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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칼럼] "소중한 사람일수록 선을 지켜야 한다."

by 길엽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중에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있고, 한동안 가까이 지내다 멀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특별히 화려하거나 눈에 띄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조용히, 은은하게 우리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결코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상대방의 사생활을 함부로 캐묻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친해도 묻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끄집어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고, 내 기준과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이 힘들어할 때 적절한 거리에서 지켜봐 주고, 도움을 요청할 때 다가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꾸 선을 넘는다. 그들이 선이 어디인지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 다만 그 선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 수고를 들이는 대신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선을 지키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고 점검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지금 내가 묻는 질문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예의를 지키는 것 이상의 일이다. 상대방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온전히 존중한다는 의미이다. 상대방도 나처럼 고유한 감정과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내면에는 나조차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성역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존중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몸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기에 많은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쉬운 길을 택한다. "우리 사이에 뭐가 그렇게 중요해"라며 선을 넘는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며 간섭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며 자신의 무례함을 정당화한다.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왜 그래"라며 상대방의 불편함을 무시한다. 그들은 관계의 편안함을 핑계로 존중의 의무를 저버린다. 친밀함과 무례함을 혼동한다. 솔직함과 상처 주기를 구분하지 못한다.


반면 선을 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아무리 친해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오래 알았어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관계의 깊이와 무례함의 허용 범위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매 순간 자신을 절제하고, 상대방의 경계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쏟는 에너지이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그들 앞에서는 내가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언가를 숨기거나 방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 약점을 이용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았다는 경험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과, 선을 넘는 것이 관계의 친밀함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진정한 존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고, 후자는 편안함과 무례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관계를 오래도록 건강하게 유지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결국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정작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순간 선을 넘는다. 처음에는 작은 것들이다. 지나치게 사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부탁하지도 않은 조언을 늘어놓거나, 내 일에 과도하게 참견하거나,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한다. 그러다 점점 그 선 넘기가 습관이 되고, 어느새 우리는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함께 있는 것이 즐겁기보다 조심스러워진다. 자연스럽기보다 방어적이 된다. 그리고 서서히 거리를 두게 된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과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도 편안하다. 오래 만나지 못해도 다시 만나면 예전 그대로이다. 그들과는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들 앞에서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있으면 된다. 이런 관계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선을 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시간과 공간과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속도를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고, 자신의 기준을 내려놓고,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선을 넘지 않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는 평생을 함께해야 할 소중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나와의 관계를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은 나를 존중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절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지혜이다. 그런 사람을 지켜내는 것은 책임이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상대방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람,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많은 에너지가 든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에너지를 쏟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를 위해 똑같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결국 관계는 거울이다. 내가 상대방의 선을 존중하면, 상대방도 나의 선을 존중한다. 내가 상대방을 배려하면, 상대방도 나를 배려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면, 상대방도 나에게 안전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 그것이 진정한 관계이다.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와의 관계를 소중히 가꾸어야 한다. 그에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생은 짧고,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은 많지 않다. 선을 넘지 않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평생의 보물이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은 풍요롭고, 평화롭고, 의미 있다. 그들을 평생 소중히 간직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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