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령 Jul 08. 2019

하혈까지 하면서 일해야 돼?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다리를 타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생리가 끝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헛! 이거 뭐야, 설마 또 하는 거야?'

 평소 주기 맞는 편은 아니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많고 묽은 양이 주르륵 흐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많은 양이 계속 흘러내렸다. 생리대를 했는데 아무리 봐도 생리 느낌은 아니었다. 겁이 났다.

 '또 병원 가야 되는 거야?'

 

 이번에는 가는 김에 자궁경부암 무료 검진까지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토요일이라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자궁경부암은 미리 전화를 하고 가야 된다고 적혀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당일에 바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냥 검진이나 받을 생각으로 병원에 도착했더니 다행히 오늘은 조금만 기다리면 여자 쌤에게 검진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잠시 후 안으로 들어갔고 여자 쌤이라는 것과 두 번째 앉는 굴욕 의자라 그런지 그나마 덜 수치스러웠다.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하혈이라고 했다. 대부분이 스트레스 때문인 경우가 많고 호르몬 약을 지금 처방해줄 수도 있지만 경과를 좀 더 지켜보고 그때 돼서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래,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지 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경우가 많으니 다음 생리일이 지나고 또 반복되면 다시 오라고 했다.

 "보니까 자궁경부암 검진 대상자시던데 온 김에 검진받아보시겠어요?"

 럭키! 아까 접수처에서 전화받을 때는 당일에 바로 안된다 했지만 난 온 김에 같이 할 수 있었다. 다시 오지 않아도 된다는 게 더 좋았다.


 자궁경부암 검사를 끝내고 정확한 결과는 일주일 정도 뒤에 집으로 보내준다고 하셨다. 지금 초음파 검사를 했을 때는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이고 자궁이 깨끗하다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평소에 내가 친구들에게 한 번씩 자궁 왼쪽 부분, 뭔가 나팔관 있는 쪽이 아주 미세하게 찌릿찌릿한 느낌이 든다고 하면 빨리 병원이나 가보라고 다들 극성이었는데 그런 것도 배란이 되는 걸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아주 둔감하지는 않나 보다.


 나는 사무실에 출근하는 날 일에 압박을 받을 때마다

 "나 스트레스 주지 마요. 하혈까지 했다고요."

 하며 큰 병이라도 얻은 듯이 생색을 냈다. 그러자 팀장이 말했다.

 "나도 가끔씩 그래요. 오늘도 회의 중에 이상해서 화장실 가보니 하혈하더라고요."

 쩝.

 얘기를 해보니 지인들 중에도 이런 경험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더 놀랐다. 나는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 무섭고 놀랐는데 흔한 일상처럼 얘기하는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의학기술은 발전하고 건강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는 시대지만 아픈 사람은 점점 늘어가는 아이러니.

 아이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아직 늙은 몸이 아닌 20대 젊은 청춘일 때부터도 피로는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우리 사회. 결코 당연하지 않다. 강할수록 몸도 날아갈 듯 가볍게 느껴져야 한다.

 

 우리는 일하느라 영양가 없고 칼로리 높은 간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거나 폭식을 하며 돈을 번다. 그렇게 받은 월급으로 다시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 보조제나 운동하는데 돈을 쓴다. 이런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소비를 언제까지 해야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산부인과 굴욕 의자에 앉아보셨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