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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Oct 23. 2019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살기

혼자라도 제대로 살기

작가 서림의 취향상점 세 번째 #3. 로빈슨 크루소


왠지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홀로 바다에 표류하는 이야기나, 혼자 무인도에 갇혀 어떻게든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를 사모해왔습니다.  


그래서 톰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는 물론이고, 호랑이와 바다 위를 표류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 그리고 우리나라의 <김표류기>, 이런 영화들이 저의 최애 영화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읽을거리가 떨어져 중고책방에 갔다가,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난 것입니다.  

책은 세계명작선이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서가에 꽂혀있었습니다.

 


로빈슨 크루소, 오늘은 그와 함께 '방콕'하는 날입니다.


어릴 때 읽었던 책을 커서 다시 읽으면 보통 그렇듯이, 그의 이야기가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처음에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자신의 암담한 처지를 놓고 신을 원망하긴 하지만, 그는 곧 놀랍도록 이성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그는 요새를 쌓고, 사냥하고, 보리쌀을 발견해 농사를 짓고, 빵을 굽기 위해 질그릇을 빚고, 건포도를 말리고, 안정적으로 염소고기를 얻기 위해 직접 염소목장을 가꾸기도 하며, 나무로 탁자와 의자를 만들어 그것에 앉아 기도하고 일기를 씁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앵무새 한 마리를 길들여 말동무를 시키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이쯤 되면 섬에서 나가기도 아깝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나는 이 섬의 제왕이었다. 적도 없고, 주권이나 통치권에 도전할 경쟁자도 없었다. 이 섬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내 생활은 외롭고 힘이 들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비로 충만해있는 셈이다. 나는 안락한 생활은 조금도 탐내지 않았다. 오직 신의 은총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무사히 은혜롭게 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처럼 마음을 바로잡자, 나를 괴롭히던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사라졌다 "



 표류된 것도 같고, 섬안에서 자급자족하는 것도 같은데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은 자살까지 하려 했던 것을 생각하면, 로빈슨 크루소는 꽤나 행복해 보입니다. 섬을 탈출하기 위해 2년 동안이나 배를 만드는 등 부단히 노력하기는 하지만, 섬안에서 그는 풍요합니다. 구조되기 전까지 무려 28년을 그렇게 살아냅니다.




혼자라도 제대로 살기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지 올해로 7년째입니다. 나름대로 밥을 직접 지어먹는 일은 연중행사가 되었고, 가사노동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며 대충 때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한 일주일, 로빈슨 크루소와 함께하고선 새삼 부지런해진 나를 발견합니다.


 그를 보니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지만 사실은 무인도에 사는 이만도 못한 삶의 질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든 것입니다. 쉬는 날인 오늘 아침에는 널어놓고는 잊고 있던 빨래를 개고, 집안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이사 오고 무려 반년을 미뤄두기만 했던 싱크대 리폼을 위해 인테리어 시트지도 주문했습니다.  이제 밥을 보리쌀로 지어먹어야겠습니다. 과일을 사 와 먹을 때도 무인도에서 따온 과일을 먹듯이 감사로 대해야겠습니다. 더 자주, 신의 은총에 대해 생각해야겠습니다.



"로빈, 로빈슨 어디 있어! 불쌍한 로빈슨 크루소!"


앵무새 폴이 이렇게 소리칩니다만,

그러나 사실은 이 곳이 모든 것이 주어진 섬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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