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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Feb 29. 2024

소소한 일상(13)

허리를 다치고

 “샤ㅇ청소기 좋아 보이더라. 저걸로 바꿀까?”

아침을 먹으며 무심코 청소기 얘기를 했더랬다.

그리고 그날 오후. 소파 밑으로 청소기를 넣는데 정말 갑자기 허리가 둔한 느낌이 들더니 통증이 시작됐다. 몇 년 전, 길 걷다가 갑자기 느꼈던 그 통증이었다. 그때는 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얼음처럼 한참을 서 있다가 간신히 한의원에 갔다. 여러 날 고생을 해서 정말 조심했는데 이번에도 왠지 그런 느낌이었다. 다행히 그때처럼 얼음이 되진 않아서 천천히 청소를 마치고 에코백에 아이패드를 넣어 도서관을 향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날 무렵 허리가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으면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도서관을 지나쳤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걸을수록 허리가 더 뻣뻣해졌다. 결국 더 걸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엔 집에서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에코백이  무겁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의자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버스 정류장에 있는 의자가 눈에 띄었다. 한참을 의자에 앉아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 한의원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5분이면 갈 거리를 수없이 쉬며 겨우 갔다.

 진료를 보러 들어갔는데 그때는 의자에 앉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내 얘기를 들은 의사는 청소기 돌리다 오는 사람이 많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간신히 침대에 누워 침을 맞고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누웠다. 의사가 당분간 무조건 누워 있으라고 하기도 했지만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돌아 눕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답답해서 거실로 나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최근에 한쪽 무릎이 까닭 없이 아파 벌써 두 달 가까이 요가를 쉬고 있다. 물론 병원을 다니긴 했지만 딱히 원인을 못 찾아 이래저래 속상했는데 허리까지 말썽이니 좀 우울해졌다. 나이가 든다는 신호인가 싶어 특히 그랬다. 그래서인지 노인들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빨리 걷고 싶으나 그럴 수 없고 마음대로 다니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허리를 곧게 세우고 걷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노인들의 마음이 이해됐다. 길 가다가 천천히 걷는 노인을 피해 옆으로 재빠르게 지나쳤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그분들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도 점점 나이 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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