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자란 시골은 지천으로 들꽃이 피어 있었다. 집 앞에는 마을 할머니들이 심어놓은 예쁜 꽃들이 많아서 나비들이 많이 날아다녔다.
팔랑팔랑 얼마나 예쁜 몸짓으로 날아다니는지, 고요하고도 격렬한 그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한 편의 멋진 춤을 감상하는 듯하여 황홀했다.
내가 어릴 때는 방학 때 탐구생활이라는 숙제에 곤충채집도 있었는데, 나는 잠시 잡아보기만 할 뿐 금방 놓아주는 이상한 채집가였다.
희한한 건 예나 지금이나 동물은 무서워하면서도 어릴 때는 곤충 같은 것들은 곧잘 잡았다. 채 같은 도구도 필요 없이 손으로 다 잡았다. 여치나 메뚜기, 나비 같은 것들이 나의 주종목이었는데 처음에는 통 안에 넣어 두기도 했다. 너무 작고 여려 보여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아 살살 잡고 있으면 어느샌가 도망가버리고, 눌리지 않게 손안에 공간을 최대한으로 하고 있으면 손 안에서 움직이는 다리의 간지러움과 따가움에 화들짝 놀라 놓치기도 했다.
그중 제일 공격적인 건 의외로 잠자리였다. 손가락을 뱅글뱅글 잠자리 눈앞에서 돌리면 잠자리가 어지러워서 잘 잡힌다는 아빠의 말을 듣고(믿거나 말거나) 몇 번 시도해봤지만 생각처럼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한쪽 날개를 잡았는데 이놈들의 힘은 장난이 아니었다. 날개가 긴 탓에 움직임이 커 몸을 활처럼 휘면서 내 손가락을 따갑게 할켜쥐듯 잡거나 그래도 놓아주지 않으면 엄청난 파닥 거림으로 '이러다 얘들 날개가 찢어지거나 뜯어질 것 같은데' 하는 공포심을 줘서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람의 손을 타거나 통 안에 넣은 애들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곧 비실비실 힘이 없어지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통 안에서 공기가 부족해서 죽어가는 건 아닐까? 뭔가 다리를 절뚝이는 것 같은데 내가 실수로 다리를 잘못 잡았나?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며 죄책감에 놓아주게 되고 몇 번을 반복하다 그 후로는 습관처럼 잡기는 해도 잡았다가 바로 또 놓아주었다. 마치 포켓몬스터를 수집하는 것처럼 잡는 순간의 재미는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
하지만 나비는 나에게 이상한 소유욕을 불러일으켰다. 너무 예뻐서 갖고 싶었다.나는 꿈이 구만 가지쯤 되었는데 그중 하나는제2의 석주명이 되어 나비 그림을 그리고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표본을 만들 수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린 내 눈에 박제되어 있는 나비는 끔찍했다. 피투성이가 된 것도 아니고 살아있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 펼쳐져 있는데도 전혀 아름답지 않고, 핀이 꽂힌 모습은 왠지 내 팔이 찔린 것처럼 아프게 보였다.미라를 보면 이런 기분일까.
어린 내 손동작이 둔했을 텐데도 나비는 생각보다 잘 잡혔다. 꿀을 빨아먹고 있을 때를 노려서 그럴 수도 있겠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나는 나비를 참 귀찮게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나비가 날아다니는 게 예뻐서 잡아놓고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징그러운 모습에 실망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건 풀꽃뿐인가 보다. 나비는 멀리서 보아야 예뻤다.
'역시 나비는 날아다녀야 예쁘구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생기 있고 생동감이 넘쳐야 아름답다.나도 그렇다.(나태주 님 죄송)
그러면서도 나비가 날아다니는 걸 보면 방금 먹은 걸 잊어버리고 주는 대로 먹이를 계속 먹다가 배가 터져 죽는다는 금붕어처럼 또 잡아댔다.
그리고 관찰, 실망, 놓아줌의 반복.
또 놓아줄 걸 알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을수록 더 애가 타서 잡고 싶어 했다.
어른이 되어 연애를 하면서 문득 내가 나비를 잡을 때의 마음이 생각났다. 곁에 있을 때는 쉽게 실망하고 싫증을 내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거나 나를 떠나려는 시그널을 보내면 애가 타서 붙잡는 내 모습을 본 것이다. 몸만 어른이 되었을 뿐 나는 아직 아이였다. 다행히 그것을 관조하고 깨달은 나를 칭찬한다. 이제는 그런 거짓 감정에 놀아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그런 작은 것들만 탐을 낸 게 아니었다. 비가 오고 난 뒤 마당이 촉촉하게 젖어있을 때 아주 가끔씩 찾아오는 낯선 손님이 있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빛깔이 신비로웠고 꼬리가 길고 멋졌다. 하필이면 나 혼자 마당을 기웃거릴 때만 보이고 누군가를 부르면 유유히 날아가 사라져 버렸다. 지금 같으면 바로 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봤을 테지만 또 날아가 버릴까 봐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발만 동동거릴 뿐이었다. 나는 몇 번이나 그 새를 잡기 위해 철 양동이를 던졌으나 늘 실패했다.
아빠에게 말하니 아마 꿩이었을 거라 했다. 나는 아니라고 우겼다. 꿩을 보진 못했지만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런 흔한 새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새라서 일부러 내 앞에만 몰래 모습을 보이는 거라 여겼다.아이들이 그렇듯이그 시절나 역시도 내가 만든 동화 속에서는내가 주인공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나는 이상한데 곧잘 꽂히곤 했다. 어릴 때 한창 중국 영화가 유행할 때 하얀 날개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여자들이 너무 예뻐서 하얀 보자기만 보면 머리 위에 두르고 책상 위에 올라서서 뛰어내리고는 했다. 마음은 사뿐히 내려앉아야 되는데 몸은 항상 쿵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강시 영화를 한창 볼 때는 엄마 립스틱을 입술 중간에만 바르고 강시 옷을 사달라며 울고불고 떼를 썼다. 엄마는 대체 강시 옷을 어디서 사냐며 기가 차다했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라 더 말도 안 되는 땡깡이었다. 요즘은 할로윈데이도 있고 온갖 코스프레 복장이 다 있던데 웬만한 상상은 다 실현해볼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