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 육아휴직을 하며, 꼭 하고 싶었던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이른바 '육아 휴직 버킷리스트'였는데, 해당 목록들은 이렇다.
1. 운전면허
2. 제주도 한 달 살기
3. 블로그 다시 시작하기
4. 제빵 배우기
결론적으로 11개월의 기간 동안 1,2,3번은 이뤘지만 4번은 이루지 못했다. 제빵을 왜 배워야 하는지 이유를 못 찾겠어서다. (근데 왜 적어두었을까.... ) 육아휴직 동안 이뤘던 일 중, 가장 뿌듯했던 것이 바로 제주도 한 달 살기였는데 아직도 가끔 첫째 아이가 제주도 여행의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나는 원래 제주도를 너무 좋아하기에 행복한 여행이었지만, 아이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1. 아이는 모래놀이를 좋아하는, 자연과 친해진 아이가 되었다.
첫째 아이는 아직도 밥을 먹을 때마다, 입 옆에 묻어있는 밥풀을 닦아달라고 한다. 그만큼 깔끔이 병인 친정엄마와 내가 깨끗하게 키워온지라 손, 발에 정체모를 무엇이 묻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 이유로 세 돌이 지나 부산 바다에 데리고 갔을 때에도 운동화에 모래가 묻는다며 바다에 들어가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던 아이였다. 아이를 너무 깔끔하게 키워서 그런 건지, 성향이 그런 건지 좀 더 자연스럽게 놀리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조금 걱정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바다에 매일 나가기 시작하자,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모래놀이도 해수욕장에 주저앉아서 각종 장난감들로 성을 쌓기도 하고, 모래를 뿌리며 나와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자연과 친해지기 시작하며 나의 '깔끔병'도 조금씩 옅어져 가고, 청결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기 시작했던 것 같다. 모래의 까끌거리는 느낌, 미역의 끈적끈적한 촉감, 소라게의 딱딱한 등을 만지며 지후의 모든 감각을 열어주고, 나부터 인위적인 장난감보다는 자연스러운 것들을 많이 접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순간들이었다.
2. 머슴밥을 먹는 아이가 되었다.
지후는 원래 밥을 잘 먹는 편이다. 심하게 편식하는 것도 없고 뭘 줘도 잘 먹는 아이인데, 제주도에 와서는 그야말로 포텐이 터졌었다. 아침과 저녁을 친정엄마와 집에서 해 먹었는데, 어떤 메뉴를 주든 아이는 정말 그 밥이 그 날의 첫끼인 것처럼 '맛있다'를 연발하며 많이도 먹어댔다. 덕분에 서울에 와서 보니, 몸무게가 역시나 1킬로 늘어있었다. 이 맘 때 아이들은 대부분 몸무게가 잘 늘지 않아 엄마의 애간장을 태우고, 이 시기의 1킬로란 어른의 5킬로와 비슷한 급이란 걸 감안하면 나에겐 엄청 큰 수확이었다.
제주도 재래시장에서 샀던 생선, 고기, 야채들로 요리를 하니 맛이 없을 수 없었고, 낯선 곳에 와서 기분도 좋으니 밥이 술술 넘어갔으리라. 모든 걸 잘 먹어줬던 지후와 모든 걸 몸속에서 흡수시키고 뼈와 살이 되게 해준 아이의 몸에게 너무 고마운 순간들이었다.
3. '제주도'를 아는 아이가 되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는 첫째 유치원에서 핫했다. 요즘에야 가시는 분들도 많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엄마 아빠의 회사와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한 달이나 시간을 뺀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을 잘 다녀왔냐고 묻는 어른들의 질문에 첫째의 대답은 여러 종류가 있다.
"제주도에는 화산이 펑~하고 터져서 돌에 구멍이 슝슝슝 하고 나있어요."
"비행기 타면 제주도에 갈 수 있고, 제주도 우리 집이 있어요." (아이는 숙소를 제주도 우리 집이라 표현했다.)
"제주도 가면 바다에 풍덩! 들어가고, 모래놀이도 할 수 있어요."
유행하는 헬로카봇의 종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캐릭터의 이름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머릿속에 있는 제주도에 대한 느낌, 기억, 추억들을 꺼내서 들어보는 것. 그 표현들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고 그 시간들을 같이 보냈음에 감사한 것. 이런 것들이 여행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벽 6시 반에 일어나서 저녁 8시 반이 되어서야 도착해 피곤에 절어있는 엄마에게 첫째 아이는 잠들기 전, 이렇게 속삭이며 내 목을 껴안고 잠들었다.
"엄마, 우리 내일 제주도 가서, 소라게도 잡고, 미역국도 따고 (미역을 줍는다는 걸 미역국을 딴다고 표현한다), 모래놀이도 하고 재미있게 놀자!"
지후야, 행복하게 기억해줘서 너무 고마워. 근데 내일은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어쩌지?
'손엠마의 워킹맘 이야기', '엄마의 에세이'가 더 궁금하신 분들은 블로그로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