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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정 Mar 19. 2020

8. 영어 목표를 설정하는 법

+ 나의 영어 실력 스스로 평가하기


내 영어의 목표를 어떻게 잡으면 좋을까?


목표를 단순히 '영어 잘하기'라고 정할 순 없다. 막연한 목표를 갖고 시작하면 의지력도 얼마 못 가서 흐릿해지기 마련.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슬럼프가 올 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그리고 영어 공부의 여정 중에는 종종 궤도 수정을 해야 할 일이 생긴다. 출발점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파악하려면 처음에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시험이나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것을 목표로 잡으면 된다. 그러나 단순히 영어 회화 실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라면 목표 수준을 어떻게 정할지 막막할 수 있다.


정답은 없지만,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참고하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누구를 위한 레벨테스트인가



나는 영어 회화를 잘하고 싶다.

그럼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얼만큼 잘하고 싶은데?"


그 얼만큼이 얼만큼인지 레벨로 나눠 살펴보자.

      

레벨 1: 알파벳만 읽을 수 있고 문장을 만들기는 어려운 영어 입문자

레벨 3: 여행가서 의식주를 영어로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으나 매끄러운 대화는 어려운 여행 가능 단계

레벨 6: 일상적 소재로 대화는 가능하지만 정치·경제·시사를 주제로 한 깊이 있는 대화는 어려운 중급

레벨 8: 영어 원어민들의 모임에 섞여서 불편함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상급

레벨 10: 영어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영어가 모국어인 원어민  

   

의사소통의 능숙도를 기준으로 1~10까지 편의상 나누었다. 이를 토대로 목표를 정해볼 수 있다.


현재 레벨 4인 사람이 "나는 앞으로 반년 안에 레벨 6까지 도달할 거야"라고 목표를 정했다고 해 보자. 그럼 반년 후에 영어로 일상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영어 공부 방법을 정하고 필요한 자료를 구해 공부하면 된다. 반년이 지나고 일상 대화를 무리 없이 한다면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등급으로 목표를 정하는 방식은 가장 흔한 방식이다. 학원이나 온라인 강의에서도 레벨테스트를 통해 반을 편성하고 수강생의 목표 수준을 정해준다. 하지만 등급 방식은 사람을 분류하는 데는 편리하지만, 개개인의 영어 실력을 정확히 나타내기는 어렵다. 같은 레벨 안에서도 사람마다 실력 차이가 클 수 있다. 그리고 영어 실력은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외부에서 정한 기준으로 실력을 재는 건 한계가 존재한다.


나는 내 영어 실력의 현주소를 보다 더 정확히 파악하고 실력의 변화를 스스로 체감하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채택한 나름의 평가 기준이 있는데, 그것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언어의 본질적인 기능을 짚어봐야 한다.          





언어, 강력하지만 불완전한 도구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상상력, 즉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사고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허구의 세계를 논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고차원적인 언어 체계 덕분이었다.


언어는 인간이 지닌 강력한 도구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끄집어내어 밖으로 표현해 주는 게 이 도구의 쓰임새다.


생각과 감정을 '관념'이라는 용어로 묶어보자.

관념은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느낄 수 없지만, 언어를 통하면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형태로 변신한다.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언어라는 필터가 관념을 소리, 문자, 수화 등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아무 말하지 않고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면 굳이 언어를 발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정리하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언어가 우리의 관념을 오롯이 반영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 천 단어의 말을 하고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산다. 그런데 과연 나의 말들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본의를 완벽하게, 왜곡 없이 전달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말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종종 본의가 잘못 전해져 갈등이 생기곤 한다.


언어는 고마운 도구이지만 본질적인 한계를 지닌다. 언어로 표현되는 세계는 실제 세계와 차이가 있다. 무지개의 색을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로 표현하지만 실제로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를 '그냥 바라보며 느끼는 것'과, 그 무지개를 일곱 빛깔 무지개라는 '틀에 넣어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


언어는 관념을 소리와 문자에 담는 과정에서 소통의 편의를 위해 많은 부분을 흘려보낸다. 언어는 우리의 뜻을 100% 담아내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언어로 완벽히 구현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어 실력을 새롭게 정의하기



우리는 일상을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거의 다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심오한 개념을 설명하거나 복잡한 상황을 묘사하려 할 때는, 평생을 한국어를 쓰며 살아온 우리도 머릿속에서 할 말을 재구성하는 잠깐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즉흥적으로 발표나 연설을 할 때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말하려고 했던 내용을 깜빡하고 놓칠 때도 있고, 말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던 불필요한 얘기가 섞여 나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우리의 말이 우리 본의를 100% 반영한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영어로 말할 때를 살펴보자.

