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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씨 Apr 28. 2021

사먹이기 상

일상_02

우리 집의 청소년은 요즘은 "엄마가 시켜주는 것 중에 여긴 어떻고, 저긴 어떻고 이러쿵저러쿵~"이라고 의견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아기 때는 초인종이 울리면 "맘마 왔다"라며 뛰어나가고,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주말이 되면 "엄마 오늘은 뭐 시켜줄 거야?"라고 물어보는 게 일상이었다. 본의 아니게 각종 배달음식을 조기교육(?) 해온 탓이다. 우리 집에는 배달음식이 8할을 키운 아이들이 산다.

 이직을 여러 번 했지만 직장을 다니는 것을 놓아본 적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안일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아니, 가까이한 적이 있었나? 애초부터  '너무 먼 당신'이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살았고 결혼한 뒤에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뱃속 아이와 그와 함께 따라온 극심한 입덧 때문에 요리를 배우거나 해볼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남편도 요리에 취미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자주 시켜먹게 되었다. 엄마인 내가 해야 된다는 생각은 언제나 마음 한쪽에 숙제처럼 자리하고 있었지만 재료를 사서 다듬고 레시피대로 요리해서 내놓는 시간이 너무 길고 더뎠으며 들인 공에 비해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한마디로 나에게는 손맛이 없었다. 내가 만든 음식은 늘 극과 극이었다. 너무 간이 세거나 아예 간이 없거나.

 게다가 우리 부부는 늘 회사일로 바빴다. 수도권 외곽에서 도심으로의 출퇴근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아이를 맡기려고 친정이 있는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니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친정엄마는 늘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펴주었고 거의 살림도 다 해주셨다. 설거지는 물론, 청소에 빨래까지. 엄마 덕분에 그나마 그럭저럭 청결을 유지했다.

 나는 당시 바쁘게 돌아가는 신생 쇼핑몰에서 일하고 있었다. 밤 12시에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다가 중간에 차가 끊겨 택시를 타고 오는 것도 다반사였다. 남편은 남편대로 바빠서 한집에 살고 있어도 실제 마주하는 건 거의 주말뿐이었다. 일주일 동안 얼굴을 못 본 적도 흔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불어나는 것은 대출과 이자뿐인 나날들이었다. 100원을 벌어 100원을 쓸 수 있는 삶을 위해서라면 야근도 불사하고 최선을 다해 일했다. 그러니 겨우 주말이 되어서 녹초가 된 상태로 가족과 얼굴을 마주했을 때, 그 귀한 시간을 퀄리티도 안 나오는 요리를 한다고 써버릴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이도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각종 위기상황을 혼자의 힘으로 슬기롭게 헤쳐나가면서. 그래서 어느 날 학교에서 엄마에게 주는 상을 만들었을 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나지 않는 엄마의 장점도 순간 떠올리게 되었을 것이다. 안도의 숨과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수도. 고심한 아이의 머리 위로 '반짝' 하고 번개나 혹은 전구 모양 같은 이모티콘이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  해주는 것 없어도 잘 크고 있던 아이는 어떤 어려운 상황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바라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아이가 학교에서 만들어 온 상은 바로 "사먹이기 상"이었다. [우리 엄마는 주말에 거의 2~4번 사 먹였기 때문에 이 상을 드립니다] 디테일이 살아있으며 눈물까지 핑 돌게 하는 훌륭한 문구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이로부터 유일하게 받은 상이며 언제나 자랑하고픈 상이다. 게다가 나는 이 상을 받고 더 열심히 부흥해 지금도 배달의 민족으로써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이 상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열심히 사 먹이지 못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나는 잘하지 못하는 요리를 부단한 노력을 통해 일부러 잘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건강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타협하며 사 먹고 시켜먹을 것이다.  대신에 내가 잘하는 일을 더 잘하려고 한다. 그래야 내가 이 상을 수상한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얘야, 엄마의 좋은 점을 찾아주려고 노력해줘서 고마워."

 웃프다는 신조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언젠가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등록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에는 웃기기만 하거나 슬프기만 한 일보다 웃기고도 슬픈 일이 생각보다 참 많다. 웃픈 일상에서 나는 울기보다는 언제나 웃고 싶다. 울면 주저앉을 것 같지만 웃으면 견딜 수 있다.

아이에게 받은 유일한 상인, 사먹이기 상.
나는 두고두고 이 귀한 상을 자랑하며 웃을 거다.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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