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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l 17. 2019

공과 팽이의 사랑 이야기-지극히 현실적인 사랑

 팽이와 공이 한집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팽이는 공에게 프러포즈를 하는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다음날 주인 남자아이가 팽이에 알록달록 색칠을 하고 가운데에 번쩍번쩍 빛나는 놋쇠 못도 박았다. 한층 멋있어진 팽이는 빙글빙글 돌며 공 아가씨에게 다시 프러포즈를 한다. 요즘 같아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저돌적인 스타일이다.


 하지만 공은 자신의 엄마값비싼 모로코 가죽신이었고, 자신의 몸에는 스페인 귀족의 코르크가 들어있다며 팽이를 비웃다. 

 팽이는 자신도 마호가니라는 좋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유명한 장군이 자신을 직접 돌린 적도 있다며 어필했다. 공은 순간 눈을 반짝이며 정말이냐고 묻지만 청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허영심이 많고 콧대 높은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런 애들이 의외로 순진하다. 공은 제비를 좋아하는데 제비랑 약혼한 거나 다름없다고 믿는다. 자신이 하늘로 튀어 오를 때마다 제비도 둥지밖에 얼굴을 내밀고 '당신이오?' 하고 다정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매너남일 뿐인데 조금만 잘해줘도 자신에게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 묻는 전형적인 헛다리녀다.


 그래도 팽이의 사랑은 오래오래 기억해주겠다며 거만하게 말한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랑의 열병을 앓는 당사자에게는 안개처럼 보인다는 걸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이는 여러 가지 해석을 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정중한 거절인가? 아냐, 그래도 희망이 있어. 예전엔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나를 오래오래 기억해주겠다잖아? 점점 나에게 마음을 열지도 몰라. 제비랑 결혼도 아니고 약혼한 사이인데 뭐. 원래 식장에 들어가기까진 모를 일이야. 결혼하고도 이혼하는 판에.'

 이렇게 자신이 까인 건지도 모르고 헛된 희망을 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아이가 공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만 저 멀리 튕겨 날아가 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팽이는 공이 제비에게 가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공이 보고 싶었고, 사랑은 더 깊어져 갔다. 마음속에서는 점점 더 아름다운 아가씨가 되어 갔다.


 그러고 몇 년이 지난 후, 팽이도 낡고 녹슬어 버렸는데 주인 남자아이가 이번엔 팽이의 몸을 번쩍 거리는 황금색으로 칠해주어 빛나는 황금 팽이가 되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팽이는 너무나 멋져 보였다.


 하루는 팽이가 너무 높게 어올랐는데 떨어지고 보니 쓰레기통이었다. 나도 이제 이렇게 쓰레기처럼 다시 볼품없게 되겠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쭈글쭈글한 사과처럼 생긴 물건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건 사과가 아닌 자신이 좋아했던 공이었다.


 공은 이런 곳에서 이렇게 멋쟁이 신사를 만났다며 주절주절 자신의 예뻤던 리즈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팽이는 얘기를 들을수록 자신이 사랑했던 공이란 걸 분명히 알 수 있었지만 자신이 팽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때 하인이 쓰레기통을 치우다가 황금 팽이를 발견하고 주인 아이에게 돌려준다. 하지만 그 후로 아무도 공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했는데 팽이가 자기 옛사랑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쓰레기통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이 아주 초라한 모습이었다면 누가 아는 척을 할 수 있었겠어요?

 

  안데르센다운 시니컬만 결말이다. 그렇게 좋아할 땐 언제고, 모르쇠라니. 역시 사랑이란 헛된 마음을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었던 걸까. 마치 첫사랑은 마음속에 간직한 채로 놔두는 게 가장 아름답다는, 뭐 그런 말이 생각나는 이야기다.

 결국 겉모습에 반했던 것이라 그 겉모습에 환상이 완전히 깨져버렸을 때 더 크게 실망한 것이다. 아이들이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만약에 ○○이 반에 엄청 멋있고 잘생긴 친구가 있어서 좋아하게 됐어.

-잘생긴 친구 없어요!

