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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혜랑 Nov 17. 2022

동화, 예술, 결핍

나를 채우는 세 가지 단어

경계 없고 장르 없는 유일무이한 일을 하다 보면 나를 소개하기가 무척 애매하다. 그 고충은 이미 이전 글에 실컷 써놓았으니 그 얘기를 더 할 생각은 없다.

https://brunch.co.kr/@hyerang/97


'이야기와 예술로 작업하는 스토리 아티스트'가 나를 정체화 하는 한 문장이다.

이야기, 그중에서도 '동화'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것, '예술'은 내가 업으로 평생 해온 것,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더하자면, '결핍'을 더하고 싶다. 나는 결핍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이 세 가지 단어로 오늘은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동화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기억이 나는 시점부터 나는 동화책을 항상 쥐고 있었다. (사실은 그림책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만, 일단 그 그림책 안에 담긴 내용은 동화가 맞으니 동화라고 하겠다. 누누이 말하지만 그림책과 동화책은 교집합이지 합집합이 아니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동화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였다. 인어라는 존재가 주는 '환상성'과 결말이 주는 아련함이 너무나 좋았다. 원작도 좋았지만 디즈니판은 특히나 대단히 좋아했다. 원작이 채워주지 못했던 2%를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으로 채워준 마스터피스였다. 어린 혜랑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카타르시스 선사해주는 작품은 없었다. 덕분에 내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무려 '인어공주'였다.


지금도 나는 따옴표 안에 써둔 단어들을 환장하고 좋아한다. '환상', '권선징악', '해피엔딩'. 동화만이 가지고 있는 완전무결함을 사랑한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사랑하고 보고 들었던 동화 속 세상은 완벽함 그 자체였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 그 당연한 세계. 그 세계가 현실에는 없었다. 머리가 크는 만큼 배신감도 커졌다. 마치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현실이 팍팍할수록 오히려 더 동화 속 세계가 그리워졌다. 내가 수많은 문학 장르 중 동화를 쓰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이리라.


"저는 아이들이 백지상태로 태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백지상태에서 어른들이 쥐여주는 것들은 아주 옛날부터 내려왔던, 당연히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당연한 것들의 지혜를 합쳐놓은 동화 또는 설화라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들을 봐야 하는 이유는 인간성의 보존이랄까요. 인간이라면 지켜야 될 도리들이 동화 또는 설화에 담겨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소비가 되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현실이 그렇지 못할지언정, 그래도 아이들이 살면서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됐을 때 한 번쯤은 동화에서 봤던, 올바른 선택을 하면 좋겠는 거예요. 남의 것을 훔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사이좋게 잘 지내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되는 것. 이런 것들을 했으면 좋겠어요."

-2022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인터뷰 중-


내가 얼마 전 인터뷰 중 동화에 대해 털어놓았던 문장이다. 이것보다 더 정확한 문장을 찾기가 어려워 대신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계로 동화를 쓰는 동시에, 돌아가고 싶은 세계로 동화를 쓴다. 그리고 늘 동화 속 세상에서 쫓겨난 피터팬 같은 기분으로 현실을 보낸다. 어른과 어린이 어디에서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예술

그런 나에게 예술은 꽤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이젠 한 곳에서만 노는 게 싫어 놀이터를 여러 곳으로 넓혔다. 다양한 친구들도 생겼고 같이 놀면 더 재밌다는 것도 배웠다. 물론 혼자 노는 게 가장 속 편하지만. 어떤 단어 든 간에 예술이라는 말을 붙이면 어떤 행위도 용납되는 게 재밌다. 옛날부터 예술가들이 갈고닦아 놓은 '기인'의 이미지가 꽤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이미지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걸 요사이 심각하게 느꼈다. 코로나와 참사 앞에서 수많은 공연과 축제, 행사가 취소'당'했다. 예술은 금기와 같았다. 마치 해서는 안될 행위로 치부당했다. 왜 일까?


나는 이 의문을 해소하고 싶었다. 끊임없이 생각했다.

'왜 문화예술은 얻어맞는 존재가 되어야 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고정관념'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서야 겨우 생활예술, 일상예술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 이전까지 예술은 귀족문화이자 상류층 문화였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예술은 사치재이자, 향락과 여흥의 수단으로만 여겨지곤 했다. 나이 지긋한 분들께 예술은 곧 사치와 같은 단어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디지털이 발달하고 초고속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유례없는 격변기를 맞이했다. 기술발전으로 사람들은 재료 없이 그림을 그리고 악기 없이 음악을 만든다. 감히 만날 수도 없던 사람의 강의를 집에서 들을 수도 있고,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24시간 아무 때나 지금 당장 배울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생활 속 예술이 가능해진 시대가 됐다. 이게 얼마나 혁신적인 발전인가. 매번 감탄한다.


아마 지금 세대가 디지털을 경험한 첫 세대이자, 문화예술 평등을 누리는 첫 세대가 될 것이다. 그럼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도 차츰 사라질 거고, 우리는 생활 속에서 예술을 누리는 다양한 방법과 방식도 알게 될 거다. 예술이 사치재가 아니라 필수재로 여겨진다면 지금 문제들은 다 해결되리라. 그렇기 때문에 지금 예술가들이 더 지치지 않고 자기 예술을 하는 게 중요하다. 선례가 될 테니까. 내가 아이들에게 예술을 가르치는 이유도 삶 속의 예술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팍팍한 예술가의 삶이지만, 이 삶을 택한데는 후회가 없다. 오히려 못했으면 더 힘들었을걸. 버티고 견디고 즐겨보리라.



#결핍

예술에 대해 조금 더 고백해보자면 나에게 예술은 곧 '연극'이었다. 내 평생 단 하나의 꿈. 연극. 그리고 배우. 하지만 난 연극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내게 연극은 곧 결핍 그 자체다.

동화를 쓰면서 어린이의 세계는 가까워졌지만 연극을 잃어버리면서 어른의 세계와는 멀어졌다. 나는 늘 반쪽짜리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결핍이 날 항상 움직이게 만든다.

뿌리를 찾고 싶어 계속해서 움직인다. 여길 가면 뿌리를 박을 수 있을까, 저길 가면 뿌리를 박을 수 있을까 라는 갈급함이 자꾸만 쉴 새 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뿌리를 박으려고 땅을 파다가 파놓은 땅만 넓어졌다.

결핍을 잘 파악한다. 그건 굉장한 장점이다. 동시에 삶이 피곤해진다. 피곤한 삶이다. 다른 사람의 풍요도 잘 보지 않으려 한다. 내 결핍과 헷갈리니까.


나는 앞으로도 계속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찾아 메우기 위해 분명 애쓸 것이다. 이건 내 미래에 대한 예언이자 장엄한 고백이기도 하다. 채워지기는 할까, 아마 안될 테지만. 애는 써보려고.





글을 쓰면서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지금 이 세 가지 단어의 나열이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완벽히 표현해주고 있었다. '동화'가 준 과거의 기억이 나를 만들었고, 현재 나는 '예술'로 살아간다. 그리고 '결핍'으로 미래를 나아간다. 꽤나 뒤틀리고 재미있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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