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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May 25. 2024

소소한 일상(14)

5성 호텔 뷔페와 아이유

<ooo과 xxx의 데이뚜 일정>

 날짜:5월 24일

 장소:서울 H호텔 뷔페

 시간:오후 6시 30분

 혜택:음료/주류 무제한

 참고:점심은 굶고 오십시오

 예약자명:감자

 이하 궁금한 점은 문의하지 말아 주십시오.

 질문은 거절!

 거절도 거절!


가족 단톡방에 느닷없는 메시지가 떴다. 콩알이가 올린 거였다.

얼마 전, 자기랑 데이트하자며 저녁 시간을 물어보더니 이것 때문이었나 보다. 남편에게 변화도 있고 어버이날도 다가오니 겸해서 아이들이 마련한 이벤트였다.

장소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 냉큼 ok 하고 싶었지만 식사값이 만만치 않았기에 뜸을 들였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내 애들에게 설득되어 가기로 했었다.

 예약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 남산과 호텔 주변을 가볍게 돌고 뷔페로 갔다. 콩알이는 창가로 예약했으니 다른 곳으로 안내하면 말하라는 당부까지 했다. 남산에 창가라니! 제법 디테일하다! 애들을 두고 우리끼리 오는 게 미안해서 델리에서 빵을 좀 사고 들어갔다.

 창가 중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였다. 앉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흐렸지만 멀리 L타워도 보이고 이태원과 한남동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울 것 같았다.

 일단 도착했다는 인증샷을 찍고 음식 있는 곳으로 갔다. 사실 소식좌라 뷔페는 늘 손해였지만 오늘만큼은 제대로 먹어 보리라는 다짐을 하며 둘러봤다. 그중 랍스터와 문어 샐러드, 스테이크, 가리비, 야채구이를 접시에 담고 화이트 와인을 가져왔다. 거의 채식주의자에 가까운 내가 갖고 온 음식을 보고 남편이 놀랐다. 물론 나도 놀랐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내가 고기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봐!”

 남편은 입이 너무 고급이라 탈이라고 했다. 부지런히 음식을 가져와 먹는 사이사이 직원이 빈 접시를 치웠다. 갑자기 포크를 내려놓았다.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이지아)가 떠올랐다. 설거지 알바를 하다가 남은 음식을 몰래 싸와 꾸역꾸역 먹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떨구던 그 장면이, 환한 조명 아래의 ‘한남 더 힐’과 오버랩됐다. 사실, ”나의 아저씨“를 끝까지 보지 못했더랬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도저히 끝까지 볼 수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힘겹게 사는 이가 있다는 걸 잊고 있다가 한 방 맞은 것 같아 그랬던 걸까.

 창가엔 어느새 어둠이 스며들었고 따스한 불빛이 멋진 야경을 만들어냈다. ‘이지아’ 생각을 지우고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대한 오래 앉아 먹고 이야기했다. 다음에는 애들도 데리고 오자면서. 모순 덩어리의 나는 휘청거리며 호텔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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