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숙소였다. 급하게 청소를 했는지 눈길 닿는 곳마다 허연 먼지가 보여 영 찜찜했다. 침대는 오죽할까 싶었다. 한국에서 챙겨 온 베드버그 퇴치제를 매트리스에 넣고 햇반을 꺼내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하필 첫 숙소가 이럴 줄이야! 우린 서로 하룻밤이라는 걸 위안으로 삼고 침대에 누웠다. 베개마저 찜찜해 가져온 수건을 깔았다. 얼른 오늘이 지났으면.
추적추적 비가 왔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해가 쨍하다. 도망치듯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울퉁불퉁한 인도 위로 가방의 바퀴 소리가 요란하다. 가방과 씨름하며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저쪽에 트램이 들어오고 있었다. 콩알이와 난 건널까 말까 망설였다. 그때였다. 하얀 제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트램 기사가 트램을 세우더니 우리에게 건너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경례를 하며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아, ‘심쿵‘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구나!
콩알이와 난 그를 향해 웃어 보이고 길을 건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동시에 외쳤다.
“저 사람, 너무 멋있다!!!!”
물론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이탈리아 제외!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똑같더라!) 보행자 우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트램 기사는 우릴 설레게 했고, 두고두고 “스위스 남자=멋있다”는 고정관념을 갖게 했다(고정관념이라고 표현했지만 제네바 시내에서 마주친 슈트 차림의 남자들은 다 멋있어서 고정관념이 아니라 사실일 수도 있다).
구시가지의 한 공원 벤치에 앉아 새들과 사투를 벌이며 샌드위치를 먹고 스타벅스에 갔다. 여유로워 보이는 창밖 풍경을 보고 있는데 깔끔한 슈트 차림의 남자가 오랫동안 통화를 했다. 간간이 귀에 들어오는 내용은 스타벅스의 어떤 굿즈를 사갈까 하는 거였다. 나중에는 영상통화를 하며 보여 주는 게 아닌가! 이런 스위트함이라니! 문득 한국에 남아 있는 룸메 생각이 났다.