-만약에 말이야, 나중에 그런 친구가 생겼어. 그런데 학교도 달라지고 클수록 못 만나는 거야. 그러다 어른이 돼서 '아, 그때 ○○이 엄청 멋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잘생겼겠지? 걔랑 결혼하고 싶다.' 하면서 보고 싶어 했는데 어느 날, 딱 만나게 된 거야. 근데 그 친구가 엄청 못생겨졌어. 그럼 그 친구랑 결혼할 거야?

-전 남자랑 결혼 안 할 거예요. 여자랑 살 거예요. 아기 낳기 싫어요!


 쩝. 요점이 자꾸 빗나간다. 요즘 애들은 요나이때는 이성에 대한 거부감도 잘 없던데 아닌 아이들도 있구나 싶다. 보통은 고학년이 되면서 내외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면 그것도 학교마다 분위기를 타는 듯하다. 아직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군중심리를 가지고 있다. 친구들이 이성을 꺼리는 학교 분위기에선 같이 꺼려하고, 교제가 많은 학교에서는 스킨십을 일부러 부추기기도 하면서 좋아하는 티를 맘껏 내기도 한다.

 

 신분이나 겉모습은 영원하지 않니 너무 그런 것들만 보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하는데 이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을 가로막는 것이다. 누구나 예쁘고 멋진 걸 좋아하기 마련이니까. 아이들은 특히나 더 심하다. 심지어 게임 말 하나를 고를 때도 못생긴 거 싫어요, 난 예쁜 걸로 할래요 하고 고르기 마련이다. 친구도 예뻐야 더 좋아한다.


 같이 일하는 쌤의 아들은 다섯 살인데 친한 여자아이가 있어서 '○○이랑 노는 거 좋아?' 하고 물으면 '응, 좋아' 하는 반면, 최근에 사귄 누가 봐도 예쁜 여자 친구의 이름을 말하면서 물어볼 때는 '○○이...' 하고 이름만 말해도 씨익 하며 입이 귀까지 걸린다고 한다.


 1학년 수업이라 그냥 심플하게, 마지막 쓰기는 공이나 팽이에게 친구 사귀는 법을 가르쳐 주는 편지 쓰기를 하는 것인데 쉽지 않다. 최대한 내 생각을 심지 않으려고 자유롭게 쓰라고 하면서도 너무 겉모습만 보지 말라는 느낌을 에둘러 어필하는 내가 우습다.

 사실 어릴수록 세뇌가 더 힘들기도 하다. '그래도 난 예쁜 친구가 좋아요' 하고 꿋꿋하고 뚝심 있는 어린이들이 많다.


 기억에 남은 것이 편지 쓰기에

 '팽이야, 쭈글쭈글해진 공에 바람을 넣어서 다시 만나.'

하고 끝까지 겉모습을 중요시하는 친구도 있었다.

 

 "맞아, 쌤도 예쁜 거 좋아해. 그런데 엄청 예쁘고 멋있는 친구가 '야, 난 예쁘니까 이거 내가 먼저 할래. 이건 다 내가 할 거야.' 그러면서 매일 잘난척하고 양보도 안 해주면, 그래도 예쁘니까 좋아할 거야? 쌤은 왠지 싫을 거 같아."

 

 그래도 절대 한 방향으로 치우칠 수는 없고, 현실의 냉혹함(?)도 알아야 하기에 꼭 덧붙인다.


 "그래도 예쁘고 멋있으면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양보도 잘하고 배려도 잘하면서 항상 단정하게 다니면 더 좋겠지?

 

 하지만 어딜 가나 의외의 인물은 꼭 있다.

 한 친구에게 '○○이는 친구 사귈 때 어떻게 해? 예쁘고 멋진 친구가 좋아?' 하고 물으니 엄청 정색을 하며,


 "전 친구 얼굴 못생겨도 다 사귀어요. 여행 갔을 때 외국인한테도 안녕? 하고 먼저 말 걸고, 오늘도 엘리베이터에서 아저씨랑 사귀었다고요. 먼저 인사하고 말 걸면 친구 엄청 많이 사귀어서 저 친구 몇백 명은 돼요. 저 친구 엄청 많아서 좋은 게 많아요"


 "와~ 대단한데? 근데 친구 엄청 많이 사귀면 뭐가 좋아?"


 먹을 거 많이 줘요. 요구르트 아줌마도 내가 두 살 때부터 인사해서 맛있는 거 많이 줘요


 이 구역의 진정한 '인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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