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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May 13. 2024

28년 만의 휴가(6)

열리지 않는 열쇠!

 콩알이와 런던으로 갔다. 드디어 유럽 여행 시작이다. 맨체스터를 거쳐 가는 저가 비행편도 있었지만 출발 시간이나 수하물 요금을 따지면 히드로에서 스위스 국적기를 타는 게 오히려 싸다는, 아이러니한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단순 항공료만 따지면 저가 항공이 갑이지만 거기에 추가되는 여러 옵션들을 잘 따져 봐야 한다).

 처음 타 보는 스위스 항공은 딱 그 나라 이미지같이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표는 체르마트로, 제네바에서 1박을 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영국과 달리 입국 심사가 있었는데 젊은 남자 심사관이 콩알이에게 수작(?)을 부리는지 연방 웃으며 짧은 한국말까지 해댔다. 나는 다른 줄에 서 있어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콩알이에게 물어보니 그저 시시한 농담이었다나? 아기 같은 아이한테 이런 날이 오다니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밖으로 나오니 부슬부슬 비가 오고 있었다. 예약한 숙소까지 버스를 타고 가며 이런 환경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내심 부러웠다. 구글맵을 이용해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다른 도시와 달리 제네바 숙소는 출발 직전에야 예약했다. 너무 비싼 숙박비에 선뜻 정할 수가 없었는데 저렴해서 눈여겨 보던 에어비앤비가 그대로 있길래 바로 예약했다. 좀 찜찜했지만 동네와 건물 외관이 괜찮아 보였다. 살짝 마음이 놓였다. 여자들만의 여행이라 안전이 제일 신경 쓰였다.

 우린 현관 앞에서 1시간 가까이 들어가질 못했다. 발매트 밑에서 꺼낸 열쇠는 중세 감옥 문을 잠그는 열쇠 같아 보였다. 아직도 이런 열쇠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런 나를 비웃듯이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열쇠를 구멍에 넣고 아무리 돌려도 열리지 않았다. 반대로 돌려도, 뺐다가 다시 넣고 돌려도 마찬가지였다. 콩알이는 집주인과 계속 연락했지만 주인은 그저 넣고 돌리면 열린다고 했다. 어쩐지 우리가 문도 못 여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된 것 같아 언짢았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열쇠와 사투를 벌이는데 딸칵 소리가 들렸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문을 밀었다. 드디어 열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럽의 열쇠는 두 바퀴를 돌려야 열리게 되어 있는 게 많다고 했다. 그러니 우린 열쇠를 돌리다 만 셈이 되어  문이 열리지 않았던 거다!

 문 열다가 지친 우리는 녹초가 되어 침대에 걸터앉았다. 사방이 큰 유리창이었는데 옆 건물과 너무 가까워 버티컬을 쳐야만 했고, 가구나 식기들은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첫 숙소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하룻밤이라는 걸로 위안 삼고 햇반과 밑반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요크에서 런던, 다시 이곳 제네바로 숨 가쁘게 이동했더니 밤마실을 나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숙소 팁: 한국인 리뷰가 좋은 곳, 오랫동안 나가지 않고 있는 숙소는 피할 것, 열쇠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돌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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