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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Sep 01. 2024

큰 아~ 니가 잘 하이 그렇지

오랜만에 집에 다니러 온 큰아들과 대화하다가

한 달 전에 따로 소형 아파트를 구입하여 독립한 큰아들이 잠깐 들리러 왔습니다. 온 김에 안방 TV랑 책장과 서랍 정리, 그리고 책상 조립, 장서 폐기 등 바쁘게 집안일을 해치웁니다. 워낙 정리를 잘 하는 아들이라 그야말로 순식간에 집안이 깨끗해집니다. 아내가 슬쩍 슬쩍 저를 놀립니다. 큰아들은 저렇게 재빠르게 처리하는데 당신은 왜 그리 늑장 부리냐고 말이지요. 저도 열심히 했지만 그래도 큰아들에 비해서는 속도가 영 안 나네요. 피아노와 대형 침대 이동은 다음 주 금요일 밤에 내려오는 막내아들과 함께 하자고 미뤘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내가 우리들을 위해 준비한 냉면을 내놓습니다. 큰아들이 워낙 면 종류를 좋아합니다. 하루 종일 국수만 먹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큰아들이 제 살림에 쓰려고 냉장고 이곳저곳을 찾아 필요한 것들을 챙깁니다. 아내가 한소리합니다.


"야~야~, 아들 니는 꼭 시집간 딸이 와서 살림 챙겨 가는 것 같다. 지난 번에는 양념해 둔 간장을 한가득 가져가더니 오늘은 또 뭘 그리 마이 챙겨 가노?"


그렇게 말해 놓고도 아내는 이것저것 많이 챙겨서 넣어줍니다. 그리고 아내와 딸 그리고 저랑 큰아들 이렇게 넷이서 식탁에 둘러 앉아 시원한 냉면을 먹습니다. 참으로 맛이 좋습니다. 저는 평소 냉면을 자주 먹진 않지만 그래도 아내가 만들어 준 냉면은 맛있게 잘 먹지요. 큰아들이 최근 혼자살이에 대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 줍니다. 옆집에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 노년세대라 큰아들 혼자 사는 것을 신기해 하면서 살갑게 맞이해준다고 하네요. 하기야 우리집 큰아들은 성격이 순하고 여유롭고 어른들께 공손하여 호평을 받기에 충분히 짐작이 가지요. 식사도 혼자 잘 챙겨 먹는다고 하지만 아내는 신경이 많이 쓰이는가 봅니다. 혼자 내보내 독립시키면 결혼을 빨리 한다고 주위에서 말하기에 내심 기대하고 보냈는데, 혼자 생활하는 것이 지극히 편하고 좋다니 저와 아내의 작전은 일단 실패한 것 같네요.


제 책상 위에 책들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집을 나서는 큰아들과 차안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그리고 뜨문뜨문 대화를 나눕니다. 제가 먼저 화제를 꺼냈습니다. 


"야~야~, 요 며칠 전에 어디 모임 갔다가 어느 지인께서 우리집 3남매를 참 이쁘게 보더라. 참하게 키웠다고 칭찬도 하고 그랬지. 그리고 나한테 물어보더라. '느그 집 아이들 3남매는 싸우지 않고 효성이 그렇게 대단하다며.' 그래서 나도 우리집 아이들 3남매 얼라 때부터 우애도 깊고 싸움이라곤 거의 하지 않았던 같다고 답했지. 큰아~가 생각해도 3남매 싸운 기억이 거의 없지?"


그러자 큰아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답합니다. 


"그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나 동생들이 특별히 갈등할 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셋이 모이면 갈등보다는 재미있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아버지 어머니께서 우리들 3남매를 너무나 아껴 주셔서 그런 거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들 싸움이나 갈등을 따지고 보면 결국 부모님 갈등이 근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이 매일 술 마시고 집에 와서 부인과 아이들 폭력을 하면 정서적으로 갈등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형제자매들 갈등 심한 이유가 뭐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금전 때문에 많이 그럴 것 같기도 하고, 형제간 차별, 질투 들도 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린 그런 경험이 별로 없어 가끔은 도대체 뭐 때문에 싸울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집 3남매 사이가 좋은 것은 뭐니뭐니 해도 큰아~ 니가 성품이 부드럽고 여유있어서 동생들한데 잘 하이 그렇지. 그렇다고 봐. 동생들한테 워낙 잘 해주잖아. 장남이 그렇게 잘해 주는데 동생들이 웬만하면 수긍하고 따르지 않을까. 큰아~ 니가 내캉 엄마에게 효도를 잘 해서 동생들도 그걸 보고 배우는 것 같고. 우리는 큰아~ 니한테 참말로 고맙지."


저는 큰아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는데, 아들은 제 말을 듣고 쑥스러워합니다.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단 한번도 저에게 대든다든지, 큰소리를 내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항상 저와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주려고 애썼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것이 오히려 장남 컴플렉스가 되지 않을까 신경도 쓰였지만, 어쨌든 우리 큰아들은 진짜 효성이 지극하였습니다. 저와 아내는 부모로서 결코 잘 해주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지원도 못 해주고 살갑게 대해 주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큰아들은 늘 우리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기쁘게 해주었지요. 그건 언제까지나 고맙게 생각하려 합니다. 


이제 30대 중반이 되어 결혼 언제 할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결국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괜히 불필요하게 신경쓸까 봐 그랬지요. 언젠가 아들과 둘이 앉아 부자간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떼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야~야, 언젠가는 우리 둘이 갈등이 생길 때가 올 거다. 무슨 일이건 분명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난 그런 순간이 오면 무조건 큰아~ 니 판단을 존중하려 한다. 인제 우리집은 큰아~ 니가 맡아야 한다. 난 절대로 큰아~ 니한테 이길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한테 큰아~니가 해준 것만으로도 진짜 고맙다. 지금 내가 하는 말 절대 빈말 아이다."


그날 왜 그리 심각한 말을 해서 큰아들을 난처하게 만들었을까요. 술 한 잔 마신 김에 술에 기대어 그렇게 했겠지요. 


참! 갑자기 오래 전에 들었던 어느 지인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15년 쯤 되었을까요. 그집 아들 형제가 하도 공부를 안 하고 말썽만 피우기에 너무 화가 나서 옷걸이를 통째로 들고 아들 형제에게 폭력행사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분께선 당신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랬을까를 반복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합리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강요하기에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선배님, 앞으로 그렇게 자식들에게 폭력행사하면 큰일 납니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자식이 어려서 선배님의 폭력이 두려워 가만히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이상으로 선배님이 자식들에게 당합니다. 진짜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들도 언젠가는 장성하고 어른이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러가면 선배님도 노쇠하여 자식들에게 의존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때 아이들이 당했던 폭력을 그대로 되갚을 가능성이 매우 커집니다. 설마 내 자식, 내 아들이 그렇게 할 리가 있나 하시겠지만. 폭력의 후유증은 참으로 크답니다. 앞으로는 자식들에게 폭력, 폭언 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자식이 늙은 부모를 학대하는 사례를 보면 결국 그 부모로부터 당하거나 배운 것을 따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아이들에게 폭력행사하신 거 진심으로 정면으로 사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선배님께서 그렇게 하셨는지 않았는지 확인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부모 자식 간 소통 방법에 무슨 왕도가 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또 노력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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