Jan 25. 2023

<모순> 되풀이되는 실수, 제 손으로 택하는 모순

미친 필력으로 삶과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양귀자의 '모순' 독서노트


 첫 문장부터 독자를 강렬하게 사로잡는 양귀자 작가의 대표작입니다. 읽는 사람의 멱살을 잡고 끌고가는 듯한 필력을 숨가쁘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 말미에 다다라 '왜 우리는 알면서도 모순적인 선택을 할까'라는 질문과 맞닥뜨리며 삶과 선택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무리 합리적이라 자부해도, 인간은 결국 모순투성이인 존재가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큰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문득 이 책이 떠올라 독서노트를 적어 보았습니다.


 당신은 모순 없는 선택을 할 자신이 있나요?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양귀자,『모순』, p.296, 쓰다, 2013




1.

 직관적이라 더욱 묵직하게 와닿는 제목이다. 『모순』이라는 제목을 보고 어떤 모순이 등장하나 살피며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느낀 점은, 이 책은 우리 삶의 뻔한 모순만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모순』에는 처음부터 드러나는 모순, 마지막에 밝혀지는 모순, 그리고 화자가 말하지 않는 숨겨진 모순이 있다.


 첫 번째는 안진진의 어머니와 이모의 모순이다. 어머니와 이모는 한날한시에 태어난 사이좋은 쌍둥이 자매이지만, 결혼 후 생활 수준이 극단적으로 벌어진다. 어머니는 가정폭력에 가출을 일삼는 남편과 감옥에 드나드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매일 시장에서 양말을 팔며 바람 잘 날 없는 삶을 산다. 이모는 유능하고 안정적인 성격의 남편을 만나 똑똑한 두 자식을 유학보낸 후 느긋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린다. 안진진의 눈에 비치는 어머니는 억척스러울 정도로 생활력이 강하고 오뚜기마냥 회복이 빠르다. 이모는 천진난만해보일 정도로 긍정적이고 작은 것에도 감동하며 감수성이 예민하다. 이토록 극단적으로 차이가 벌어진 쌍둥이 자매의 운명부터도 모순적인데, 이모의 죽음 이후 안진진에 의해 되짚어지는 그들 각자의 인생은 더욱 모순적이다. 불행한 일 투성이여서 행복한 어머니, 행복한 일 뿐이어서 불행한 이모. 남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비참해보이는 어머니와 걱정 하나 없어보이는 이모이지만, 그 삶의 당사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과 불행은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모순이다.


 두 번째는 우이독경의 모순이다. 주인공 안진진은 김장우와 나영규라는 두 결혼상대를 두고 고민한다. 어머니와 이모를 관찰하며 이모의 죽음까지 일련의 사건을 겪고 행복의 모순을 경험한 안진진이지만, 책 말미에 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에는 독자의 예상을 뒤집는다. 함께 있으면 자신으로 하여금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을 이끌어내는 김장우를 안진진은 사랑한다. 김장우의 가족은 안진진의 가족만큼이나 가난하고, 김장우와 보내는 시간은 감정의 폭풍을 불러일으킨다. 한편 나영규는 매사 계획적인 성격에 정석적인 애정표현을 하고, 유망한 직장을 가져 마치 안진진의 이모부를 연상시키는 남자이다. 다시 되짚어보면, 이러한 성격의 이모부 덕에 이모는 유복한 삶을 누리고, 아버지의 성격 탓에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하며 산다. 그런데 어머니는 바람 잘 날 없는 생활에서 활력을 얻고, 이모는 심심한 이모부의 울타리 안에서 권태감을 참지 못해 죽음을 택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곁에서 관찰한 안진진은 나영규를 선택한다. 이것이 두 번째 모순이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양귀자, 『모순』, 쓰다, 2013)


 세 번째는 화자가 알지 못하는 자신의 모순이다. 『모순』은 주인공 안진진의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된다. 안진진 역시 하나의 캐릭터이자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이 모순적인 생각을 하거나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넘어가기도 한다. 사촌인 주리와 대화하며 도덕을 우선시하는 주리를 편협하다 여기는 장면, 아버지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만으로 폭력과 비행을 미화하는 장면에서 그렇게 느꼈다. 이런 점에서 1인칭 화자의 인간적인 오류를 재미있게 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 또한 '작가노트'에서 독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소설은 비로소 완성된다는 요지의 말을 했으므로 나도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이 책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면 기쁘겠다.



2.

덧붙여 글을 이끌어나가고 독자를 사로잡는 힘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문체나 글솜씨보다는 필력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특히 이모와 첫눈을 보는 장면, 아버지가 안진진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 김장우와 야생화를 보러 가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같은 작가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읽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내가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들이 끊임없이 그물을 만들어 나를 데려가는 것만 같다. 혹은 문장이 내 멱살을 잡고 이야기와 함께 끌고 가는 것만 같은... 한강의 『흰』에 이어 소장해서 두고두고 읽고 싶은 두 번째 책이다.


3.

 진모라는 인물에 대해. 책을 다 읽고 나는 안진진의 남동생 안진모가 '삶의 모순'이라는 이 책에 기여하는 부분과 등장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진모는 이십대 초반임에도 조폭 부하들을 거느리고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하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화자인 안진진의 시선에서 안진모는 위험한 조직폭력배라기 보다는 어설프게 영화 캐릭터를 흉내내는 남자아이로 그려진다. 진진의 묘사에서는 한껏 무게를 잡는 진모에 대한 비웃음을 넘어 누나의 애정까지 느껴진다.

 한편 진모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자신이 따라하던 보스의 모습에 제법 가까워진다.(여전히 진진의 눈에는 어설픈 아이일 뿐이지만.) 그리고 진진은 진모의 '진짜 삶'과 '가짜 삶'에 대해 생각한다. 진모는 자신이 아닌 영화 속 캐릭터를 어설프게 흉내내다가 어느새 정말 그 모습에 근접하게 되기도 하고, 진짜 모습과 흉내낸 모습의 경계가 모호해져 그 구분이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정말로 그렇다고 믿고 행동하면 그것이 언젠가 진실이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진짜와 가짜는 어떻게 경계지어지고, 그 진위는 누가 판단하는가? 이것이 책 속의 네 번째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나는 진모가 연기를 시작한다면 적성에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양귀자,『모순』, p.296, 쓰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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