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ing things done" (feat. 보따리, 김수자)
“도전하라,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하라.”
언젠가 뒤통수가 쨍하게 이거다 싶은 글귀가 있어 카톡 프로필에까지 올려 두었던 문구다. 정보가 워낙 이리저리 뒤섞이다 보니 어디서부터 나에게까지 흘러 들어온 메시지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나는 뒷심이 참 약한 사람이다. 뭐든지 시작은 그럭저럭 잘하는 편인데, 뒷심이 모자라니 뒤로 갈수록 점점 힘이 빠지면서 결국 마무리를 잘 못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게 없거나 적은 편이다. 한동안은 꼭 귀신에 씌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막판에 가서 다된 밥에 재를 뿌려대는 일도 참 잘하곤 했다.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들을 많이 하긴 했지만, 뭔가 내 안으로 마무리하고 갈무리하고 가둬두는 힘이 부족하다 보니 내 것이라고 할 만하게 성취해 온 것이 없다. 초 중년 내내 그런 경험들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나조차 내가 누구인지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고, 그렇게 한 곳에 뿌리를 내리거나 쌓아온 경력들이 없으니 주체적인 힘이 생기질 않아 결국 주변에 민폐를 꽤 오래도록 끼치는 삶을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주체적인 힘이란 경제력을 의미한다.)
보따리 하면 단연 김수자 작가의 보따리가 떠오르는데 그녀는 초기에 바느질 작품을 시작으로 오브제, 퍼포먼스, 조각, 영상, 장소 특정적 설치작품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며 작업을 한다. 작업의 주된 키워드는 여성, 정체성, 이동. 어쩌면 당시에는 지루하고 귀찮은 일상 과업 중 하나였을지도 모를, 엄마와의 이불보 꿰매기에서 시작된 그녀의 여정은 천을 모아 꿰매는 회화적 작업에서부터 보따리 오브제로, 보따리 오브제를 활용한 퍼포먼스와 영상으로 계속해서 심화, 확장되며 젠더, 사회문화, 나아가 전체적인 삶을 아우르고 연결시켜나가는 글로벌 한 작업활동으로 펼쳐져 나가고 있다.
그녀는 1990년대 초부터 '보따리' 연작을 시작했다. 보통 한국 가정에서 사용되는 이불보는 삶에 대한 이야기(즉, 사람들의 탄생, 죽음, 잠, 사랑, 고통, 꿈 등)가 발생하는 현장이다. 또 이런 이불보에는 예부터 사랑, 복, 행운, 장수 등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는 자수들을 정성껏 새겨 넣었다. 작가는 일반적으로 한국 여성의 가사노동과 연결되는 특수한 오브제를 국제적인 조형언어로 재정립시킨다. 결국 일상 속의 이야기들과 사회 문화적인 측면들은 바느질이라는 행위와 퍼포먼스를 통해 연결되고 통합되어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된다.
언제나 큰 보따리 하나를 완벽하게 쌀 생각만 하다 보니 온갖 것들이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기만 하고 정리가 안되어 있는 느낌. 끝내지 못한 일들 때문에 불안해지고 불안정해지는 느낌으로만 일상을 지낸다. 최근 미술치료 수업도 또 시작만 하고 아직 마무리를 못하고 있는 중인데, 다들 과연 미술치료가 되는 건가 하는 의문들이 많다. 어디가 목적지인지 명확한 판단 기준이 있기가 힘든 분야다 보니 상담자도 내담자도 대체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과정으로 느낀다. 이 의문에 대해 강의를 해주시는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주신 적이 있다. 하나하나의 수업이 작은 보따리가 되게 하라고, 한 수업 한 수업이 그 자체로 완성된 하나의 작은 보따리가 되도록 만들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게 만들면 된다고, 그렇게 작은 보따리들이 모이면 어느 새인가 나도 모르게 큰 보따리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치유나 치료의 과정은 사실 그렇게 단번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나, 일상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의 작고 간단한 목표를 정해 그것을 완성해나가는 습관을 들이면 그 완성된 작은 조각들이 모여 결국 큰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한다. 처음부터 완벽을 기대하다가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시작을 했다 하더라도 나의 허술함들에 좌절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니 완벽을 기대하지 말고 그냥 묵묵히 내가 정한 하루하루의 미션에 도전하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작한 그것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끝까지 마무리해보는 힘이다.
하루하루가, 한 주 한 주가, 또 한 달 한 달이... 작은 조각들이 될 수 있도록.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던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작은 보자기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무언가 시작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피드백하며(버릴 건 버리고 발전시킬 건 발전시키며) 매듭까지 꼼꼼히 묶어 놓으면 색이 고운 작은 보따리 하나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작은 보따리들이 하나둘씩 쌓이다 보면 어느 날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알록달록한 예쁜 보따리 길들, 내 삶의 길들이 영롱하게 이어져 있을지 모르겠다. 때때로 무엇이 들어있을지 기억나지 않는 보따리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선물처럼 풀어 나누고 새로운 것들을 얻어 또다시 매듭 지어가는 그런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