금연구역에서 흡연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제가 듣기로 여기서 담배를 피우는 건 절대 금지라고 하던데요." 라는 문장을 영어로 말하려 한다.    

"I think, you no smoke!" 라고 말하면 어떨까? 문법적으로는 틀리지만 대부분은 알아들을 것이다.

"I've been told that smoking is strictly prohibited here." 처럼 각 잡힌 문장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단어만 적당히 나열한다면 의사소통은 된다. 이처럼 간단한 문장은 소위 Broken English로도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단어 나열식 소통은 내용이 조금만 복잡해져도 한계에 부딪힌다.     

"그는 직장에서 잘릴 순 없었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나서 딱 해고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일을 했어." 라는 문장은 어떻게 말할까.

"He can't have no job. He tight mind, work hard."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Because he couldn't afford to lose his job, he got himself together and did just enough not to get fired." 라고 해야 말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뜻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 대략적으로 퍼센트로 나타내 보면


He can't have no job. He tight mind, work hard. - 30% 반영     

He couldn't lose job. He tried to work hard. - 60% 반영

Because he couldn't afford to lose his job, he got himself together and did just enough not to get fired. - 99% 반영

     

따라서 영어 실력을 키운다는 건 내 생각과 감정을 '영어로' 최대한 내 본의에 '가깝게' 말할 수 있게 훈련하는 것이다. 영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하는 게 목표가 아니고, 퍼센트(%)를 올리는 게 목표다.


본의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단지 단어 배열만 잘해서 문법적으로 맞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대화의 맥락도 고려해야 한다. 격식을 갖추어야 할 상황에서, 친한 친구들끼리나 쓸 법한 표현을 사용한다면 제대로 된 소통이라 할 수 없다. 당연히 영어 실력뿐 아니라 흔히 센스라고 부르는 언어적 감각도 중요하다.


퍼센트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머릿속에 어떤 관념이 떠올랐을 때 바로바로 영어 문장으로 만들어 보는 연습을 습관화해서 꾸준히 지속하면, 실력이 변화하는 시점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다.





목표 설정 후엔 실행이다



한 가지 팁은, 내가 한국어로 써 놓은 글이나 한국어로 말한 기록(녹음 or 영상)을 보고 그것을 영어로 바꿔 보는 것이다. 방금 전에 친구와 전화통화로 했던 말을 떠올리며 영어로 바꿔 보자. 한 달 전에 쓴 일기를 영어로 바꿔 보자. 그리고 몇 퍼센트나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지 보자. 남이 써 놓은 글이나 남이 하는 말을 보고 연습해도 되지만, 자신의 글이나 말로 연습하는 게 가장 도움이 된다. 결국 내가 할 영어는 나라는 사람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일 테니 말이다.


위 방법은 영어 공부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적용할 수 있는데, 몇 가지 전제가 있긴 하다.


1. 왕초보는 적용하기 어렵다. 영어 문장을 만들 줄 모르거나 문장을 만들긴 했는데 그게 맞는지 틀린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면, 문장을 만드는 기본적인 규칙을 먼저 습득해야 한다.

2. 어느 정도의 인풋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유튜브 영상, 미드, 영화, 원서 등등 자신이 하고자 하는 영어에 가까운 자료라면 무엇이든 좋다. 인풋이 계속 들어와야 문장을 만들 재료가 쌓이고, 내가 만들었던 문장에 틀린 부분이 있으면 스스로 교정할 수 있다.

3. 매일 첨삭을 받을 수 있으면 좋다. 영어와 한국어 둘 다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최고다. 그 이유는 단순히 틀린 부분을 고쳐 주는 것보다, 틀린 이유를 설명해 주고 점차 영어식 사고를 가질 수 있게끔 도와줘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50%도 좋고 80%도 좋다. 본인에게 필요한 만큼 영어를 할 수 있으면 된다.   

이와 같이 목표를 설정하면 내 영어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영어공부의 성과를 알아보기 위해 영어를 직접 내뱉어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는 장점도 있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

그것은 내가 매일 하는 생각, 말, 글을 모두 영어로 (완벽하진 않을지라도) 할 줄 안다는 뜻이다.


그렇게 멋진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루에 0.1%를 올리겠다는 마음으로 꾸준함을 갖고 한다면 일 년 후엔 30% 더 잘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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