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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혜랑 Nov 16. 2022

공포가 선물해준 대학교

혜랑의 끔찍했던 고등학교 3년

혜랑은 삶을 충실히 사는 사람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충실히 산다는 건 뭘까? 빈 시간 없이 빼곡하게 삶을 살면 충실한 거 아닌가?"

그녀의 기준으로 보면 그녀는 이미 자타공인 충실히 사는 사람이 맞다.

그럼 혜랑은 왜 충실히 사는 사람이 되었을까?

혜랑의 삶을 잠시 돌려보자.


11월. 날이 갑자기 추워진다.

그때도 똑같이 추웠다.

특정한 시기를 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으레 이런 말을 뱉을 것이다.

‘수능 철이 다가왔네.’

수험생 시절 뼈 깊게 새겨진 수능 한파의 기억은 수능이 끝난 지 한참도 더 된 사람에게도 여전히 피부로 생생히 남아있나 보다.

마찬가지다. 혜랑 인생에서 가장 충실했던 시기를 따지면, 이때를 이길 수 없을 거다.


고3.



아 어떡해, 진짜. 짜증나. 지들이 뭐 그렇게 잘났어?


누군가는 꿈으로 채워져 있었을 시간, 누군가는 온갖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었을 고등학생 시절, 혜랑은 혼란스러움에 짜증을 숨 쉬듯 내뱉었다.

그녀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비평준화에서 평준화로 바뀐 지 2년째 되는 지역의 학교였다. 지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던 학교라서 선후배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까지도 부심이 어마어마했다. 고작 집 가깝다는 이유로 지원했던 혜랑은 3년 동안 호되게 고생해야 했다.


'누가 보면 시험 치고 들어온 애들인 줄 알겠어.'

차마 겉으로 욕을 할 순 없기에, 혜랑은 속으로 꾹꾹 욕을 씹어 삼켰다.

“너 뭐 해야 하는지 모르니? 내일부터 문제집이라도 가져와서 풀어”

야자시간 첫날, 교과서를 읽으며 멍 때리는 혜랑을 보고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그 말이 지옥 같은 학교생활의 시작 신호였다는 걸 미리 알면 좋았을 텐데.

그녀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길 강요했다.


특히나 그 학교는 일찌감치 꿈을 찾아 예체능을 시작한 아이들에겐 더욱더 가혹했다. 예체능계 학생들은 무시당하고 비웃음 당하기 일쑤였다.

"야, 네가 무슨 예술을 한다고 해. 공부나 하지?"

"뭐 대단한 예술가 납셨어. 나 같으면 그 시간에 야자 한다."

"너 때문에 면학분위기 망가지잖아"

죄인의 심정으로 야자를 빼고 학원에 가는 예체능 아이들의 뒷모습은 애처로움 그 자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학생들에게 예체능이란 마치 하면 안 되는 금기 같은 행위였다. 그런 환경 속에서 예체능을 꿈꾸는 건 말도 안 됐다. 동아리 활동도 최소한만. 무엇보다 강제 야자시간이 있어 일찍 집에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진로탐색 시간은 없었고 직업인과의 만남이나 대학 선배들과의 만남도 없었다. 직업이 뭔지, 진로가 뭔지, 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혜랑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게 됐다. 무작정 목표 없이 열심히 했다.

“나 뭐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너 대학 정했어?”

“그걸 뭐 벌써 정해. 수능점수 잘 받고 생각할 일 아니야?”

혜랑의 의문에 아이들은 답을 주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들도 혜랑과 똑같은 학생인데 무슨 답을 내줄 수 있었을까. 곧 성인이 되고 대학에 갈 꿈에 부풀어 있던 아이들 사이에서 혜랑에겐 목표가 없었다.

'뒤쳐지기 싫어... 지고 싶지 않아... 재수는 더 못하겠어. 제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공포다. 혜랑에게 고3 시절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녀가 했던 행위는 공부가 아니라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에 더 가까웠다.


“자퇴하고 싶다…”

혜랑은 아파트 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무의식에 가까운 말이었다.

"뭐라고?"

우연히 엄마가 그 말을 들었다. 엄마는 당혹스러워하며 무슨 일이 있냐며 혜랑을 다그쳐 물었다. 혜랑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무의식. 뱉은 기억이 없는 말이었다. 그 정도로 몰려있었다.


'내가 무슨 자퇴야... 말도 안 돼...'

그렇다고 완벽하게 포기할 용기도 없었다. 자퇴를 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지금도 안 하는 공부, 학교까지 그만두면 과연 할까 싶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을 따라 하루 종일 공부를 했다. 성적이 오르는 건 느껴지지 않았지만 반대로 떨어질까 봐 무서웠다. 수능이 가까워졌을 땐 8시부터 밤 12시까지 미친 듯이 자습을 했다.


수능 날 혜랑은 평소처럼 시험을 봤다.

평소처럼 문제를 풀었고, 평소처럼 시간 분배를 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평소와 같은 성적을 받을 것이다.

“마킹… 밀렸어… 영어… 9등급이야… 헉!! 꿈이네…’

하지만 공포감은 수능이 끝나고서도 사라지질 않았다. 성적표를 받기 직전까지 마킹 밀려 썼을까 봐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정말 끔찍하고 무서운 시간이었다. 공포에 질려 떨었던 덕분에 혜랑은 제법 괜찮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혜랑은 지금도 생각하곤 한다.

'만약 내가 다른 고등학교를 갔으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더 불행했을까? 궁금하다...'

그렇게 욕을 많이 했던 학교지만, 그 특유의 꽉 막힌 분위기 덕분에 좋은 대학교에 간 건 사실이었으니. 참으로 애증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 궁금할 뿐이야.'


혜랑은 여전히 삶을 충실히 산다.

충실히 산다는 건 뭘까?

혜랑의 기준에선 빈 시간 없이 빼곡하게 사는 거다.

그 기준으로 보면 혜랑은 자타공인 충실히 사는 사람이 맞다.


그럼 왜 혜랑은 충실히 사는 걸까?

그녀에겐 ‘공포’가 충실한 삶을 살게 만들어준 도구였다.

지금도 늘 불안에 떨며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사는 덕분에 여전히 최선을 다 해 살고 있다.


요즘도 공포 마케팅, FOMO증후군(Fear Of Missing Out)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본다.

인류가 최초로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생존 앞에서는 어떤 감정보다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다.

삶의 충실성은 꼭 어떤 특수하고 특별한 목표가 있어야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우리는 매일매일 생존을 위해 공포와 맞서 싸우고 있다.

'처음 보는 업무에서 오는 두려움'

'상사와의 마찰에서 오는 공포'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등 세상은 무섭고 두려운 것투성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이미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혜랑은 생각한다.

'이미 모두가 제 각자의 충실함을 살고 있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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