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입국심사도 따로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콩알이에게 듣긴 했지만 직접 겪으니 마냥 좋았다. 입국심사 직전의 긴장감을 안 겪어도 되니까! 공항과 연결된 기차역 표지판을 보고 방향을 잡았지만 왠지 불안했다. 이렇게 온전히 혼자 외국에 나와 있다는 게 나를 더 소심하게, 주눅 들게 했다. 보냉박스에 있던 음식을 여행가방에 욱여넣어 짐을 줄이는 사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빠져나갔다. 그래서 내가 맞게 가는지 물어볼 사람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는데 제복 차림의 젊은 청년이 눈에 띄었다. 경찰은 아니고 공항 관계자 같았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게 왠지 친절해 보였다. 역시 그는 친절했고 덕분에 안심하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영국의 기차 안은 소란했다. 출근 시간이었는데도 아는 사람들과 같이 탔는지 여기저기서 떠들어 댔다. 요크에 도착할 때까지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내성적인 국민들이 맞나 싶기도 했다. 내심 흉을 보다가 우린 너무 절제하며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한 사람들끼리 기차를 타도 각자 스마트폰만 만지며 공공장소 예절을 지키고 있다고 속이는 건 아닐까? 통신 인프라가 잘 구비되어 있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긴 지하철이나 기차에서 책 읽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비교 속에 요크 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다시는 못 올 곳이라고 여겼는데…. 난 역시 한국인답게 일찌감치 여행가방을 끌고 문 앞으로 나와 섰다. 콩알이가 나와 있겠다고 했는데 어디쯤 있을까?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서자 저쪽에 서 있는 콩알이가 보였다.
난 양손에 여행가방을 들고 성큼성큼 기차에서 내렸다.
“콩알아, 여기!”
콩알이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던 적이 없어 더 애틋했다. 콩알인 웃음을 머금은 채 꽃다발을 내밀었다.
“웰컴 꽃이야!”
콩알이가 예약한 B&B로 가면서 밀린 수다를 떨었다. 17년 만에 다시 온 요크는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덕분에 잊었던 기억이 하나씩 되살아났지만 콩알이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지, 5살 때를 기억하긴 어렵지.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콩알이가 예약한 숙소는 셜록 홈즈의 하숙집을 연상시켰다. 어린 시절, 셜록 홈즈의 광팬이었던 나는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아 마냥 설렜다. 숙소의 주인은 친절하고 유쾌했으며 작은 방은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바지 다림판에 각종 차, 서랍장 속의 소소한 어메니티는 날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오래된 집이지만 기품 있고 깔끔했으며 걱정했던 화장실마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지금껏 영국을 여행하면서 묵었던 숙소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짐을 풀기 무섭게 콩알이가 묶고 있는 기숙사로 향했다. 2층 집의 각 방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화장실과 주방을 공동으로 쓰고 있었다. 처음에 화장실 딸린 방을 신청했는데 행정상의 오류로 엉뚱한 곳으로 배정되어 긴 씨름 끝에 옮겼지만 여기도 화장실 딸린 방이 아니었다. 제대로 해결될 때쯤이면 돌아올 때가 될 걸 알았기에 그냥 있기로 했더랬다(이 나라는 모든 것이 느려서 우리나라 사람은 적응하기 무척 힘들다. 물론 유럽도 그렇다. 편의성만큼은 한국이 최고다! ) 자기 딴엔 내가 올 걸 대비해서 청소를 한 거라는데 내 눈엔 ‘어떻게 이렇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잔소리할 때가 아니다. 혼자서 여러 고비를 넘기며 지금까지 버틴 아이가 아닌가! 2개밖에 없는 샤워실과 화장실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났다는 아이였다.
콩알이와 시내 여기저기를 다녔지만 구름 위를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다. 20시간의 비행 때문에 시차는 잘 극복했지만 긴장이 풀려서인지 자꾸 몽롱해졌다. 결국 아이 기숙사로 돌아가 한국에서 공수해 온 반찬으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일찌감치 뻗었다. 한국에서는 깊은 잠을 못 자 병원을 가야 하나 할 지경이었는데 여기서는 아주 꿀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