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다혜

절친: 더할 나위 없이 친한 친구. ‘절친한 친구’를 줄여 이르는 말

by 는개

자로 잰 듯 일자 반듯한 앞머리, 흘러넘치는 볼살 밑으로 각진 턱, 튀어나온 배 때문에 푸근한 몸집과 통통한 손등. 열일곱 어느 날 만난 내 친구 다혜의 모습은 이랬다.


다혜는 속초와 고성 중간지점인 용촌리에 살던 고물상집 딸이었다. 어느 날 같은 동네 친구인 정진이와 하교를 하다가 혼자 집에 가는 나를 보게 되었고, 네이트온에서 내 이름을 찾아 메신저를 보낸 것이다. 우리는 미주이모가 운영하는 햄버거가게인 '올리브'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고 다음 날 점심시간에 가게 앞에서 만났다.


"난 지다혜야."


다혜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인 데다, 주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구의 열기까지 합세해 너무 후덥지근했다. 난 구석으로 더 당겨 앉으며 웅얼거렸다.


"난 이재영."


미주이모가 내 목소리를 들을까 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제야 첫 친구를 사귀고 있는 모습을 적어도 미주이모에게만은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다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잠시 바라봤다. 햄버거 기름이 군데군데 묻어 번들거리는 테이블 위로 잠깐 정적이 흘렀다.


"너도 여기밖에 못 오는 성적이었어?"

"아니. 상고 갈 수 있었는데, 집에서 가까워서 여기로 온 거야."

"야. 무조건 상고로 갔었어야지."


갑자기 다혜가 가게 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카운터 쪽을 살폈다. 다행히도 미주이모는 없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혜를 쳐다봤다. 다혜는 상고도 공고도 둘 다 실업계긴 하지만 상고가 취업이 훨씬 잘되는데 왜 여기로 왔냐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로 내 등짝을 때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경은이도 별말이 없었는데, 처음 만난 친구가 내 취업을 걱정하다니. 나는 등짝이 아픈지도 모르고 다혜를 쳐다보며 옅게 웃었다. 그때 미주이모가 햄버거를 들고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는 게 보이자 다혜는 벌떡 일어났다. 내가 빤히 쳐다보니, "뚱뚱해서 쳐다보냐" 며 툴툴거렸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늘 다혜와 함께 다녔다. 쉬는 시간엔 매점을, 점심시간엔 급식실을, 하굣길엔 속초시내를 함께 했다. 내 옆엔 늘 다혜가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은 다혜를 찾다 안 보이면 내게, 나를 찾다 안 보이면 다혜에게 어디 있는지 물었다. 우리가 제일 친하다는 건 이제 모든 친구들이 알 정도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졸라서 상고로 가지."


급식을 먹고도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에 다혜와 매점을 향하던 때였다. 다혜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나를 향해 뾰로통한 얼굴로 물었다.


"그럴걸 그랬나?"

"그럼. 우리 학교는 솔직히 꼴통 학교잖아."

"그럼 너를 못 만났을 수도 있잖아."

"아, 그렇네. 잘 왔어 꼴통학교로."


별것도 아닌 말은 우리를 한 시간이나 정신을 못 차리게 했다. 한 번 터진 웃음은 학교 앞 바닷가에서 몰아쳐대는 파도처럼 끝이 나질 않았다. 거의 매일 그런 날들이었다. 다혜와 함께 있으면 내 입가에는 늘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최대 업적인 다혜와의 만남이, 싱그러운 우정이 되어 깊어가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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