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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pr 25. 2024

채근담 이야기 2

차라리 소박하고 소탈하라


채근담 2장입니다.


涉世淺이면 點染亦淺이요

세상살이 경험이 적으면 그만큼 때묻음도 적으나

歷事深이면 機械亦深이라.

세상일에 경험이 많은 사람은 잔꾀나 권모술수도 많다.

君子

그러므로 군자는

與其練達로는 不若朴魯하고

세상일에 숙달하기보다는 도리어 소박한 편이 낫고

與其曲謹으로는 不若疎狂이니라.

자잘한 예절에 얽애임보다는 도리어 소탈하고 꾸밈이 없는 편이 낫다.

 

이 글에서 몇 단어의 의미가 조금 막힐 듯합니다. 먼저 역사(歷事)를 볼까요. 여기에는 대대로 임금을 섬긴다, 살아오면서 쌓은 경력, 그리고 세상일에 대한 경험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전체 문맥상 가장 마지막 세상일에 대한 경험이 가장 무난할 듯합니다.


그리고 기계(機械) 이 단어가 해석하는데 상당히 낯설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기계 machine는 흔히 인력을 쓰지 않고 자연의 원동력을 이용하여 어떤 일을 하는 장치를 말하지요.


그런데

기계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교묘한 구조의 기구. 교묘한 꾀. 거짓. 남을 속이는 잔재주. 교사(巧詐). 권모술수. 작업을 하도록 만들어진 기구. 병기의 총칭. 판에 박은 듯한 사람. 기교. 허위.' 등 참으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작업을 하도록 만들어진 기구가 현대인들이 이해하는 기계에 가장 가까운 의미가 되겠네요. 하지만 채근담에서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기계(機械)가 등장하는 출전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장자(莊子)의 천지편(天地篇)에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시골길로 여행가다가 동이로 물을 파다가 밭에 대는 노인을 만납니다. 그 노인에게 '기계'를 사용하여 물을 푸면 빠르지 않냐고 하니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자신의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했지요.



" 스승님 왈,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꾀하는 일이 생기게 되고, 꾀하는 일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꾀하는 마음이 생기고, 꾀하는 마음이 가슴에 차 있으면 순박함이 없어지고, 순박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면 정신과 생명이 불안정하게 되고,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도가 깃들지 않게 된다고 했소."


有機械者心有機事, 有機事者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 則純白不備, 純白不備, 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그리고 회남자(淮南子)에


거짓되고 남을 속이는 마음을 가슴속에 품는다.


機械之心藏於胸中


등으로 볼 때 기계는 권모술수나 잔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한문을 공부하다 보면 너무나 많이 만나는 단어가 군자(君子)인데 군자의 의미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덕행이 높고 학문이 뛰어난 사람, 이익을 보고도 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으로 본성을 그대로 지키고 실현하여 인의예지에 맞게 사는 사람, 학문적 소양과 덕을 갖춘 사람 등입니다. 그리고 유교에서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성인'을 일컫는 입니다. 중국 춘추 전국 시대때에는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을 부르는 말로도 쓰였고 아내가 남편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했지요. 예기(禮記)》〈곡례편(曲禮)〉에 따르면 군자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선한 행동에 힘쓰면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고 하였으며,  논어(論語) 〈이인편(里仁)〉에는 '군자는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잘 알고, 소인은 어떤 것이 이익인지 잘 안다. 군자는 어찌하면 훌륭한 덕을 갖출까 생각하고, 소인은 어찌하면 편히 살 것인가 생각한다'는 말로 군자를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박로(朴魯)는 '질박하고 노둔함. 순박하고 어리석음, 우직함. 어리석고 고지식함, 소박해서 꾸밈이 없고 정직한 것' 등을 의미하고


곡근(曲謹)은  예의바르고 겸손한 것보다는 지나치게 신중하고 조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소광(疎狂)= 소홀하고 거칠음, 덜렁대며 상규에 벗어나는 일, 소탈하여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 소탈하고 뜻이 커서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등을 의미하는데 간단히 말해 소탈한 사람 또는 그런 행동으로 보면 무난하겠지요.  


   


현직에 있을 때 정말 예의가 바르고 매사에 철저한 동료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노력을 많이 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함께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정말 말씀도 조심해서 예의를 갖추어 말하는데,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불편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무엇 하나 나무랄데 없는 훌륭한 분이셨지만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을 힘들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뭔가 지적할 때는 그 말씀 중 하나도 틀린 것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일정 거리를 띄우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 동료를 향해 제가 뭔가 충고하려 해도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그 동료에게 충고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언감생심이었지요.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맑으면 무리가 없다는 말도 있지요. 사람이 어느 정도 빈구석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세상일에 너무 숙달된 사람보다 어딘가 모자란 데가 조금 있고 소박하고 소탈한 사람이 남들에게 훨씬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긴 세월 살다 보면 세상일에 너무 똑똑한 사람은 자기 성정에 못 이겨 그 삶이 참 피곤하게 되는 것 같더군요. 그런 분들 중에 최악은 자신에게는 참으로 관대하고 남에게는 너무나 잔인할 정도로 가혹한 경우입니다. 그것도 자신이 똑똑하다고 과신하기에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지요. 물론 일부러 모자라거나 멍청하게 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쨌든 남들이 보기에 조금은 빈구석도 있고 어딘가 어리숙한 듯하는 사람이 오히려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으로 보이더군요. 그냥 제 생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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