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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혜랑 Jan 21. 2023

집정리를 했다.

남의 손을 빌려서

"청소의 목적은 단지 깨끗하게 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그 환경에서 사는 것에 행복을 느끼기 위함이기도 하다"

일본 최고의 정리정돈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의 말이다. 

정리정돈 전문가가 하는 말이니 맞는 말이겠지.


명언을 제외하더라도 청소의 중요성은 5살때부터 혼꾸녕이 나서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정말, 솔직히, 왜 이렇게 힘든 건지.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 밖에서 격무에 시달리고 돌아오면 집에선 뻗어버리기 일쑤. 집정리는 왜 이렇게 힘들까. 매일 가사노동에 헌신하는 분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내게는 약간의 저장강박도 있다. 물건을 버리려고 할 때마다 이 물건을 둘러싼 추억들이 자꾸 떠오르면서 쓰레기통으로 가는 손을 붙잡는다. 정말 괴롭다. 물건을 버리고도 그 기억들은 한참이나 나를 괴롭힌다. 어렸을 땐 울면서 도로 주워온 적도 있었다.

상실을 두려워하는 게 버리지 못하는 습관으로 나타나는 걸까.



한 집에 5년째 살다 보니 짐이 계속 늘어가고 있었다. 잘 버리지 못하는 데다 정리정돈도 잘하지 못하다 보니 집은 점점 내가 사는 곳이 아니라 짐이 사는 공간이 되고 있었다. 거기다 하는 일이 좀 많은가. 온갖 공연소품들과 기자재들로 방치되어 절반은 버리는 공간이 되고 있었다.


몸이 피곤하다 보니 대청소는 꿈도 못 꾸는 상황. 누군가 정리정돈을 대신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일을 해주는 곳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조차 막막했다. 있기는 한 걸까. 반쯤 포기하고 꾸역꾸역 지내던 중이었다. 마음이 답답해지면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어플만 뒤적뒤적.


그러다 문득 정리정돈에 관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Tvn 신박한 정리.

캡처를 보다 깜짝 놀랐다. 내가 찾고 있던 바로 그 회사. 새삶.

알게 된 그날 바로 견적요청을 드리고 빠른 회신을 받았다.




1. 견적을 받고 마음을 결정하기까지

견적서는 아주 꼼꼼했다. 어떤 서비스를 받는지, 어떤 절차로 일이 진행되는지를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가격... 홈페이지에도 나와있듯 평당 12만 원~ 으로 계산이 됐다. 꽤 높은 가격이었지만 가구정리에, 정리정돈에, 버림까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 가격은 납득이 되는 수준이었다.

상담해 주시는 분께서 어마어마하게 친절하셔서 편안하게 질문을 드릴 수 있어 좋았다. 

어쩌지, 망설이다가 이미 이 집에 정이 많이 든 상태라 이사 한번 갈 돈으로 새 집 만드는 셈 치기로 하고 시공을 결정했다.




2. 사전미팅

시공결정을 하고 나니 사전미팅이 있다고 했다. 시공 전에 일정을 잡고 팀장님이 직접 와주신다는 것.

사실 작업 전에 한번 먼저 현장을 보고 상담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와준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이 회사... 전문성과 체계성이 장난 아니네... 감탄했다. 누구보다 일처리를 합리적으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대표님을 영상으로 보긴 했지만 엄청 꼼꼼하고 프로페셔널한 느낌이 팍팍 났는데, 실제로 회사 운영도 그렇게 하고 계시는구나, 생각했다.

우리 집에 방문해주신건 2팀 팀장님. 보자마자 밝은 에너지와 친절함이 저절로 느껴지는 분이었다. 마음이 편하게 열려서 그런지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고민과 집에 대한 생각을 모두 술술 털어놓을 수 있었다.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약간의 세러피? 같다는? 생각? 어떤 상담보다 속 시원한 시간이었다.

2시간 만나 뵌 팀장님 인품에 반해버려서 무조건 믿고 따르기로 했다. 다시 한번 느끼는 인품의 중요성.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3. 시공당일

당일엔 4분의 선생님들께서 오셔서 집을 정리해 주셨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하필 이날이 코로나 격리 풀린 바로 다음날이었다. 일정을 미뤄야 하나, 계속 고민하다가 미루는 것도 실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진행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크게 후회했다. 생각보다 신경 쓸 일도 많고, 내가 직접 분류해야할 물건이 많았다. 아무거나 버리면 큰일나니까. 하지만 몸이 너무 아파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정말 죄송했다. 

"아휴, 많이 힘드시죠. 저도 걸려봐서 알아요. 너무 힘드시면 조금 쉬었다 하세요"

"가서 바람 좀 쐬다 오세요"

선생님들께서 나를 계속 안심시켜 주시면서 다독여주셨다. 그러면서도 내내 가구배치부터 물건 정리정돈까지 계속해서 논의하고 상의하면서 일을 진행시켜 갔다. 정말 전문성 최고... 나한테도 의견을 계속 물어보시면서 가장 합리적이고 최선의 동선과 가구배치를 찾기 위해 애쓰셨다. 다 완성된 모습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다.

정리정돈의 국가대표급. 최고. 돈이 한 푼도 아깝지 않았다. 2022년 최고의 소비라고 단언할 수 있다.


정리뿐만 아니라, 잘 버리지 못하는 나를 다독여주시면서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게 가장 큰 감동이자, 나 스스로 가질 수 있었던 변화의 시간이었다. 75L 2 봉지, 그 외에도 수많은 짐, 가구가 실려나가는 걸 봤다.

'버리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네.'

'나도 버릴 수 있겠다.'

그날 이후로 나는 꽤 용감히 물건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새 삶의 정리정돈은 내게 세러피였다.


최종 완성된 집은 내가 가지고 싶었던 집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짐이 많았던 관계로 시공시간이 늘어났지만 웃음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친절하게 잘 마무리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그날 밥, 지친 몸을 누이고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4. 그다음 날

정리된 집에서 하룻밤.

약간 사기 치는 것 같아 보일까 봐 무섭지만, 놀랍게도 아팠던 몸이 가벼워졌다. 이럴 수가?

엄마와 함께 비포애프터 사진을 보며 감탄하는 시간도 가졌다.

"티브이에 나오는 분은 이유가 있네"

엄마의 말에 웃으면서 동의했다.

큰 비용을 쓰긴 했지만 돈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대만족. 하루라도 더 빨리 할 걸 하는 후회만 생겼다.



꼭 특정업체의 시공을 받지 않더라도, 내 손으로 하더라도 한 번쯤 집정리, 청소를 해보는 건 어떨까.

집은 곧 나고 내가 곧 집이다. 내 마음과 꼭 닮은 집의 형상. 번잡하고 어지러웠던 모든 것이 깨끗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시공받은 지 2달이 지난 요즘도 우리 집은 아주 깨끗하다.

정리하는 법도 배웠고, 버리는 법도 배웠다.

재밌는 건 내 마음도 가벼워지고 있다는 거다.

관계의 정리, 일의 정리, 장래의 정리.

모든 걸 가뿐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집정리가 내게 준 선물 같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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