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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22. 2019

걷다가 새똥 맞을 확률

 아아아악! 또 내 신발에 똥 쌌어!!! 흐아아앙!!!!

 고래고래 악을 쓰며 발을 쿵쿵거리면서 울고 있으니 엄마가 나왔다.

 "괜찮다, 닦으면 되지"

 엄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신발에 묻은 제비 똥을 걸레로 쓰윽 문질렀다. 그래도 더러운 흔적은 문질러진 채 깨끗해지지 않았다.

 "안 닦이잖아! 내가 제비집 다 부셔버리라 했잖아! 벌써 몇 번이나 내 신발에 쌌는데!"

 "제비가 복을 준다 안 하나, 쟤들 겨울에 날아가고 집 없애놨는데도 와서 또 짓네, 여기가 좋은가 보다"

 이미 몇 번을 겪은 일이지만 새로 산 내 하얀 운동화에 똥을 쌌을 때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우리 마을은 한옥마을이다. 지금은 한옥의 매력에 푹 빠져 살지만 예전엔 한옥이 싫었다. 어릴 때라 언제부터인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마 밑에 제비가 날아와 집을 짓더니 몇 년째 내 신발에 똥을 싸 댔다. 에나멜 구두나 고무신처럼 매끈한 신발이라면 그나마 스윽 닦으면 되지만 운동화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제비가 날아오는 시즌이 되면 신발을 벗어두는 축담에 제비 똥 폭격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땐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알기 전이어서 그런지 복이고 뭐고 똥 싸는 제비가 너무 싫어서 "야! 다른 데로 가! 왜 자꾸 우리 집에 와!"하고 소리만 질러댔는데 제비는 그런 나를 무시하고 꿋꿋하게 날아왔다. 아빠는 제비집 바로 밑에 나무판자 같은 걸 붙여서 그나마 신발 위로 똥을 덜 싸게 만들었지만 이것들이 일부러 보란 듯이 날아 들어오며 싸는지 그래도 신발 위에 똥이 떨어져 있었다.


 "희한하네 니가 하도 못되게 굴어서 카는가, 하필 니 신발 위에만 자꾸 싸노"

 엄마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더 약이 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신발에 제일 많이 쌌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나를 약 올리려고 일부러 그랬나 싶을 만큼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비는 날아오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때를 추억하며 제비가 다시 날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제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때도 복을 줬었는지 똥만 줬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안 쫓아낼 테니 제발 다시 와서 나한테 복 좀 주라.






 사실 새 똥을 맞는 은 절대 흔한 일이 아니다. 제비가 내 신발 위에 그렇게 똥을 싸 댔지만 나를 직접 조준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체 모를 작은 똥은 몇 번 맞아봤다. 대학교 때 친한 동생이랑 걸어가다 벌인 지 뭔지 붕 하고 뭔가가 스쳐 날아가서 깜짝 놀랐는데 손위에 아주 작은 노란 무엇인가가 떨어져 있었다. 이거 뭐지 하면서 스윽 닦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냄새를 맡아보니 지독했다.

 "으악 이거 뭐야!"

 "뭐야 방금 그게 똥 싼 거야?"

 동생은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냐고, 어떻게 똥을 싸고 가냐고, 이렇게 개미 눈물만 한 똥 맞기도 힘들겠다며, 무튼 둘이서 신박한 경험에 엄청 웃었다.


 그러다 몇 년 후 본가에 가서 친동생과 예쁘게 핀 꽃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벌 같은 게 날아와 무서워서 움츠렸다. 자세히 보니 비슷하게 생겼지만 날갯짓이 엄청 빠르고 벌은 아닌 것 같은 처음 보는 희한한 생명체였다. 그놈도 내 주위를 몇 번 배회하더니 똥을 싸고 달아났다. 내 동생도 배를 잡고 웃었다. 사실 그전에 도시에서도 친동생과 길을 걷다 무엇인가 작은 것에 한 방 맞고 움찔 놀라 아무래도 내가 새똥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며 예전에 똥 맞은 얘기를 했줬었다. 요즘도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거나 하면 움찔 놀란다. 동생은 역시 재수가 없다며 낄낄거렸다. 왠지 보면 똥 싸고 싶어 지는 인간인가 보다며 계속 웃길래 머리끄덩이를 당겼다.


내가 꽃인 줄 알고 싸고 간 거야


 그러다 실제로 새똥을 맞게 된 사건이 있다. 몇 년 전 지금의 구 남친과 어느 산성을 따라 걸은 적이 있다. 한참을 콧노래 부르며 기분 좋게 산길을 따라 걷는데 푸드덕하고 뭔가가 우리 위를 날아올랐다. 순간 앗차 싶어 고개를 숙여 가슴팍을 보니 이놈이 작은 흔적을 뿌리고 갔다.

 "으악, 이거 뭐야! 똥 싸고 간 거야?!"

 "크크큭크큭, 뭐야 진짜 방금 새가 똥 싸고 간 거야?"

 "야! 방금 니가 그랬냐? 좋은 말 할 때 나와라! 아유 이거 그나마 작아서 다행이지 내 얼굴에 왕만 한 거 쌌으면 진짜 가만 안 뒀다"

 우리는 웃으면서 계속 가던 길을 갔다.


 "못 살아 정말. 재수도 없지, 어떻게 새똥을 맞냐. 대단하다. 나 같음 그냥 기분 잡쳐서 집에 갔다."

 "재수 없는 거 아니거든? 새똥 맞을 확률은 로또 확률이라 행운의 상징 이랬어. 난 행운의 여자야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나 좋은 일 생길 건가 봐. 그리고 나 사실 예전에 벌똥같이 조그만 거 많이 맞아 봤어."

 정말 사람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새똥 맞으면 재수 좋은 일이 생긴다는 얘기를 듣고 난 뒤에 맞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날은 정말 하루 종일 새똥 얘기를 하며 웃었다. 지금까지 내 옆에 꼭 붙어있지는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만든 게 '재수 좋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아직 큰 새똥은 맞아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길을 가다 인도 위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새똥을 보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하늘 높이에서 가속도가 붙어 더 크게 퍼지면서 떨어져서 그런지 어쩐 건지 그 범위를 보고 있노라면 이게 과연 새의 똥이 맞나, 익룡이 싸야 이 정도는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이것들은 몰려다니면서 싸는 건지 어느 한쪽에 집중적으로 싼 흔적이 많이 있다.

 '이러다 정말 길 가던 사람이 맞을 수도 있겠구나, 수업 가다가 갑자기 이런 큰 똥 맞으면 어떻게 해야 되지? 집으로 가서 씻고 가야 되나? 그 몰골로 버스나 택시는 어떻게 타지?'

 이런 쓸데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걱정을 하게 된다. 생각보다 곳곳에 새똥 흔적들이 많다. 너무 어마어마한 크기의 새똥은 두렵지만, 나는 혹시나 또 새똥을 맞게 되더라도 생각할 것이다.


오늘 좋은 일 생기려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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