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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21. 2019

별을 줍는 게 내 꿈이야

어릴 때 소원 중 하나가 별똥별을 는 것이었다. '구름 비행기 타고서 옛날이야기 들려주는 내 친구 은비 까비'가 들려준 '별아기'는 그 소원을 더 간절하게 만들었다. 밤이 되어 느닷없이 동네 개가 짖거나 무슨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우리 집 마당에 별아기 같은 별똥별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두근거렸다. 마왕별이 죽이기 전에 내가 구해줘야 하기 때문에 그 만화를 본 이후, 한동안은 빨리 잠이 들 수가 없었다.


만화에서는 별똥별이 땅으로 떨어지면 그대로 죽고, 바다로 떨어지면 사람이 된다고 했지만 우리 마을은 바다가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나 사람이 된다면 내가 구해주고 아니라면 별똥별은 내가 주우면 되니 어찌 되든 좋았다. 그때 나는 별똥별은 반짝이는 별이 떨어진 거니까 떨어진 운석도 계속 반짝반짝하는 줄 알았다.


그때는 집집마다 에어컨도 없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도로와 이어지는 큰길이 있었는데 더운 여름이 오면 저녁마다 마을 할머니들이 하나 둘 모여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할머니 손을 붙잡고 따라 나가 있으면 엄마는 감자나 옥수수를 삶아 가지고 나왔다.


그 시절 나는 할머니들 틈에 끼여  잘도 놀았다. 할머니들은 틈만 나면 10원짜리 뭉티기를 우리 집으로 들고 와서 민화투를 즐겼다. 난 할머니 다리 사이에 앉아 눈이 어두운 우리 할머니가 패를 못 찾고 있으면 훈수를 두고는 했다.

'쪼끄만기 뭐안다꼬 가만히 있으라'

할머니들이 구박을 해도 꿋꿋하게 할머니를 코치했다. 할머니는 늘 찰싹 달라붙어있는 나를 무척 귀여워하셨다. 귀가 우째 이리 이쁠꼬 하시며 귀를 자주 만져 주시던 게 생각나 그립다.(귀가 예쁘다니 정말 예쁜 구석이 없었나 보다)


할머니들은 한 손에 부채를 들고 모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해가 지고도 밖에 나가 놀 수 있는 그 시간이 새롭고 좋았다. 언니랑 옆집 친구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실컷 뛰어다니다 더워지면 할머니들 곁을 비집고 돗자리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때 바라본 하늘은 무척 아름다웠다. 가로등도 많이 없을 때라 그 시절의 별은 더욱 선명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도 많았지만 뒷목이 아파 아주 오래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편안히 누워서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별은 소리 없이 반짝이고 있지만 어찌나 반짝이는지 마치 소리가 나는듯했다.  이름을 잘 모르겠는데 어디선가 보았던, 얇은 유리인지 쇠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긴 막대들이 여러 개 달려있어 움직일 때마다 부딪쳐 촤르르르 예쁜 소리를 내던 어떤 것과 닮은 소리였다. 그 소리를 묘사하고 싶을 때마다 내 언어적 한계에 답답해져 온다. 어쨌든 그건 내가 상상한 별들의 노랫소리였고 누워서 별을 바라볼 때마다 그 천상의 소리를 머릿속 BGM으로 깔아 두었다. 방이 아닌 곳에서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건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무척이나 편안했다. 내가 자연의 일부인 듯 대지와 한 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송골송골 땀이 맺힌 얼굴을 할머니가 부채질해주면 살랑살랑 기분 좋은 바람결에 어느덧 까무룩 잠이 들었다. 할머니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시면 엄마는 나를 집으로 들어가자고 깨웠지만 비몽사몽 일어날 의지가 없었다. 엄마가 하는 수없이  곧 안아 들고 방에 눕혀줄 걸 알기 때문에.


 구만 가지 꿈 중 하나는 별이 예뻐서 이다음에 크면 천문학자가 되어야지 하는 것이었다. 그럼 실컷 별구경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가 배웠던 지구과학은 어려웠고 재미가 없었다. 난 천문학자는 될 수 없겠구나 싶었다. 별똥별은 대부분 바다에 떨어지고 웬만해서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다는 이야기는 나를 더 실망하게 했다. 클수록 별도 다 도망가버리고 빛을 잃었다. 그렇게 아주 오래 내 마음속 서랍 안에 조용히 넣어두었다.


그런데 2014년 대한민국이 운석으로 떠들썩했다. 경남 진주에 운석이 떨어져 발견됐다는 것이다. 운석 수집가들은 '로또 운석'을 찾으러 진주로 몰려갔다고 했다. 나도 일을 때려치우고 찾아 나서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운석은 예쁘지 않은 그냥 돌덩어리라 내 눈앞에 있어도 못 찾을 것 같았다. 운석을 찾은 사람들처럼 비닐하우스에 구멍을 뚫고 날아들어오지 않은 이상 말이다.


정부는 과학적 연구를 위해 운석을 사들이려 했지만 러시아 운석 가격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금액을 불렀고 소유자들은 팔지 않았다. 그리고 운석 발견이 화제가 되자 국외반출을 금지하는 법률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학술적, 교육적 가치를 생각해달라며 너무 경제적 가치에 집중되는 것이 안타깝다 했지만 소유자들에게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일부이지만 이미 땅이건 금이건 인간들은 그것을 돈으로 환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걸 보면서 옛날 생각이 났고 더 시시해졌다. 추억은 그냥 추억으로 미화시켜서 고이 모셔두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그래도 그 운석을 내가 발견해서 팔았다면 더 좋은 추억이 되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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